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 뮤지컬 ‘마틸다’의 방진의 배우에게
[윤중강의 뮤지컬레터] 뮤지컬 ‘마틸다’의 방진의 배우에게
  • 윤중강 /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18.12.17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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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중강 / 평론가, 연출가

7초! 7초였습니다. 내겐 딱 7초처럼 느껴졌습니다. 내가 뮤지컬 ‘마틸다’를 보는 건, 그 7초를 보기 위해섭니다. 뮤지컬 ‘마틸다’의 7초가 궁금하지죠? 

“7초란 어느 정도의 시간일까?” 먼저, 그걸 알아볼까요. 라디오방송에선 7초 동안 정적이면, 확실한 ‘방송 사고’라고 합니다. 7초 동안 아무 소리가 나지 않으면, 자동으로 ‘비상용 음악’이 나온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이게 사실인지는 모릅니다. 지금까지 라디오방송에서 7초 동안의 정적이 있었던 적이 없으니까, 실제 확인한 적도 없었던 거죠.
 
뮤지컬 ‘마틸다’의 7초를 이제 알려드립니다. 허니 선생님(방진의)의 얘기를 듣고, 마틸다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는 장면입니다. 그러다가 허니 선생님에게 다가가서 와락 껴안는 장면입니다. 이게 내겐 딱 ‘7초’로 전해졌습니다. 내가 마틸다를 또 본다면 이 장면을 보기 위함이고, 이 장면을 또 봐도 눈물이 와락 한 방울 똑! 또 떨어질 겁니다. 

내가 본 마틸다에서 미스 허니, 곧 허니 선생님은 줄곧 당신이었습니다. 다른 배우를 못 봤습니다. 뮤지컬 ‘마틸다’에선 ‘미스 허니’로 방진의 배우를 처음 만났기에, 다른 배우의 ‘연기’를 보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이건 내게 매우 특이한 경웁니다. 나는 좋아하는 뮤지컬이 생기면, 시간과 경제력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최대한 모든 출연 배우를 다 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내게 ‘마틸다’를 더 볼 수 있겠지만, 미스 허니만큼은 방진의 배우로 보겠다는 결심은 변함없습니다. 

방진의 배우님, 내가 왜 이럴까요? 첫째, 우선 미스 허니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둘째, 방진의라는 배우의 진정성이 그대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알다시피 마틸다는 가정에서 사랑받는 아이가 아닙니다. 첫째 남자아이가 아닌 여자아이로 태어나서 불행은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마틸다를 자신의 ‘딸’로 인정하지 않죠. 둘째, 여느 아이처럼 텔레비전을 보면서 놀지 않기 때문에, 부모는 마틸다를 미워합니다. 마틸다가 늘 책만을 가까이하는 모습을 보기 싫은 거였죠. 미워한다는 건 애증(愛憎)의 범주에서 생각할 수 있지만, 싫어한다는 건 유감스럽게도 경멸(輕蔑)을 뜻합니다.

가족애 물론 도덕성, 아니 이런 거창한 것을 떠나서, 부모로서 자식에 대한 도리(道理)를 상실한 ‘개념 없는’ 마틸다의 부모인 미세스 엄우드와 미스터아버지 엄우드는 마틸다가 ‘꺼져 주길’ 바랄 정돕니다. 

마틸다가 어린 시절 유일하게 숨통이 틘 공간은 도서관이었죠. 마틸다는 미세스 펠프스 앞에서, 늘 유일하게 거짓말을 하는 게 있죠. 자신이 총명하기에 부모에게서 늘 사랑을 받는 아이라는 걸 강조합니다.

학교에 들어가서도 마틸다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마틸다는 이렇게 자신을 ‘위장’을 하는 건, 어린 소녀가 세상에 더욱 상처받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일종의 ‘방어벽’인 것이죠. 

마틸다의 뛰어난 능력을 처음 알아본 사람이 바로 당신! 허니 선생님입니다. 마틸다의 방어벽을 없어 준 사람이 허니 선생님입니다. 마틸다의 아픔과 고통의 방어벽이 무너지는 시간이, 내게 ‘7초’처럼 느껴졌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이 순간은 내게 어떤 대사, 어떤 노래, 어떤 연기보다 감동을 주는 순간입니다. 

