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젊어진 전통-드림무용단 창단 20주년 기념공연
[이근수의 무용평론]젊어진 전통-드림무용단 창단 20주년 기념공연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명예교수
  • 승인 2016.05.3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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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명예교수

1996년에 창단한 드림무용단(한명옥)의 창단 20주년 기념공연이 5월 마지막 주 풍류사랑방의 수요춤전(5.18)으로 펼쳐졌다.

'조율 III 우리 춤의 새로운 고전을 찾아서’란 제목을 단 공연은 전통 춤 3편으로 짜여진 1부 ‘전통의 미’와 전통을 바탕으로 안무된 창작춤 3편으로 구성된 2부 ‘새로운 고전을 찾아서‘로 나누어져 관객들을 맞았다. 국악평론가 윤중강이 작품해설을 맡았다.

‘전통의 미’는 이매방 류 기본 춤을 토대로 남녀 2인무(강만정, 김청우)로 짜여진 ‘사랑가’와  살풀이춤을 모태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을 담아낸 ‘엄니의 한’, 그리고 소고보다 큰 중북인 버꾸를 손에 들고 추는 ‘버꾸춤’(김영미, 이치성)이 순서대로 보여졌다.

남녀 간의 아름다운 사랑의 정경, 여섯 여인의 군무로 시작해서 살풀이 독무(서지민)로 수렴되는 춤 속에 담겨지는 여인의 한, 역동적이고 신명난 농악놀이 풍경 등 특색 있는 전통 춤 세 가지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보여주었다. 2부 공연은 <바람의 화경>, <애애(愛哀), 벗어버리다>, <다움>의 세 편으로 구성된다. 이 중에서 나는 <다움>을 가장 재미있게 보았다.

티베트불교의식에서 쓰는 씽잉벨(singing bell)이 내는 소리가 긴 여운을 내며 장구소리와 어울린다. 중요무형문화재 40호인 ‘학연화대합설무’의 학과 연꽃이 창작의 모티브지만 안무는 현대적이다. 장혜림이 연꽃 한 송이를 손에 들고 무대 가운데로 나아온다. 분홍색 옷이다. 뒤를 따라 두 손에 매단 흰색 깃털을 날개처럼 퍼덕이며 한 마리 학(연은주)이 등장한다.

학은 동(動)이고 꽃은 정(靜)이다. 연약해 보이는 꽃 한 송이가 남성적인 한 마리 학을 만나 깨어나고 성숙해지는 가운데 상생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 조용히 읽혀진다. 맨발에 가벼운 의상, 빠르고 경쾌한 춤사위가 신비로운 여심을 젊은 감각으로 표현한다. 전통춤의 우아함이 현대춤의 세련된 형식을 빌려 다시 태어난 느낌의 작품이었다.

차다솜, 유승현, 윤다솜이 출연하는 <애애(愛哀), 벗어버리다>는 조선시대 일부다처제 풍속도를 현대의 3각관계로 풀어본 춤이다. 여인들 얼굴에 검은 탈을 씌워 신분을 감추고 첼로, 가야금, 타악 등 국악기와 양악기를 무대에 배치했다. 수심에 찬 남자가 무대 앞쪽에 머리를 고인 채 앉아 있고 여인들이 객석에서 등장하는 등 변화를 주었으나 해학적이기보다는 신파조에 가까운 느낌이 들었다.

남성 한량무를 변주한 <바람의 화경>은 한명옥의 대표적인 창작 춤 중 하나다. 드림무용단의 핵심멤버들인 윤순자, 손삼화, 정경희, 강민정이 춤춘다. 신윤복의 미인도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 작품은 나들이를 준비하는 여인들의 설레는 마음을 시적으로 표현한 아름다운 춤이다.

부채모양의 손거울을 들고 얼굴을 화장하고 옷매무새를 고치는 춤사위가 들뜬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조선여인의 절제미와 어울려 매력을 더해준다. 한국 춤의 멋과 맛을 느낄 수 있는 맵시 나는 춤이다.

드림무용단의 작품을 2000년 6월에 처음 보았다. 12폭 병풍처럼 디자인된 <춤 조각보> 공연 팸플릿을 들고 찾아간 국립극장 소극장에서였다. 전통 춤 다섯과 김매자의 춤본 II를 합친 6개 소품에 각각 시와 향(승무), 빛과 소리(아박무), 소리와 꽃(태평무), 빛과 시(처용무) 등 예쁜 제목을 붙이고 소녀 팽주(烹主; 차 우려내는 사람)가  무대에 등장하여 다례(茶禮)를 행하고 시를 낭송하는 신선한 장면이 기억에 남았다.

창무회 출신으로 드림무용단을 창단한 한명옥은 참신한 기획력과 리더쉽을 겸비한 보기 드문 무용가다. 인천시립무용단장을 거쳐 국립국악원무용단을 이끌면서 이러한 능력은 서울·경기, 충청, 영남, 호남 등 4도를 대표하는 전통춤을 비교하여 보여준 <4도4색>, 스승과 제자의 춤을 한 무대에 세움으로써 전승의 의미를 부각시킨 <사제동행>, 고종대례의궤를 춤으로 표현한 <대한의 하늘>, 국립국악원 정악단과 합동공연으로 프랑스 국립 샤이오극장에 초청된 <종묘제례악>등 기획공연을 통해 잘 드러났다.

창단 20주년 기념공연에서 전통적인 드림무용단 레퍼토리에 새로 추가된 <다움>, <애애(愛哀), 벗어버리다> 등 현대적 감각의 춤을 보면서 국악원 무용단장 임기를 마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취임한 한명옥이 드림무용단의 전통에 한예종 무용수들의 젊은 피를 조화시키며 전승과 창조란 꿈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을 기대해본다. 이 꿈은 우리 춤의 공통된 숙제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