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 힙플레이스'에서 벌어지는 소동, '금기'를 과감히 풀어내다
'조선 최고 힙플레이스'에서 벌어지는 소동, '금기'를 과감히 풀어내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8.12.2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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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금란방>

서울예술단의 신작 <금란방>은 나라와 사회가 금기시하는 모든 것이 허락되고 무엇이든지 상상할 수 있는 '조선 최고 힙플레이스' 금란방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창작가무극이다. 이 작품은 서울예술단이 2000년 <대박> 이후 18년 만에 내놓는 희극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모아졌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금주령'과 '전기수'라는 두 가지의 소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조선 영조 시대에 강력한 왕권 확립을 위해 엄격한 금주령이 내려졌고 이를 잡기 위한 수사대의 이름이 바로 '금란방'이었다. 작품은 이를 바탕으로 하면서 역으로 수사대의 이름을 공연장의 이름으로 사용하며 역사의 상상 속의 새로운 전복을 시도한다.

▲ <금란방> (사진제공=서울예술단)

또 하나 주목되는 소재는 '전기수'다. 최근 정동극장에서 공연됐던 <판>을 본 이들이라면 전기수의 존재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전기수는 소설을 읽어주는 낭독자다. 하지만 전기수는 단순히 낭독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몸짓과 손짓, 표정과 말투로 연기를 하고 탁월한 말솜씨와 소리로 청중들을 매료시키는 존재였다. 

<금란방>은 왕에게 매일 밤 연애소설을 읽어주지만 지루하다는 왕의 호통만 듣는 서간관리자 김윤신(김백현, 최정수 분)이 도성의 유명한 전기수 이자상(김건혜 분)을 만나기 위해 부녀자들만이 간다는 금란방에 들어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문제는 그가 여자로 보이기 위해 딸의 매화장옷을 훔쳐갔다는 것이다.

김윤신의 딸로 얼굴도 모르는 이와 바로 다음 날 혼인을 해야한다는 것에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던 매화(송문선 분)는 마음 속으로 사모하던 이지상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금란방으로 가고 매화의 몸종 영이(이혜수 분)는 매화가 편지를 쓴 것처럼 '매화장옷을 입고 있을테니 금란방에서 만나자'는 편지를 매화의 정혼자인 윤구연(김용한, 강상준 분)에게 보내게 된다. 그러나 윤구연은 이 편지를 '단속제보'라고 생각하고 금란방으로 가게 되고 이 때부터 이들의 한바탕 소동이 펼쳐진다.

금란방은 부녀자들이 남편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풀고 이지상의 이야기에 환호하는 공간이다. 얼굴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결혼을 강요당해야하는 여성의 이야기도 여기에 있다. 조선시대 여성들이 자신들의 불만을 직접 털어놓고 이에 동조하는 여성들의 힘에 남성들은 주눅이 든다.

이지상이 펼치는 '청나라에서 들어온 이야기'는 극중극으로 보여지는데 바로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내용이다. 조선시대에 함부로 할 수 없는 이야기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 <금란방>은 조선 시대 혹은 지금도 금기로 남아있는 부분들을 시원하게 풀어낸다 (사진제공=서울예술단)

이처럼 <금란방>은 조선 시대의 금기를 유쾌하게 풀어내면서 매화장옷을 놓고 등장 인물들이 혼란을 느끼는 한바탕의 소동극을 보여준다. 이 형식은 주로 몰리에르의 희곡에서 등장하는데 특히 김윤신이 윤구현에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매화장옷을 입은 여성의 흉내를 내는 장면, 그리고 장옷을 훔친 사람을 잡겠다고 등장인물이 벌이는 추격전(?)이 재미를 더한다.

이지상은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자 동시에 이 작품의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이다. 그는 김윤신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법을 가르치면서 '용기'를 가지라고 조언한다. 김윤신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것은 바로 나라가 금하고 있던 '술'이다. 여성이지만 남성의 모습으로 활동해야하는 전기수 이지상의 카리스마가 이 작품의 또 다른 관람 포인트다.

소극장 무대에다 양 옆에 관람석을 만든 무대 장치를 생각하면 관객과의 소통이 조금 더 필요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있다. 또 기자가 본 공연에서만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화려함에 치중한 나머지 노래 가사가 전달이 되지 않은 점 또한 아쉬운 대목이다.

그렇지만 <금란방>은 조선 시대, 아니 어쩌면 지금도 금기가 되어있는 부분들을 시원하게 풀어낸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서울예술단의 <금란방>은 30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