방진의 배우님. 마틸다의 ‘미스 허니’는 내겐 당신의 배우인생에 있어서 전환점인 것 같습니다. 당신과 관련한 신문기사의 제목이 이러했죠. “'마틸다' 방진의 "출산 후 첫 오디션, 힘을 다해 봤다” 일상의 대화에서 ‘연기한다’라는 단어가 ‘거짓’이란 동의어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 ‘연기’와 ‘진정성’은 매우 거리감이 있죠.

마틸다에서의 ‘미스 허니’, 곧 방진의 배우는 ‘연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 순간에 실제 ‘미스 허니’가 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잘 쓰는 빙의(憑依)란 단어를 여기에 써도 괜찮을까요?

뮤지컬 ‘마틸다’를 본 사람들의 소감은 대략 비슷하더군요. 첫째는, 모두 어린 배우들이 너무도 잘한다는 말이죠. 둘째는, 작품이 무겁다는 말입니다. “‘뮤지컬인 만큼’ 좀 더 웃음과 재미를 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합니다. 첫 번째는 나 또한 물론 동의하지만, 두 번째는 난 좀 달리합니다. 뮤지컬 혹은 대한민국뮤지컬이 너무 재미로만 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부터의 글은, ‘방진의’라는 배우를 통해서, 내가 그간 하고 싶었던 ‘대한민국 뮤지컬에 바란다’는 얘깁니다.

대한민국뮤지컬에서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도 연기 같아서’ 질려버린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대한민국 뮤지컬의 성장에 비해서, 대한민국 뮤지컬의 연기는 80년대와 90년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얘기하면 섭섭하실까요? 

뮤지컬 ‘마틸다’에는 좋은 배우가 출연합니다. 작품의 재미와 극적 갈등을 위해서 많은 배우가 기여합니다. 역할에 따라서 ‘오버’가 필수이겠지만, 마틸다에선 거의 모든 배우가 실제 상황과는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아이들에게선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도 상대적으로 덜 들고, 상황이 어떨지라도 오버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반면 어른은 다릅니다. 유일하게 방진의 배우만이 그렇지 않습니다. ‘미스 허니’라는 실제 인물이 무대에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미스 허니 또는 방진의 배우가 있기에, 이 작품의 주제가 깊게 전달됩니다. 

방진의 배우님, 뮤지컬 ‘마틸다’ 프로그램북에서, 당신이 쓴 글을 읽고 있습니다. 

“마틸다가 부르는 침묵(Quiet)에서의 침묵! 이라고 외치는 장면이 정말 좋아요. ‘침묵’이라고 외치는 순간 진짜 모든 것이 멈춰버린 느낌이 들어요. 정지된 것 같은 이 순간은 몇 번을 봐도 항상 전율이 오죠. 내 마음을 누가 손으로 어루만져주는 느낌이고 내 자신이 침묵해야 할 때인가? 라고 생각하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장면이죠” 

뮤지컬 ‘마틸다’라는 수준있는 작품에서, 미스 허니가 된 방진의배우를 만난 게 참 ‘희망’이었습니다. 작품 속에서 마틸다가 이젠 ‘무장해제’를 해도 될 미스 허니란 존재를 만난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방진의란 배우가 앞으로 대한민국뮤지컬에서 ‘불필요한 오버’를 없애는데 앞장서고, 뮤지컬을 통해서도 깊은 감흥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려주게 되길 희망합니다. 

방진의 배우님, 앞으로 또 다른 작품에서 ‘또 다른 7초’를 만들어주세요. 객석에 있는 관객에게, 작품을 깊게 바라보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 ‘순간’을 ‘영원’처럼 기억하겠습니다. 

방진의 배우를 비롯한 뮤지컬 ‘마틸다’의 모든 배우들, 끝까지 건강하게 막공까지 파이팅하시기 바랍니다. 

* 뮤지컬 ‘마틸다’. 2019년 2월 10일까지, LG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