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숙의 문화읽기]신임 세종문화회관 사장의 당면과제
[성기숙의 문화읽기]신임 세종문화회관 사장의 당면과제
  • 성기숙 무용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승인 2018.10.12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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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숙 무용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올해로 세종문화회관이 개관 40돌을 맞았다. 공교롭게도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과도 맞물려 있다. 그 산술적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다.

광화문에 위치한 세종문화회관은 1978년 4월 개관했다. 개관기념공연으로 총체극 ‘위대한 전진’이 올려졌고 영국 로열발레단, 이탈리아 파로마오페라단, 오스트리아 빈소년합창단 등 해외예술단체들의 내한공연이 줄을 이었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 문화선진국 예술단체의 내한공연은 질 높은 공연에 대한 갈증을 채워줬다.

개관 당시 규모도 놀라웠다. 4,200석에 달하는 매머드급 공연장은 국내 최고(最高)라는 수식어와 잘 어울렸다. 1988년 예술의 전당이 개관하기까지 세종문화회관은 한국 공연예술의 메카로 자리매김되었다. 그 시절 본격적인 공연장이라고 해봐야 1973년 남산에 둥지를 튼 국립극장이 유일했다. 개관이후 세종문화회관은 현대 한국공연예술계의 역사적 흐름과 맥을 같이 해왔다.

그동안 누적 관람객이 약 6,200만 명에 달한다. 엄청난 수치다. 세종문화회관에서는 공연을 비롯 전시, 예술교육, 축제 등 다양한 예술활동이 일년 내내 펼쳐진다. 3개의 공연장, 2개의 상설전시관, 1개의 미술관을 갖춘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표상하는 공연장으로서 그 존재감이 뚜렷하다.

뿐만 아니다. 세종문화회관은 국립극장, 예술의 전당과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공공예술극장 ‘빅3’로 통한다. 국립극장은 3개의 소속단체를 두고 있다. 예술의 전당은 아예 소속단체가 없다. 여기에 반해 세종문화회관은 서울시무용단을 비롯 국악관현악단, 뮤지컬단, 합창단, 극단, 오페라단, 유스오케스트라단, 소년소녀합창단, 청소년국악단 등 9개의 전속단체를 거느리고 있다. 한국 공연예술계에서 보기 드문 ‘공룡조직’인 셈이다. 따라서 세종문화회관 사장 선임은 늘 초미의 관심사다.

얼마 전 회계사인 김성규 한미회계법인 대표가 제9대 세종문화회관 사장으로 선임됐다. “다양한 예술경영·경제 전문지식을 겸비하고 다년간 문화예술기관의 회계, 세법, 조직 등의 전문 컨설턴트로 활동한 실무경험”을 높이 샀다는 후문이다. 그는 1998년 서울예술단 경영컨설팅을 시작으로 공연예술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그후 약 20여년 간 문화예술 현장에서 회계·재무 및 예술경영 전문가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다.

공연예술계는 김성규 세종문화회관 사장 선임을 다소 의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법인화 이후 공공예술극장 사장은 대부분 현장예술가 혹은 관료 출신이거나 전문경영인이 맡아왔다. 세종문화회관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이러한 관행에 비춰볼 때 회계사 출신 김성규 사장 카드는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편, 참신하다는 평가도 없지 않다. 우선 코드 인사가 아니라는 점은 다행스럽다. 세종문화회관은 서울시 재원으로 운영된다. 따라서 세종문화회관 사장의 인사권자 역시 서울시장이다. 과거 박원순 서울시장은 세종문화회관 사장 선임과 관련 코드 인사논란에 휘말린 적이 있다. 문화예술 기관장 선임에서 탈(脫) 정치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늘 반복된다. 그러나 실제로 지켜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다행히 겉으로 드러나는 김성규 사장의 이력에서 정치적 이념이나 진영의 잣대로 해석될 소지는 옅어 보인다.

입장에 따라 다르겠으나 예술가 출신이 아니라는 점도 긍정적이다. 특정집단 혹은 계파 논리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공정성 담보에서 유리할 수 있다. 또 공공예술극장 최고책임자가 회계사 출신으로서 수치에 밝다는 것도 큰 자산일 것이다. 회계사 출신 최초의 세종문화회관 신임 사장이 어떤 운영전략으로 공연예술계의 편견을 돌파할지 사뭇 기대된다.

세종문화회관은 개관이후 지난 40여년 동안 여러 변화를 겪었다. 특히 1999년 서울시 직영으로 운영되다가 재단법인체제로 바뀐 것은 획기적인 변화에 속한다. 법인화 이후 수익창출을 위한 치열한 노력이 경주되었으나 결과는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세종문화회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공공예술극장의 재정자립도 실현은 요원한 과제다.

