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읽어주는 아름다운 우리 詩>개망초-유병란 시인
<시인이 읽어주는 아름다운 우리 詩>개망초-유병란 시인
  • 공광규 시인
  • 승인 2015.04.1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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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망초
                                                        

                                                   유병란(시인. 1963~ )


씨앗도 뿌리기 전 먼저 싹을 내밀고
온 들과 밭을 흰 눈처럼 덮어버리던
꽃이면서 풀이고 풀이면서 꽃이었던 개망초

이른 봄 새잎이 지천으로 나오면
엄마는 한 끼 반찬을 만들기 위해
푸른 잎을 뜯어서 삶아 말렸다

한여름 가뭄이 타들어 갈 때도
하얀 꽃대를 밀어 올리며
힘겹게 긴 줄기를 지탱하고 서 있는 가냘픈 망초꽃

너무도 흔한 꽃이어서
꽃인 줄도 모르고
저 혼자 피는 꽃

청평사 가는 길 입구에서
등이 오그라든 할머니 한 분이
바삭 마른 개망초 나물을 파는 것을 보았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 보니
갈고리처럼 마른 손으로
개망초 나물 한 바구니를 담아주며
환하게 웃는다

오래전 엄마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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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가장 먼저 푸릇푸릇하게 새순을 내미는 식물이 개망초다. 지금은 거의 먹지 않지만,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던 시절에는 봄에 주로 먹는 반찬이었다. 시인은 청평사에 가다가  길가에서 파는 마른 개망초를 보면서 개망초를 뜯고 삶아 말리던 어머니를 떠올린다. 시인의 어머니만 그런 건 아니었다. 들이나 밭에 파란 새싹으로 돋거나 하얗게 꽃으로 덮는 개망초를 보면 여전히 옛날이 생각이 환하게 난다. 그래서 시인은 옛날 기억을 데려다주는 배달부다. (공광규/시인)

<시인이 읽어주는 아름다운 우리 詩>를 연재해 주시는 공광규 시인은  1986년 등단. 시집 <담장을 허물다> 등. 2009년 윤동주문학상, 2011년 현대불교문학상 수상 등 우리 문단을 든든히 받치는 중견시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