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역사’라는 달빛, ‘미래’라는 안갯길, 연극 ‘달빛 안갯길’
[공연리뷰] ‘역사’라는 달빛, ‘미래’라는 안갯길, 연극 ‘달빛 안갯길’
  • 김승용 인턴기자
  • 승인 2016.01.2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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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역사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연극

우리에게 역사란 무슨 의미인가.

연극 ‘달빛 안갯길’은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극이다. 연극 제목인 ‘달빛 안갯길’은 연극의 배경이 되는 영주 부석사의 달빛 안갯길을 뜻한다.

▲ 연극 '달빛 안갯길'은 선묘신화라는 '신화'와 조선사편수회라는 '실제'를 적절히 조화시켰다.

일본인 사학자 소기치와 그의 제자 조선인 이선규는 함께 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에 몸담고, 발굴 조사를 위해 영주 부석사로 간다.

그들이 향한 부석사에는 영친왕의 약혼녀였으나 강제로 파혼당한 민갑완과 그녀의 외삼촌 이기현이 상하이로의 탈출을 계획하며 묵고 있다.

‘달빛 안갯길’은 크게 두 축으로 진행된다. 조선인 이선규가 총독부 산하에서 조선사편수회 일을 하면서 역사관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것이 한 축이다.

또 한 축은 만갑완이 부석사에서 탈출할 날을 기다리다가 의상대사와 선묘의 전설 속 선묘를 만나는 이야기다.

따로 진행되는 듯한 이들의 이야기가 서로 조화롭게 보이는 이유는 결국 ‘달빛 안갯길’ 속 모든 이야기는 ‘역사’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흘러가기 때문이다.

만갑완이 선묘와 만나는 ‘환상’에 해당하는 부분과 이선규가 역사를 편찬한다는 ‘현실’에 해당하는 부분은 ‘신화가 역사에서 가지는 가치’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하나가 된다.

소기치는 진실한 역사를 그려내는 것보다, 일본 역사 속에 조선 역사를 포함하고 식민지 역사를 합리화하는 데 혈안이 된 역사학자다. 역사는 곧 정신이다. 마치 자신의 부모를 보며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듯, 역사를 보며 자신의 앞날을 꿈꾸는 것이 국민이다.

이선규는 소기치의 제자고, 그저 진실한 역사를 그려낸다는 생각 하나로 부석사에 온다. ‘사실’에만 몰두하던 이선규는 부석사에서 겪은 사건을 통해 점점 신화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신화란 허황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러한 신화가 만들어진 시대의 맥락과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기에 역사적으로 귀중한 자료라고 볼 수 있다. 사실에만 집중하던 이선규의 역사관을 뒤흔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사실과는 거리가 먼 신화이다.

만갑완을 돕고, 이선규의 역사관을 흔드는 역할을 하는 선묘. 선묘가 보여준 판타지는 이 시대가 가장 원하는 판타지다. 세상이 올바른 역사를 만들 수 있도록 선묘는 내내 도와준다. 역사 관련해서 논란이 많은 현시대에, 어떤 역경 속에서도 올바른 역사로 갈 수 있게 도와준 선묘 같은 존재가 나타난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될까.

지금 이 순간에도 후대에게 제대로 된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 힘쓰는 이들에게 큰 힘이 될 만한 연극이다. 우리의 미래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갯길일지 모르지만, 역사라는 등불을 비추며 걷는다면 충분히 안전하게 한 걸음씩 걸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