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숙의 문화읽기] 60년대 가피아스의 공연기록
[성기숙의 문화읽기] 60년대 가피아스의 공연기록
  • 성기숙 무용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승인 2018.11.19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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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기숙 무용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무대에 오른 노학자의 첫 인상은 자상하고 온화한 모습이다. 백발이 성성한 노학자는 60여년 전 한국에서의 공연기록화 작업과 얽힌 주변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청중들의 질문에도 특유의 친근한 미소를 곁들여 화답하는 모습이 인상깊게 다가온다.

미국의 음악인류학자 로버트 가피아스(Robert Garfias, 1932~ ). 그는 자신이 기록한 1960년대 희귀 국악자료 공개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15일 한국을 찾았다. 가피아스는 1961년 한국과 첫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그 후 1966년 미국 록펠러재단 지원으로 한국을 방문한 그는 한국 전통공연을 사진과 영상기록으로 남겼다. 사진 788점, 음향 185점, 영상 55점 등 엄청나고 방대한 분량이다. 청년기 이국땅에서 보낸 열정과 신념의 산물인 방대한 공연기록물을 아무런 조건 없이 한국의 국립국악원에 기증했다는 사실은 실로 감동적이다.

1966년 5월 20일 서울에 도착한 가피아스는 종로 운당여관에 머물렀다. 운당여관은 여류명창 박귀희가 운영한 여관이자 민속가무악의 산실로서 김소희, 한영숙 등 무형문화재 제1세대 전통예인들의 아지트였다. 가피아스 컬렉션에 김소희의 기록물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그가 운당여관에 머문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가피아스는 한국 체류 기간에 만난 음악전문가들을 자신의 ‘친구들’이라고 소개한다. 한국과의 친연성이 예사롭지 않다는 증거다. 그는 한국에 머문 기간동안 한국 전통음악을 몸소 체험했다. 그만큼 한국 전통음악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황병기에게 가야금을 익히고 김태섭에게 피리, 그리고 김기수에게 단소를 배웠다. 이혜구, 성경린, 장사훈, 이두현 등 전문학자들과도 두터운 교분을 쌓았다. 당시 한국 전통공연의 기록화를 위해 전문학자들의 도움은 절대적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가피아스 컬렉션에 포함된 무용종목은 다채로운 편이다. 처용무, 포구락, 가인전목단, 무고, 춘앵전 등 궁중정재 다섯 종목과 살풀이춤, 장고춤, 부채춤, 동래야류 등 민속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궁중정재의 경우 현행 춤 형식과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대신 영상에 비춰진 살풀이춤 무용수는 낯설게 여겨졌다. 한복이 아닌 일상복 차림의 원피스를 입고 춤을 추고 있기 때문이다. 공개된 영상이 제한적이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심지어 호남춤의 명인 이매방도 레오타드와 타이즈 차림으로 살풀이춤을 춘 것으로 알려진다. 왜 그랬을까? 

의문이 해소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가피아스는 무용수들의 춤동작을 보다 정확히 영상기록에 담아내기 위해 일상복 차림으로 실연해 줄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춤동작이 의상에 가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묘책이었던 셈이다.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한 기록자의 의도를 간파할 수 있는 대목이다. 

가피아스가 담아낸 60년대 기록물을 통해 당시 연행되었던 전통춤의 ‘본디 그 모습’ 그대로의 몸짓을 음미하고 나아가 우리 춤의 고유미 내지 원형 탐색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가피아스 컬렉션은 우리 전통가무악의 ‘날 것’의 가치성과 함께 ‘즉흥성’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운다.

즉흥성이 민속가무악 뿐만 아니라 정재반주곡에서도 구현되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학계에서는 전통 속 ‘날 것’과 ‘즉흥성’이 무형문화재 지정 이후 정형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 지점에서 가피아스 컬렉션의 존재론적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한다. 그는 즉흥성이 망실된 채 정형화된 한국 민속음악의 현실을 못낸 애석해 한다. 한국음악을 통찰하는 그의 심미안이 놀랍기만 하다. 그는 가야금의 명인 심상건의 타고난 즉흥성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가피아스는 한마디로 심상건의 ‘광팬’에 가깝다. 그는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심상건의 산조를 즐겨 들으며 일상을 소일한다고 밝혔다. 서양음악 째즈의 즉흥성에 비유하여 심상건의 가야금산조에 구현된 즉흥성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가피아스는 어떤 경로로 심상건의 음악과 조우했을까?

미루어 짐작컨대, 가야금의 명인 황병기를 통해 그의 음악을 접한 것이 아닐까 싶다. 황병기는 즉흥연주의 달인으로 손꼽히던 스승 심상건을 한국 최고의 가야금 연주자로 여겼다. 그는 60년대 초반 서울 무교동에 있던 심상건의 집을 수시로 드나들며 가야금을 배웠다. 1965년 심상건이 미국으로 건너가기 직전까지 배움의 시간을 이어갔다. 가야금의 명인 황병기 선생은 지난 겨울 우리 곁을 떠났다. 가피아스는 황병기 선생을 친구이자 귀중한 조언자로 기억한다. 

가피아스 컬렉션을 주제로 한 이번 국립국악원의 학술세미나가 조금 더 일찍 열렸다면.... 가피아스와 황병기의 조우를 통해 보다 더 풍성한 히스토리(history)가 생산되는 기회의 장이 소실된 것 같아 아쉽다. 가피아스는 어떤 측면 우리보다 더 한국의 전통공연을 보다 ‘깊고 넓게’ 통찰하고 있는 것 아닐까? 그가 남긴 글귀를 두고 두고 곱씹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날로 증진하는 기술시대를 따라 경쟁하면서 우리의 과거를 다시 돌아보고, 우리가  나아가고 있는 그 길 가운데에서 우리가 가졌던 중요한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고 가는 것은 아닌지 또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한국의 과거 속에는 굉장한 풍요로움이 깃들어 있었다. 나는 그때 우리가 기록한 그 음악과 춤이 오래 전부터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것을 상기시키고, 우리가 알고 있는 최선을 다음 세대에 어떻게 전할 것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를 바란다” (가피아스, 「1966, 한국에서의 영상 촬영과 녹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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