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읽어주는 아름다운 우리 詩>허름한 개-이우림
<시인이 읽어주는 아름다운 우리 詩>허름한 개-이우림
  • 공광규 시인
  • 승인 2015.07.20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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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개
                             이우림(1963~)

버스를 타고 가다
느릿느릿 걸어가는 늙수레한 개 한 마리 만났다
등뼈가 도드라지고 배통이 헐렁하다
오다가다 뼈다귀 하나 얻어먹지 못했나
앞다리에 끌려가는 뒷다리가 결코 가볍지 않다
가로수도 남의 일 같지 않다는 듯 잎사귀 하나 흔들지 않는다
허락이라도 바라는 듯 잠시 올려보다 무겁게 몸을 기댄다
등짝을 빠져나온 들썩거리는 숨에 가로수 잎이 어렵게 뒤척인다

등골이 빠지고 휘어지도록 밤새 세상과 씨름한 야곱의 환도뼈 같은,
아버지의 부러진 고관절은 아버지를 앉은뱅이로 만들었다
꼼꼼하기로 소문난 아버지는 구멍 난 교회지붕을 손보다
느닷없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아버지만 바라보던 진순이도 사다리에 깔려 엉덩이뼈가 주저앉고
신음만 쏟아 붓다가 아버지처럼 진순이도 앉은뱅이가 되었다
그날 이후 사다리도 짐자전거도 앉은뱅이가 되어 뒤꼍으로 들어갔고
대문간 변소에는 아버지가 만든 앉은뱅이 나무의자 변기가 놓여졌다
뒤꼍으로 간 짐자전거에 녹이 슬고 진순이도 향나무곁에 심기고
아버지도 나무의자 변기와 함께 연기가 되었다
 
허름한 개를 만났다 그 개는 아버지였다

 

화자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늙수그레한 개를 만난다. 허리가 부러져 뒷다리를 끌고 가는 개. 허리가 부러진 개를 보고 화자는 교회지붕을 수리하다가 바닥으로 떨어져 고관절이 부러져 앉은뱅이로 산 아버지를 떠올리고, 아버지만 바라보다가 앉은뱅이가 된 진순이도 떠올린다. 아버지가 사용하던 사다리와 짐자전거도 사람을 따라서 앉은뱅이가 된다. 변소에도 아버지가 만든 앉은뱅이 나무의자가 있다. 모든 것이 앉은뱅이로 수렴된다. 화자는 허리를 다친 허름한 개를 아버지가 환생한 것으로 본다. 오랜만에 이런 연쇄적이고 윤회적 상상력이 풍부한 시를 만나는 즐거움이 여간 아니다.(공광규/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