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국립무용단의 2017 시즌 레퍼토리 ‘시간의 나이’
[이근수의 무용평론]국립무용단의 2017 시즌 레퍼토리 ‘시간의 나이’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17.05.18 19: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근수 무용평론가 / 경희대명예교수

국립무용단의 <시간의 나이>(4.27~29)가 1년 만에 해오름극장으로 돌아왔다. 작년 3월 ‘한불상호교류의 해’ 행사 중 하나로 기획되어 같은 장소에서 초연한 작품이다.

국립극장과 프랑스 샤요국립극장이 공동제작하고 국립무용단과 ‘조세 몽탈보’가 만난 첫무대라는 기대와는 달리 낯설고 거칠었던 초연의 인상에 비해 한 살 나이를 먹은 성숙함이 느껴진 무대였다.

아홉 명의 고수(鼓手)들이 단색 원피스차림으로 정면과 좌우 3면에 북을 두고 무대 뒤쪽에 일렬로 늘어서 있다. 앞 무대 네 귀퉁이엔 장구와 북이 놓이고 영상엔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과 도시 풍경이 펼쳐진다.

1장의 소제목은 <기억>이다. 흘러간 과거의 시간이 현재 시간 속에 기억으로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조세 몽탈보는 두 개의 시간대를 겹쳐놓는다.

한복의 여인과 양장한 현대여성들이 혼재하는 무대가 어지럽게 펼쳐진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간의 적응이 혼란스럽지만 그것은 현실이다. 비키니차림의 여인과 남자무당이 양산을 쓰고 서 있는 모습이 두 시대의 대조를 선명히 보여준다. 부채춤, 살풀이, 한량무 등 스크린에서 보여지는 전통춤과 무대에서 펼쳐지는 여인들의 춤은 닮은꼴이다.

2장의 소제목은 <세계여행의 추억>이다. 영상엔 바닷가 모래밭을 따라 달리는 자전거행렬이, 무대엔 손마다 보따리 하나씩을 든 여인들의 행렬이 보인다.

넘쳐나는 쓰레기더미 사이를 비집고 노는 어린 아이, 한쪽엔 성냥갑같이 다닥다닥 세워진 빌딩마다 불 켜진 오피스들, 공중에 떠 있는 기구 하나...무질서와 빈부격차, 고독으로 점철되는 인간세계를 담은 사진들과 함께 비장한 음악이 흐른다.

프랑스 사진작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의 다큐멘터리 <휴먼(human)>의 항공사진들이다. 영상을 가득 채운 새들의 비상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다. 양 팔을 날개처럼 머리 위로 흔들며 가볍게 뛰는 여인들의 춤사위가 새들의 날갯짓을 닮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인간세계와 달리 자연의 시간은 여여(如如)하다는 상징성과 함께 도시 속 인간의 존재를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의 공존과 함께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영상과 현실을 뒤섞으며 보여주려는 몽탈보의 연출은 인상적이다.

<포옹>이란 소제목이 붙은 3장의 주체는 ‘볼레로(Bolero)’다. 18세기말 스페인에서 쿠바를 비롯한 중남미로 전파되면서 유명해진 볼레로 춤이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의 영감에 의해 재탄생한 발레음악이다. 라틴음악의 우수가 곁들인 역동적인 리듬감 때문에 모리스 베자르를 비롯한 국내외 무용가들로부터 사랑받는 음악을 몽탈보가 국립무용단의 춤사위로 새롭게 해석했다.

고동색 드레스를 입은 장현수의 솔로로 춤이 시작된다. 색깔만 다른 드레스차림의 여인들과 남성무용수가 함께 어울리는 가운데 한복 차람의 여인도 끼어 있다. 펄떡 펄떡 종횡무진 무대를 뒤흔들며 뛰노는 군무 중엔 무용수의 괴성도 함께 한다.

주제와 음악엔 어울리지 않는 오버액션이다. 도시 사람들의 행렬이 다시 영상으로 보인다. 마주 보고 걸으며 만나는 사람들마다 포옹을 주고받는 따뜻한 휴머니티와 막장 같은 무대 위의 액션이 괴리를 느끼게 하는 피날레다.

‘시간의 나이’에서 몽탈보가 추구하고자 한 주제는 전통과 현재의 공존, 그리고 환경과 인간의 공존일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한국의 전통 춤에 현대적 의상을 입히고 영상과 무대를 교묘하게 매치시킴으로써 기대했던 목표에 근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불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는 문화의 상호교류라는 당초의 목적에서 볼 때 효과는 제한적이다.

몽탈보는 국립무용단에서 발견한 한국 춤의 근원이 다이나믹하면서도 서정적인 아름다움이라고 했다. 그는 단시간에 역동적인 변화를 체험해온 한국사회의 다이나믹함을 묘사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한국 춤의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데는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

작품에서 그가 강조한 것은 프랑스 예술가의 다큐멘터리 사진과 음악이었고 국적이 가려진 국립무용단원들의 춤이 이를 뒷받침했다. 한국의 풍물을 최대한 부각시키려 애썼던 ‘피나 바우쉬’의 <러프 컷>이나 국립무용단 춤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이를 완벽하게 피어나게 한 ‘테로 사리넨’의 걸작 <회오리>와 비교할 때 아쉬움이 남는 공연이었다. 국립무용단의 자존심을 살려줄 6월의 신작 ‘리진’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