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국의 국악담론] 이 시대에 왜 연극‘시인 백석을 기억하다’인가?
[김승국의 국악담론] 이 시대에 왜 연극‘시인 백석을 기억하다’인가?
  • 김승국 노원문화예술회관 관장
  • 승인 2018.12.17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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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국 노원문화예술회관 관장

지난 해 말 우리 노원문화예술회관에서는 연극 '시인 윤동주를 기억하다'를 창작·제작하여 올렸다. 대부분의 지역 문예회관이 기획공연이라는 명칭으로 많은 공연을 올리고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공연 기획사가 제작한 공연을 제안 받아 무대에 올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지역 문예회관의 재원부족 등 여건상 그러한 관행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래도 지역 문예회관이 예술가들의 창작 산실의 역할도 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우리 노원문화예술회관이 지난 해 창작 연극을 ‘시인 윤동주를 기억하다’를 제작하게 된 이유가 지난해가 모진 풍파 속에서도 독립한 나라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죽음의 나락에 빠진 민족을 사랑했고, 자신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며 한 몸을 민족의 제단에 제물로 바쳤던 서정시인 윤동주 서거 100주년이라 그것을 기념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제작 극장으로서의 노원문화예술회관의 브랜드와 역할을 지키기 위함의 의미도 있었다. 

그런 마음으로 올 해도 지난해에 이어 연극 '시인 백석을 기억하다'를 제작하여 올린다. 이번 연극 안에는 시인 백석과 기녀 '자야'와의 지고지순하고 서글픈 사랑도 그려져 있지만, 법정스님의 말씀에 크게 깨우쳐 몇 천억 원을 호가하는 자신의 요정 '대원각'을 법정 스님께 아무 조건 없이 시주하여 오늘의 '길상사'가 있게 한 대원각 주인 보살 길상화 '자야'와 말과 글과 행동이 일치한 삶을 살다 가신 이 시대의 소금과 같은 법정스님의 고매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래서 올 초 부터는 틈만 나면 이 세 사람의 숙명적인 인연이 서려있는 성북동에 소재한 길상사를 들러 백석과 자야, 그리고 법정스님을 떠올리며 뜨락을 거닐며 세 사람의 숙명적인 관계를 연극으로 풀어가고자 하였다.

시인 백석(1912~ 1996)은 1936년 시집 ‘사슴’으로 문단에 데뷔하였다. 방언을 즐겨 쓰면서도 모더니즘을 발전적으로 수용한 토속적이고 향토색이 짙은 시를 쓴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인 시인으로서 시인 윤동주가 가장 존경하고 좋아했던 시인이다. 윤동주의 시를 읽다보면 백석의 시가 보인다. 

시인 백석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일보 출판부에서 일하다 사직하고 함흥 영생고보에 교사생활을 하다 함흥권번에 기녀로 있던 자야와 숙명적인 만난다. 그들은 곧 깊은 사랑에 빠졌으나 백석의 부모에 반대에 부딪혀 백석은 고향 평북 정주로 돌아가 부모가 정해 준 여인과 결혼하게 된다. 이에 상심한 자야는 훌쩍 서울로 떠나고, 그것을 모르던 백석은 자야를 만나기 위해  함흥을 다시 찾아 왔으나 끝내 자야를 만나지 못한다.

백석은 8.15 광복 후 고향 평북 정주에 머무르다 남북이 분단되어 북에서 살다 1996년 세상을 떠난다.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끝이 나게 된 것이다. 그 이후 자야는 남에서 성공하여 요정 대원각을 운영하게 된다. 자야가 “나의 전 재산이 백석의 시 한줄 보다 못하다”라는 말을 자주 했던 것으로 미루어 평생을 백석을 그리워하며 지냈던 것 같다. 

자야의 본명은 김영한(1916~1999)이다. 김영한은 정규 교육을 받은 인텔리 여성으로서 문학은 물론 여창가곡, 궁중정재에 능한 기예를 갖춘 권번 출신이었다. 말년에는 요정 대원각을 운영하다 평생을 무소유의 정신과 구도의 마음으로 언행이 일치된 삶을 사신 이 시대의 사표가 되신 법정 스님(1932~2010)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법정 스님은 승려이자 수필가로서 ‘무소유의 정신’인 자신의 철학을 저서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자야도 법정스님의 저서에 크게 감동을 받고 자신의 전 재산에 해당되는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시주를 하였고 법정스님은 대원각을 오늘 날의 길상사로 만들었던 것이다. 

내년에는 김소희, 박귀희, 한승호, 장월중선 등 판소리 명창들을 길러낸 국창 박동실(1897-1968)의 외손자로서 한국의 전통선율을 대중음악 속에 깊숙하게 깔아놓은 ‘하얀나비’, ‘이름 모를 소녀’, ‘날이 갈수록’, ‘저 별과 달을’, ‘달맞이 꽃’, ‘님’ 등 주옥같은 명곡을 작곡하여 부르다 요절한 천재 가객 김정호의 생을 재조명한 음악극 ‘가객 김정호를 다시 부르다’를 창작·제작하고자 준비에 들어갔다.  

'간절하면 통한다.'고 했나? 나는 그 말을 믿는다. 올 초 배우이자 연출가인 김도형 노원연극협회 회장을 만나 연극 '시인 백석을 기억하다'의 연출을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하였다. 김도형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과 배우들의 열정과 나의 이 간절함이 더해져 관객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