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기획]작가를 말하다4-경계를 허물며 끊임없이 세상과 이야기를 나누는 작가, 김구림
[테마기획]작가를 말하다4-경계를 허물며 끊임없이 세상과 이야기를 나누는 작가, 김구림
  • 박주원 미술평론가
  • 승인 2018.12.31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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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좌표를 향해 나아가는 작가, 사물과 현상의 상대적이고 총체적인 이야기를 작품에 담아내다
아방가르드(Avant-garde), 작가 김구림(1936~ )을 말하는 수식어이다. 전위적이고 실험적이며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는 예술적 모험가인 김구림은 타인이 걸어가는 길을 따르는 것이 아닌, 타인과 분리되어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 
 
그는 사회적으로 정립되어 있는 기준들을 예술 안에서 실험적인 방식을 통해 승화시키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고정된 판단을 따르지 않기에 그의 작품은 실험적이며, 타인과 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두지 않았기에 그의 작업은 전위적이다. 그런 점에서 김구림의 작업은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우리 삶의 모습을 담고 있다.  
 
하나의 이야기만으로는 귀결될 수 없는 삶처럼 관계와 통합, 현상과 흔적 등 교차되는 많은 것들이 김구림의 작품에서는 동시에 드러난다. 그는 너무나도 많은 것들에 휘말리기 쉬운 현대의 삶을 사는 우리들에게 누군가의 말에 의해서가 아닌 자신의 좌표를 믿고 매일 새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서 말해주는 듯하다.     
 
관계와 통합
 
작가 김구림은 미술대학을 1년 정도 다니다 그만두고 헌책방에서 『라이프』와 『타임』지를 보며 영화, 미술, 음악, 무용 등 다양한 서양 현대 예술에 대해 독학하며 터득하였다. 그는 이를 통해 외국의 작가들은 ‘모사를 잘 하는 것’과 기술적인 부분으로 예술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지니고 있는 미학관과 철학을 바탕으로 작업을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후 그는 노자와 장자 등 동양철학 및 영화, 연극, 무용, 음악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며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것에 집중해왔다.
 
김구림의 작품을 관통하는 대표 주제인 ‘음양(陰陽)’은 동양의 이치를 담고 있는 단어이다. 작가는 “세상의 모든 이치가 음과 양으로 되어 있다.”라고 언급하며 음양을 제목으로 짓게 되었다고 하였다. ‘음양’은 마치 대립구도를 나타내는 것 같지만 상대적인 것이다.
 
物無非彼 物無非是 自彼則不見 自知則知之
故曰 彼出於是 是亦因彼 彼是方生之說也
雖然 方生方死 方死方生 方可方不可 方不可方可
因是因非 因非因是
是以聖人不由 而照之於天 亦因是也        ―「齊物論」
 
(사물은 어느 것이나 저것 아닌 것이 없고 동시에 이것 아닌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상대적 관점(自彼)에 서면 보지 못하고 주관적 관점(自知)에서만 본다. 그래서 저것은 이것에서 나오고 이것은 저것으로부터 말미암는다고 하여 이것을 (혜시惠施는) ‘저것과 이것의 모순 이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생生과 사死, 사와 생 그리고 가可와 불가不可, 불가와 가는 (서로가 서로의 존재 조건이 되는) 모순 관계에 있다. 가가 있기에 불가가 있고 불가가 있기에 가가 있는 법이다. 그러기에 성인은 특정한 입장에 서지 않고(不由) 하늘에 비추어 본다고 하는 것도 역시 이 때문이다(亦因是也). 신영복, 『강의』, 파주: 돌베개, 2004, pp. 321-322)
 
신영복 교수는 자신의 책 『강의』에서 장자의 ‘제물론(齊物論)’에 대해 소개하며, 도가의 상대주의를 집약적으로 표현한 부분이라고 언급하였다. 1) 모든 것에 깃들어 있는 상대적인 측면에 대해 일깨워주는 이 글귀는 김구림의 작업과 많이 닮아 있다.
 
