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계석의 비평의 窓] 볼쇼이합창을 사랑한 훌륭한 노원구민
[탁계석의 비평의 窓] 볼쇼이합창을 사랑한 훌륭한 노원구민
  • 탁계석 평론가
  • 승인 2017.04.28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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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권 공짜표 좋아하면 문화는 결국 저급한 것을 수용해야한다

27일 저녁 노원문화예술회관에서 러시아국립 볼쇼이합창단 공연을 보았다. 평자(評者)는 이미 몇 차례나 보았지만 노원구가 5만원 티켓을 어떻게 소화하는지 궁금해서 현장을 가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주에 한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 총회가 용인에서 있었고 지역문화를 가꾸려는 의지가 인상적이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문화융성'이라 해서 헬리콥터 살포식의 ‘문화가 있는 날’이 문화 확장성 관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역기능을 우려한 비판도 적지 않다. 따라서 각종 기금으로 행해지는 문화 역시 주민 발의의 자치문화와 함께 티켓 소화능력이 곧 지역 문화지표로 삼아야 한다는 관점의 변화를 확인하고 싶었다.

▲ 노원문화예술회관에 세계적인 러시아 볼쇼이합창단이 연주를 통해 청중들로 부터 박수를 받고 있다.

거의 90% 가까이 객석을 채운 것을 보고 역시 노원이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닌 그간의 문화 공간 운영자들의 노력의 결심임을 알 수 있었다. 볼쇼이 합창단도 객석의 안정되고 적극적인 호응에  고무된 표정이었다. 새삼스럼게 볼쇼이 합창 예술에 대해 평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전 곡 아카펠라 명품 합창으로 청중과 긴밀한 호흡

볼쇼이는 1부 첫 스테이지를 놀랍게도 헨델의 ‘할렐루야’로 시작해 분위기를 띄웠고 이후엔  ‘아베 마리아’의 여러 작곡가 버전을 들려주었다. 과감한 기획이다.

2부엔 ‘남촌’과 ‘청산에 살리라’인데 우리보다 해석이 더 정밀하고 앙상블이 좋았다. 곡 전체는 아카펠라로 이뤄졌고 민속적인 것, 경쾌하게 청중과 호흡하는 것, 지휘자(레프 칸타로비치)가 스텝으로 가벼운 춤을 추면서 청중과 천연덕스럽게 친화하는 모습은 노장 지휘자만의 경지가 아닐까 싶었다.

러시아 말은 알아듣지 못해도 예술의 완벽성은 동물이라도 통하는 법이다. 주민들이 좋은 문화를 기꺼이 자기 비용을 지불하고 들으면서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 당장 채산성은 맞지 않겠지만 이를 수용한 노원문화예술회관의 예술적 판단은 지역 문화를 리더하는 자긍심이 있을 것이다.

공짜표 뿌리기 문화에서 관객 가꾸는 문화로 패러다임 전환해야

사실 이런 명품 합창을 나라별로 사다가 전국 네트워크와 연결해 쓴다면 현재 국립합창단, 시립합창단 예산의 1/5만 가져도 충분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합창단들은 아직도 외국 곡은 흉내내고 창작을 하지 않으니 결국 청중의 귀가 하향평준화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시차(時差)가 발생하고 있다. 시립합창단이 위기앞에 선 것이다.

볼쇼이 합창단에 박수를 보내는 노원구민

때문에 공공 예술단체가 초대권 공짜표를 뿌리거나 1~2만원의 초저가 가격정책으로 얼마나 더 비틸 수 있을 것인가에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는 지역문화를 죽게 하는 원인 제공이 될 수 도 있다. 30~40년 전에 전문성이 없는 공무원들이 자기 면피를 위해 맞춰 놓은 공무원 표(票) 전시 행정문화인 것이다.

따라서 티켓구매 능력이 곧 지역 문화 경쟁력임을 보여준 볼쇼이 합창은 우리 문화의 한 방향성일 것이다. 이 점에서 노원은 단연코 서초, 강남을 앞지른 것이다. 볼쇼이를 사랑한 노원구민이 그래서 훌륭해 보였다. 앞으로  전국의 상황을 좀 정밀하게 체크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