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 '천경자-백남준' 추모전
서울시립미술관 '천경자-백남준' 추모전
  • 이은영 기자
  • 승인 2016.06.15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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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기증 작품 전시, 백남준과 플럭서스와의 관계 등 작가의 삶의 궤적 보여주는 다양한 기록물 등도 볼 수 있어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기자]서울시립미술관이 지난 14일부터 천경자(1924~2015) 작가의 1주기와 백남준(1932~2006) 작가의 10주기를 추모하는 전시회를 열고 있다.

 '천경자 1주기 추모전 : 바람은 불어도 좋다. 어차피 부는 바람이다'(이하 '천경자전')와 '백남준 10주기 추모전 : 백남준∞플럭서스'(이하 '백남준전)가 각각 서소문 본관 2층과 3층에서 개막됐다.

▲천경자 화백의 작품과 인터뷰 등을 기록한 영상 중의 한 장면. 작품은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The 22nd Page of My Sad Legend1977, Color on paper, 43.5×36cm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Collection of SeMA)일부. 스물 두 살, 결혼 후 첫 딸을 낳고 겪은 작가의 고달픔을 배경으로 한 자화상으로, 어두운 색감 속에서도 화관 대신 뱀을 머리에 두른 여인의 모습에서 결연한 생의 의지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천경자의 가장 주요한 모티프인 여인, 꽃, 뱀이 모두 등장하는 작품으로, 질곡이 많았던 세월의 회한을 지님과 동시에 모든 것을 달관한 듯한 성숙함까지도 느껴지는 천경자의 대표작이다. 

'백남준전'은 백남준 타계 10주기를 추모하면서 백남준의 예술적 동지이자 60년대 아방가르드 미술운동은 플럭서스와의 관계를 통해 아방가르드 정신에서 싹튼 비디오 아트의 시작을 살펴보고자 마련됐다.

전시는 독일 쿤스트할레 브레멘과 국내 기업 및 개인 소장가들로부터 대여한 소장품 200여점으로 구성됐으며 백남준, 조지 마키우나스, 요셉 보이스, 오노 요코 등 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플럭서스 일원으로 활동한 작가들의 작품과 백남준이 전성기 시절 제작한 대형 멀티 모니터 설치 작품들을 선보이게 된다.

▲백남준,보이스 복스, 1961-1986 설치,병풍, 빈티지TV, 액자, 판화, 드로잉, 사진 등 © 서울시립미술관 소장.<보이스 복스>는 백남준이 1986년 그의 예술적 파트너이자 우정을 나눴던 요셉 보이스가 세상을 떠나자 그를 기리며 만든 추모 작품으로 백남준이 처음 요셉 보이스를 만난 1961년부터 요셉 보이스가 사망한 1986년까지 그와 관련된 소품, 드로잉, 사진 등을 모아 제작. '요셉 보이스의 음성'이란 의미의 이 작품은 두 거장의 인연과 예술 세계를 엿볼 수 있다.

“백남준이 플럭서스이고, 플럭서스는 백남준이다”

특히 플럭서스 초기 멤버인 덴마크 출신 에릭 앤더슨은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크라잉 스페이스>를 만들어 관람객들에게 개인적인 추모의 장소를 제공한다. 동료를 추모하는 전시에 초대된 작가는 관람객들이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눈을 향해 불어오는 강풍과 눈이 시릴 정도의 과잉된 색채에 압도되어 억지로 눈물샘을 자극함으로써 ‘추모’의 의미를 전복시키고 진정한 눈물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에릭 앤더슨은 지난 14일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를 통해 백남준과 플렉서스의 관계에 대해 명료하게 표현해 주목을 끌었다.

▲에릭 앤더슨이 백남준의 작품 앞에서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에릭은 플렉서스에 대해 우선 “재미있다”라고 말한 후 현재 독일등 유럽은 플렉서스 1세대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고 2,30대 젊은 층이 그 정신을 이어 활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백남준과 플렉서스와의 관계에 대해 “백남준이 청년시절인 58년도 처음 유럽들어 왔을 때 당시 유럽은 독특한 상황을 비디오를 통한 독설로 아방가르드 음악을 통해 표현해 냈다. 당시 그런 사조에 백남준은 자연스럽게 흡수됐다.

▲백남준 64대의 모니터Paik_827-2013-6_Three-camera-participation-installationview2_KHW3,1994 25min© 학고재 갤러리.

당시 어떤 합의가 있는 것도 아닌데 전세계 작가들이 네트웍이 이뤄져 같이 작품 만들고, 예술을 다양한 다른 것을 표현방식에 있어 혁신적적으로 구현했다. 플럭서스 때문에 예술이 일상의 아트로 자리할 수 있는 정신으로 살아있게 했다. 이것이 플럭서스 정신으로 “백남준은 바로 그 플렉서스고 플렉서스는 바로 백남준이다‘”라고 백남준과 플럭서스와의 위치와 기억을 반추해 냈다.

