[정현구의 음악칼럼]“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들으며”
[정현구의 음악칼럼]“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들으며”
  • 정현구 국제문화개발연구원 부원장/코리아 네오 심포&
  • 승인 2014.12.29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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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현구 국제문화개발연구원 부원장/ 코리아 네오 심포니오케스트라 음악감독
음악에서 많은 변화는 주로 19세기 후반에 일어났다. 특히 화성의 사용에 있어 중요한 두 가지의 경향은 반음계주의의 사용과 발전이라 할 수 있다. 반음계의 사용 증가로 인해 음악은 빈번한 조의 변화와 조성감각의 모호함을 갖게 되었다. 이런 반음계적 작법으로 인해 화성과 화성의 기능적 쓰임의 모호함은 유예된 불화음의 사용에 의해서이다.

그리고 화음 대 화음의 기능적 사용 없이 전체적 방향성만을 이끌고 나아가는 형태의 화성적 작법이 고도로 반음계적인 작품에서 쓰이고 있다. 19세기의 이러한 작곡의 변화는 화성의 확장과 화성의 쓰임을 재정의하고, 20 세기 초기 음악의 발전영역을 구체화하는데 견인적 역할을 하였다.

리하르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1883)는 그 시대의 음악사회에서 그 존재감이 막강한 작곡가로 화성적 원칙을 재정립한 중요한 인물들 중 하나였다.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그 이전의 작곡가들이 사용한 근원적인 기능적 체계의 확장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대부분의 경우에서 화성진행이 그 이전체계의 전반적인 틀을 따르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다. 바그너 음악에서 화음의 기능적 특질이 확장되고 장식되고 모호해지지만 아직 화성의 근본적 진행이 파괴되지는 않는다.

그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간주곡은 19세기 후반의 작품 중 가장 많이 논의되고 분석되는 작품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이 이렇게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화성과 선율적 기법의 놀라운 확장 때문이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간주곡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화성적 용법에 있어서 전체적으로 기능적임이 드러난다. 하지만 모호한 불협화음의 긴 이어짐, 끊임없는 반음계적 전조, 빈번한 위종지의 등장은 완벽하게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예견하게 한다.

이 작품은 그 시작부분부터 화성적으로 모호하며 전체 오페라의 음향을 예시한다. 그리고는 중심조를 빠르게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이동시킨다. 불협화음은 바그너의 음악에 중추적 역할을 하며 화성의 추진력을 더 해준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간주곡은 화성의 진행 속도 또한 매우 빠르다. 거기에 수많은 반음계적 경과음, 전타음, 다른 불협화음들이 현저하게 나타난다. 이를 통해 환기되는 감정은 의존할 수 있는 조중심(調中心)을 갖지 않은 끊임없는 전개이다. 

집중된 불협화음, 빠른 조의 이동, 빈번한 도미넌트(dominant)화음의 lalgoruf은 바그너가 매우 좋아하던 유동적인 진행을 만들어내는 데 도움을 주었다. 

간단하게나마 바그너의 기본적인 화성적 사고의 과정, 즉 화성적 목표를 넓은 시간적 공간에서 계획하는 것을 엿보았다. 이는 본질적으로 모든 조성음악 작곡가들의 화성적 사고의 과정이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모두 넓은 시간적 공간에 그들의 조성적 사고과정을 반영하여 작곡했으며, 이러한 기본적 개념은 약간 다른 형태기는 하지만 여전히 20세기와 현대에도 적용된다.

흔히 바그너로 인해 조성이 파괴되고 새로운 음악의 세계가 열렸다고 한다. 그러나 바그너는 조성을 파괴한 것이 아니다. 그는 전 시대의 음악적, 특히 화성적 작법을 충분히 숙지하고 그를 바탕으로 더 다양한 전개를 이끌어 낸 것이다. 그리고 그가 표현하고자 한 음악의 분위기를 위해 좀 더 과감한 화성적 시도를 한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또 다시 우문을 던지게 된다. 과연 우리의 혁신은 무엇에 바탕을 두고 있는가? 전 세대의 모든 것을 뒤집는 것이 혁신인가?  바그너처럼 다음 시대의 도래를 이끌 수 있는 다양한 전개, 새로운 시도가 있는 나와 우리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