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계석의 예술비평]공공기금, 눈 먼 돈의 눈을 쏘는 명사수들
[탁계석의 예술비평]공공기금, 눈 먼 돈의 눈을 쏘는 명사수들
  • 탁계석 평론가
  • 승인 2017.04.04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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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밝거나 비판적인 평론가는 원천 봉쇄
▲ 탁계석 평론가

총체적 부실에 땜질식 처방은 내성만 키운다

한 언론이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이하 한문연)을 질타했다. '2017년 문예회관과 함께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사업' 150억 지원 사업에 대해 ‘방방곡곡 사업은 블랙리스트보다 가혹하다’고 혹평을 한 것이다.

이 매체는 우선 심사에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240개 예술단체의 작품과 164개 문예회관들을 매칭하고 150억 예산을 배정하는 심사가 단 3시간 만에 이뤄졌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졸속처리거나 심의가 요식적으로 진행되지는 않았는지, 문예회관들의 연합체인 한문연이 임의로 배정하지 않았는지에 의문을 갖는다고 하니 차후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겠다.

공공 기금지원기관에 대한 불만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날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투명성과 공정성에 자격 시비가 이는 심사위원을 끌어들이면서 형식 요건만 채우는 면피성이란 지적이다. 관가(官家)의 오랜 습성인 적폐이기도 하다.

블랙리스트 문제에 대해선 각자의 시각(視角)이 다를 수 있지만, 대통령을 비롯해 장, 차관 실세, 비선 모두가 들어가 있는 상황에서 이 판에 너무 열을 올릴 것은 못된다. 어짜피 새 술은 새 부대에, 새 정부가 문화계를  전신마취 수준의 수술대에 누일 개연성이 매우 높기 때이다. 차라리 혁신 청사진을 짜는데 힘을 쏟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사실, 언제부터인가 공공기금의 담벼락이 무너졌다. 그러니까 유인촌 문화부장관이 들어서면서 자금이 늘었고 방방곡곡 프로그램에 투자가 증폭되면서 선수들(?)이 입장했다. 틈새로 거대 기업형 문화 실세들이 들어와 판을 완전히 자기네 것으로 장악해 버린 것이다.

이미 성공한 브랜드 상품의 독과점은 상품 선호도가 높고 지역 요구와도 맞떨어진다. 이는 대학로나 신촌의 현장 아티스트들이 피눈물로 먹지도 못하고 가꾼 터전에 관객을 몰아 왔더니 임대료 상승으로 밀려나는 원리를 그대로 닮았다.

공적자금 확대가 시장 논리를 따르면서 예술가들의 시름과 곤궁은 더욱 깊어졌다. 대신 눈 먼 돈을 겨냥하는 명사수들이 집합했다. 그 예리한 총을 막을 재간이 없다. 창구는 돈을 나눠주기에도 숨가쁜 형국이니까.

설상가상, 단체장 임기가 짧아 업무 파악이 될 만하면 자리를 옮긴다. 문화는 늘 설익고 정책은 우왕좌왕 춤을 춘다. 노조도 낙하산 인사를 싫어하지 않는 눈치다. 노회(老獪)한 2인자와 조직들이 자기 보호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상품’을 들고 지역 공연장으로 역주행해 로비하는 현상마저 발생하고 있다.

돈이 돈을 버는 상업논리는 창의적 기초가 함몰되는 것

몇 해 전에 만난 한 기획자는 자신은 기획사 이름조차 숨기고 보부상하듯 상품을 매개하는데 어김없이 창구들이 요구(?)를 한다고 했다. 물론 이제는 김영란법으로 사라졌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한번 크게 털고 가는 게 봄이 오면 땅부터 가는 착한농부의 정성이듯 공기도 통하고 나쁘진 않을 것 같다.

필자는 한문연의 전신인 전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의 태동부터 지금까지의 족적(足跡)을 한 눈에 꿰고 있는 평론가이지만 심사에 부른 적이 없다. 블랙리스트 원조(元朝)라 할만 하지 않은가. 하나같이 기금지원기관이나 공연장들이 꺼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까닭을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새로 태어나는 대한민국위해

당시 이종덕 전(前) 예술의전당사장과 유민영 전(前)이사장이 태동시킬 때 필자도 의견을 나눴던 기억이 새록새록한다. 결국 철학도 문화 목표점도 상실한 '문화융성'은 ‘순실파티’로 비장한 최후를 맞았다.

공중 드론이 뜨고 실시간 CCTV 카메라와 녹음이 가능한 세상에 아직도 전근대적인 기금 배분을 둘러싼 잡음이라니 곧 인공지능 알파고에  맡기자는 소리가 나올 법하지 않은가. 그러기 전에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새 나라를 건설하고 진정 국민을 위하려는 일꾼들에게 묵은 보따리를 풀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