현재 세종문화회관의 재정자립도는 고작 35% 정도에 머문다. 누적된 적자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2017년 기준 세종문화회관의 전체 예산은 약 470억이었다. 그중 인건비는 300억, 공연제작비는 50억, 공연수익금은 37억 수준으로 집계된다. 전체예산 대비 인건비 비율이 높다는 것은 큰 약점이다. 상대적으로 공연제작비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완성도 높은 작품창작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적 결함이 엿보인다.

주지하다시피, 공공예술극장은 구조적으로 수익창출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공공예술극장 경영평가에서 수익창출은 중요한 준거로 작동된다. 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훌륭한 공연이 반드시 돈을 잘 버는 것도 아니고, 돈을 잘 버는 공연이 반드시 훌륭한 공연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특히 순수예술 내지 기초예술에 속하는 무용장르는 공연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기엔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다. 따라서 세종문화회관 경영진 스스로 수익창출이라는 ‘악마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성과를 낼 것인가?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예술성 높은 작품창작을 통해 국민들의 문화향유권을 충족시키는 작업에 더욱 집중하는 것이다. 시대정신을 담은 ‘미래의 고전’을 위한 작품창작 말이다. 이와 같은 잣대로 현재의 서울시무용단을 진단하면 퇴행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과거 서울시무용단의 존재론적 위상과 비교하면 평가는 더욱 인색해질 수밖에 없다.

1974년 창단된 서울시무용단은 현대 한국무용사에 유의미한 족적을 남겼다. 문일지 초대 단장을 비롯 배정혜, 임학선으로 이어지면서 한국창작춤 명작이 탄생되는 산실로서 그 존재감이 뚜렷했다. 1999년 법인화를 기점으로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법인화로 전환되는 과도기에 노사갈등으로 인한 진통을 겪으면서 서울시무용단이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후 이홍이, 김백봉, 예인동 감독을 거치면서 한국창작춤 지향이라는 서울시무용단의 예술적 정체성은 상당 부분 퇴색되었다.

신무용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최승희의 직계제자 김백봉의 선임은 애초 무리였다는 지적이다. 원로로서 안정감 있는 단체운영에는 보탬이 되었으나 서울시무용단 고유의 예술적 정체성 구현과는 거리가 먼 인선이었다. 바통을 이어받은 임이조 역시 호의적인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그는 호남춤의 명인 이매방의 수제자로서 우리시대 최고의 명무였다. 그러나 창의력 발현이 우선시 되는 서울시무용단 예술감독직은 애초 자신과는 맞지 않는 옷이었다.

작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예인동 예술감독 이후 서울시무용단 감독직은 현재까지 1년째 공석이다. 박인배 전 사장 시절 선임된 예인동 감독은 연임에는 성공했으나 6년간의 창작활동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무용단 예술감독 임명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이승엽 전 사장은 불운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속에서 서울시무용단은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졌다. 근래 몇 년 동안 서울시무용단은 특별한 예술적 성과 없이 일회성으로 초빙된 몇몇 원로무용가들에게 안무를 의존하거나 심지어 발레무용가 손에 맡겨졌었다.

그런 점에서 작금의 서울시무용단은 표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창작춤 지향이라는 서울시무용단의 예술적 이념의 잣대에서 볼 때 위기임에 틀림없다. 무엇이 문제인가? 서울시무용단 고유의 예술적 이념을 고려하지 않고 세종문화회관 사장 개인의 호불호 혹은 사적(私的) 인연으로 예술감독을 선임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법인화 전환 이후 서울시무용단이 뚜렷한 예술적 성취를 이루지 못한 치명적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억하건대, 서울시무용단은 한국창작춤의 메카로서 그 위상이 컸다. 창작춤의 미학적 흐름을 선도하면서 한국 예술춤의 패러다임을 앞장서 견인해 왔다. 서울시무용단의 예술적 이념이 예술감독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예술감독은 단체를 책임지는 수장으로서 그 단체의 얼굴이자 상징이다. 최고의 실력을 갖춘 한국창작춤 안무자를 서울시무용단 예술감독으로 선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취임한 김성규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여러 당면과제를 앞두고 있다. 서울시무용단 예술감독 선임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과제 중 하나로 여겨진다. 다행히 그는 예술감독을 직접 임명할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권한은 책임을 수반한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실력있는 예술감독이 조속히 선임되길 바란다. 아울러 서울시무용단이 한국창작춤의 산실로서 그 위상을 회복하고 수준 높은 공연활동을 통해 국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채워주는 공공무용단체로 거듭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