▲백남준,<태내기 자서전>(좌측).1982년 12월 백남준이 자신의 독일친구 디터 로젠크라츠에게 선물한 작품으로 자신이 태어나기 110일전 1932년 실제 뉴욕 타임즈 신문뭉치 위에 백남준이 낙서한 작품 모음집이다. 그는 자신이 진정한 골동품수집가라고 주장했는데 오래된 신문뭉치를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 이 골동품은 단순히 객관적 사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조각하고 선택된 오브제로 본다. 신문뭉치는 백남준의 상징적인 오브제이자 미래를 사유하는 예술가적 상상력을 함의하고 있다. 1932년 4월 1일 만우절의 신문은 어머니와 가상대화를 통해 체험하지 않은 날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백남준은 자궁 속에서 어둡고 축축하고 무섭다고 느꼈다"라고 적혀있다. ▲백남준 자화상 달마 휠, 1998(우측) 소형마차, 앤틱 TV케이스, 모니터, 멀티미디어플레이어, 마차받침대 등158x126x149 cm© 서울시립미술관 소장.1996년 뇌졸증을 맞이 한 이후 휠체어 의자에 의지해 작품활동을 했던 백남준은 바퀴의자를 탄 로봇을 자화상으로 이름 붙이고 전륜성왕, 즉 Dharma wheel을 탄 예술가로 자신을 피력한 작품이다. TV 겉면에 드로잉한 천진한 표정의 아기 미소는 바로 부처의 미소이자 동시에 백남준 자신의 이상적 모습이다

천경자 ‘바람은 불어도 좋다. 어차피 부는 바람이다’

'천경자전'은 지난 1998년 작가가 서울시에 기증한 93점 전체가 최초로 한 공간에 전시되며 <고>(1974), <초원II>(1978), <막은 내리고>(1989) 등 소장가로부터 대여한 주요 작품도 전시되어 총 100여점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천경자, 생태 Life Form1951, Color on paper, 51.5×87cm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Collection of SeMA.서른 다섯 마리의 뱀이 등장하는 작품으로, 한국화단에 천경자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계기를 마련해준 작품이며, 동시에 작가가 생전에 큰 애착을 가졌던 작품이다. 작가는 뱀을 스케치하기 위해 광주의 뱀집에 투명한 유리상자를 가져가 수십 마리의 독사와 꽃뱀을 넣고 얽히고설킨 뱀의 모습을 그렸다. 천경자는 뱀을 그릴수록 서글프고 깨끗해지는 자신을 발견했으며, 살기위해 몸부림치는 뱀들을 통해 스스로 구원을 받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당시 아버지와 동생 옥희의 죽음, 한국전쟁이 남기고 간 시대의 상처, 순탄치 못한 사랑 등으로부터 겪은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다.

특히 '인생-여행-환상-의 세 가지 주제와 아카이브 섹션으로 구성되어 천경자의 학생 시절 작품부터 60여년 간의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으며 기존 '천경자 상설전시실'을 '아카이브' 섹션으로 연출해 어린 시절부터 별세 전까지 천경자의 사진, 수필집, 기고문, 기사, 삽화, 영상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천경자,이탈리아 기행 Trip to Italy 1973, Color on paper, 90.5×72.5cm.서울시립미술관 소장 Collection of SeMA. 작가는 수필집에서 이탈리아의 거리 자체가 하나의 박물관이자 미술관 같은 분위기를 풍겨, 여행이라는 생각을 잊고 르네상스 미술의 시대 속으로 떨어진 느낌을 받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카탈로그, 목걸이, 카드, 장갑 등의 여행 소지품들과 산마르코 스케치, 그리고 꽃이 함께 자리하고 있는 이 작품은 작가가 유럽여행 중 보게된 회화의 세밀한 소묘력에 도전받아 약 3년에 걸쳐 완성한 밀도 높은 작업이다.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은 "천 화백이 기증한 전 작품을 한번에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라고 평하면서 "천경자는 남성이 주도한 추상미술 분야에서 여성적 경험과 감성을 충분히 미학으로 표출해 여성화단의 기를 개척한 독보적 존재"라고 밝혔다.

전시와 연계돼 오는 21일 '뮤지엄나이트'에서는 전시 담당 큐레이터가 직접 전시를 소개하며 28일에는 이태호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의 강연이 열릴 예정이다.

▲천경자, 황혼의 통곡

창신동 백남준 생가터, 기념관 개관 앞둔 퍼포먼스 열어

이와 함께 서울시립미술관은 백남준이 성장기를 보낸 집터가 있는 종로구 창신동에 '백남준기념관'을 조성하며 오는 11월에 개관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념관은 그동안 음식점으로 쓰인 단층 한옥을 건축가 최옥이 기념관으로 리모델링한 것으로 백남준의 친지와 지인들로부터의 유년시절 기억 채집, 백남준의 생애와 예술 세계를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소개하는 버츄얼 뮤지엄, 백남준 예술의 모태가 된 40년대 창신동 시절의 문화 지리적 경험과 생각을 소개하는 아날로그 디오라마 등을 준비 중이다.

▲오는 11월 개관을 앞둔 창신동 백남준기념관.

또 기념관 실내에는 상설 전시 외에 관람객 휴식공간 및 북카페 등 작은 주민활동 공간도 마련된다. 미술관 측은 오는 7월 20일 백남준 탄생일에 공사 현장에서 안전 준공을 기원하는 행사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