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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대중도 동참한 '미투', 예술인들은 머리 숙이라
배신감과 무력감, 언론의 자극적 보도에 지친 대중을 생각하면 쉽게 넘어가면 안 된다
2018년 02월 26일 (월) 16:04:15 임동현 기자 press@sctoday.co.kr

"우리에게 꿈을 주고 희망을 줬던 사람이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이 정말 실망스럽습니다. 자숙이라는 이름으로 숨지 말고 자수하고 처벌받으십시오. 우린 성범죄자가 참여한 작품을 소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예술인들로부터 성희롱과 성추행, 성폭행을 당했다는 여성들의 폭로가 이어진 '미투운동'이 지속되던 지난 25일, 대학로 마로니에광장에는 일반 관객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 지난 25일 대학로에서 열린 관객들의 '위드 유(with you)' 집회

'위드 유(with you) 집회'라는 이름의 이 행사는 특정 단체가 아닌 연극 및 뮤지컬 관객들의 SNS를 통한 자발적인 참여로 열렸고 약 300여명의 관객들이 예술인들의 성추행을 강하게 실토했다.

그들이 비난한 것은 성추행을 일삼고 '자숙'이라는 이름으로 모습을 감추려는 예술인들뿐만이 아니었다. 피해자의 상황을 무조건 자극적으로 보도하고 피해자의 얼굴을 아무렇지도 않게 공개하며 심지어 피해자 이름은 공개하면서 가해자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언론도 비난의 대상이었다. 

"우리 얼굴 가까이에서 찍지 마세요" 카메라를 들이대는 기자들에게 참석자들은 소리를 질렀다. 진행자는 기자들에게 "우리는 특정 단체나 정치적인 목적으로 온 것이 아니다. 순수한 관객들이다. 정치적인 잣대를 들이댄 기사는 사절한다"고 밝혔다. 자유발언이 진행될 즈음 한 관객의 목소리가 들렸다. "OO신문 OOO 기자, 우리 얼굴 올렸습니다. 빨리 내려주세요!"

참석자들의 야유가 터져나왔고 "이럴 시간 있으면 성추행 진상을 밝혀라"라는 고함도 들렸다. 몇번씩 언론매체와 기자의 실명이 거론되고 얼굴 사진을 지우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부득이 사진을 찍으려면 멀리서, 얼굴이 안 보이게 찍어달라'는 진행자의 말로 사태(?)는 일단락됐다. 문제의 사진기자들은 이미 자리를 뜬 후였다.

참석자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우리의 꿈이었던 연극과 뮤지컬의 뒤에서 이런 추악한 일이 일어났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이런 걸 겪어야한다'고 이야기하며 참아야하는 우리가 왜 피해자가 되어야하나" "난 이제 이곳에 남기로 했다. 더러운 짓을 하는 이들이 사라지는 것을 볼 때까지 남아있기로 했다", "저들은 '너희는 그래도 볼 거니까' 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자. 처벌받고 자수하라", "너희들이 당하는 걸 볼 때까지 남아있겠다. 우리들의 꿈을 깨지 말라".

관객들, 그리고 연극 및 뮤지컬 관계자들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들이 이야기한 것은 결국 '배신감'과 '무력감'이었다. 이들에 의해 꿈이 깨져야하는 현실, 그것을 '관행'으로 여겨야하는 현실, 막상 일이 터져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현실이 그들에겐 엄청난 충격이었던 것이다.

연극과 뮤지컬을 응원하려던 관객들은 결국 이들의 행위로 인해 등을 돌리고 끝내 '저들이 나오는 작품을 보지 않겠다'고 밝혔다. 순수한 관객들이 성추행으로 얼룩진 예술계를 향해 터뜨린 선전포고다.

관객이 없어도 예술이 유지된다고? 절대 그렇지 않다. 대중은 힘이 세다. 대중을 무시하는 예술은 더 이상 존재 가치가 없고 대중을 무시한 담론은 결국 탁상공론에 끝난다. 적어도 이날 모인 관객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대중의 눈을 속이고 권력을 탐한 예술가들의 더러움을, 그리고 이런 상황을 자극적으로 몰고가려는 언론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소위 '지식인'들을, 그리고 눈요기로 여기려는 다른 이들을 질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연대하려한다. 그 대상은 단순히 성범죄를 저지른 예술인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그를 넘어선, 이들을 묵인한 모든 것을 향하고 있다.

'미투'는 단순히 누군가를 범죄자로 지목하고 그를 단죄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의 주장을 통해 다른 이가 힘을 합치고 그렇게 서로 힘을 합치며 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 '미투'다. 

드러낼 수 없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는 이를 통해 '혼자가 아니야'를 외치며 같이 동참하고 같이 가자고 선언하는 것이 '미투'다. 그 '미투'는 이제 특정인들만의 연대가 아니다. 일련의 상황 때문에 실망감을 느낀,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좋아했던 이들이 결국은 '추악한 성범죄자'로 알려진 것에 분노한 이들도 모두 피해자다.

우리 모두가 피해자고 우리 모두가 그들을 쫓아낼 권리가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이를 모르고 여전히 흥미 위주로, 뭔가 '한 건' 하려고 미투를 폄하하는 이들을 꾸짖고 있었다.

'#문단 내 성폭력', '#영화계 성폭력'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사실 침묵했다. 정확히 말하면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나와도 '결국은 그냥 지나가겠지'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 것이 가장 큰 잘못이었다.

침묵도 결국은 암묵적인 동조였다. 젊은 예술가, 젊은 유망주들이 이름있고 나이많은 '문화 권력'에게 지배당하는 것에 침묵하고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필자 역시 '암묵적 동조자'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이제 대중도 나섰다. 문화계도 언론도 모두 그들은 비웃고 있다. 대중은 이제 머리 위에 와 있다. 이래도 피할 것인가?

지금 대중은 문화계에 심각한 추궁을 하고 있다. 피하려고 하지도 말고 교과서적인 책임론도 이야기하면 안된다. 대중에게 머리 숙여야한다. 대중은 지금 문화계의 그 누구보다 더 앞서 있다. 이전처럼 숨으면 안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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