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복사 터 남쪽서 신라 왕실사원 건물지·유물 출토
황복사 터 남쪽서 신라 왕실사원 건물지·유물 출토
  • 정상원 인턴기자
  • 승인 2018.01.3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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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석단·십이지신상 기단, 금동 불입상 등

경주 낭산 황복사 터 남쪽 일원에서 대석단 기단과 십이지신상 기단을 사용한 신라 왕실사원 건물지와 유물 1,000여점이 출토됐다.

▲ 발굴조사지역 전경 (사진제공=문화재청)

황복사는 1942년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7호)을 해체 수리할 때 나온 황복사탑 사리함에서 확인된 명문 ‘종묘성령선원가람’을 통해 신라 왕실 종묘 기능으로 쓰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654년에 의상대사가 29세에 출가한 곳이기도 하며 삼층석탑에서 금제여래입상(국보 제79호), 금제여래좌상(국보 제80호)도 출토돼 주목을 받았다.

문화재청은 황복사지 유적 발굴·정비를 위해 실시한 1차 조사에서 효성왕 미완성 왕릉과 통일신라 시대 건물지, 도로 등을 확인했다.

2017년 8월부터 시작한 이번 2차 조사에서는 통일신라 시대 십이지신상 기단 건물지, 대석단 기단 건물지와 부속 건물지 그리고 회랑 터, 담장 터, 배수로, 도로, 연못 등 신라왕실 사찰임을 확인할 수 있는 유구 다수를 발견했다.

이번 발굴조사에서 주목할 부분은 대석단 기단 건물지로 서쪽 십이지신상 기단 건물지에 덧붙여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며, 동·남쪽 면에는 돌을 다듬은 장대석을, 북쪽 면에는 자연석을 쌓아 약 60m에 이르는 대석단을 구축한 후 전면 중앙부 북쪽에 돌계단을 설치했다.

▲ 대석단 건물지 (사진제공=문화재청)

대석단 기단 건물지는 내부를 회랑을 돌린 독특한 구조로 이는 현재까지 경주지역에서 확인되지 않은 가람배치 방식이다. 이러한 특징을 통해 특수한 용도를 위해 지어진 건물이거나 황복사지 중심 건물일 것으로 추정된다.

십이지신상 기단 건물지는 십이지신상 묘(토끼), 사(뱀), 오(말), 미(양)가 조각된 석재가 불규칙한 간격으로 놓여 있으며 신라 왕릉에서 확인된 십이지신상 탱석보다 더 발달한 형태를 보인다. 이 탱석 도상(圖像) 제작 연대는 8세기 중후반으로 추정되며 축조 당시 십이지신상 탱석은 다른 왕릉에서 옮겨와 건물지 기단석으로 재사용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 십이지신상 기단 건물지 (사진제공=문화재청)

대석단과 더불어 출토된 유물 1,000여 점은 대부분 토기와 기와이다. 7~9세기 유물로 추정되며 당시 격조 높은 건축물이 들어섰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금동불입상과 금동보살입상 등 불상 유물 7점은 황복사지가 7~10세기까지 신라 왕실사원으로 유지됐음을 보여준다.

▲ 출토유물(상)과 금동입불상 및 보살상(하) (사진제공=문화재청)

또한, 1차 조사와 더불어 이번에 확인된 건물 배치나 도로 등을 참고할 때, 낭산 동쪽에 해당하는 현재 보문동 지역도 통일신라 시대 방리제(坊里制, 바둑판 모양으로 도시를 설계)계획도시임을 알 수 있다.

문화재청은 “이번 2차 발굴조사는 통일신라 시대 왕실사원과 신라왕경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가 되며 경주시와 함께 앞으로도 황복사를 규명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이어갈 계획이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