김구림의 작품에는 관계와 통합에 대한 사고가 담겨있다. ‘관계’와 ‘통합’이라는 것은 어느 하나만으로 홀로 성립이 불가한 것이고, 또한 어떤 것이 다른 것에 귀속되어서는 실현되지 않는 것이다. 여럿이 함께 공존할 때 그들 간의 관계와 상대성을 이해하는 것은 독자적인 존재를 이해하는 것보다 더욱 어렵다. 들어야 할 것, 고심할 것이 너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이란 길거리에 존재하는 하나의 돌멩이처럼 덩그러니 살아갈 수 없는 것이기에, 우리는 매일 타인과 어울리며 서로의 생각을 공존시키려 노력한다. 그렇기에 어느 하나 쉽게 정리하기도 아집을 부리기도 어렵고,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 많은 나뭇가지들을 잘라내기도 쉽지 않은 것이다. 장자가 제물론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인간관계를 포함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가(可)와 불가(不可)처럼 서로 모순되기는 해도 서로가 서로의 존재조건이 되는 것이다. 
 
<음과 양 99-S 211(Yin and Yang 99-S 211)>(1999)은 신문과 비닐, 컴퓨터 칩 등으로 만들어진 설치 작품이다. 한쪽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하던 신문들이 쌓여 있고, 컴퓨터 칩은 통로를 통해 신문과 연결되어 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던 미디어의 양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면서도 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미디어의 관계를 보여준다. 
 
또 다른 작품인 <풍경(Landscape)>(1987)에는 한 화면에 진짜 나뭇가지와 나뭇가지의 흔적이 있는 배경이 함께 그려져 있다. 김구림은 실제 나뭇가지와 풍경 안에 존재하는 나뭇가지의 흔적을 보여줌으로써, 나뭇가지로 대표되는 물질의 속성을 여러 방면에서 생각해보게 한다. 작가는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서 사물을 한방향의 고정된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닌, 상대적인 부분들과의 관계를 작품 안에 표현하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양한 사고를 가능하게 하였다. 
▲ <음과 양 99-S 211(Yin and Yang 99-S 211)>, 1999, Newspaper, Computer Chip, Vinyl, Ticking of a Clock, 57.0×400.0cm
▲ <풍경(Landscape)>, 1987, Acrylic on Tree Branch and Canvas, 142.0×174.0cm
장자의 말처럼 ‘이것이 저것이 될 수 있고, 저것이 이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상대적인 부분들을 생각하다 보면 결국엔 통합의 이치에 이르게 된다. 하나만을 계속 고집하다보면 꺾일 수가 있고, 나의 입장만을 주장하다보면 독선에 빠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의견들을 듣고 함께 생각하며 자신의 이론을 재정립해가는 과정에서 통합은 피어나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롭고 신선한 길을 제시해준다. 
 
이러한 부분은 그가 처음에 만들고 통령(회장)으로 활동했던 《제4집단》에서도 드러난다. 《제4집단》은 하나의 예술 장르가 아닌 다양한 부분에서 모인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단으로, 김구림의 통합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예이다. 이 집단은 노장사상(老莊思想)의 ‘무위 정치론’에서 가져온 무체사상을 기조로, ‘정신과 물질의 분리를 지양하여 일체화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것을 예술적인 차원으로 일체화시키자’2)는 것을 목표로 한다. 
 
김구림 작가는 《제4집단》을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한국 아방가르드 협회(AG)를 만들고 활동을 하며 잡지를 만들어야 해서 평론가 3명을 영입했었다. 또한 일렉트릭 아트를 혼자 만들었는데, 하다 보니 혼자는 어려운 부분이 많았고 기술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일련의 이런 과정을 겪고 나니 앞으로 현대미술을 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의 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제4집단》을 만들었다.” 
 
그는 영화, 연극, 음악, 무용, 엔지니어, 정치, 종교 등 통틀어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모아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교류할 수 있는 《제4집단》을 만들었고, 1970년 6월 20일 결성대회를 하였다. 작가는 2000년의 인터뷰에서 이 집단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그 때나 지금이나 예술은 사회 전반의 영역과 통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3)라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당시의 사회는 자신의 목소리를 바로 내기 어려운 사회였고, 조직과 나라의 공통의 목적을 위해 사람들의 개성을 위험한 것으로 치부하던 사회였다. 개인이 지니고 있는 성격을 바탕으로 다양하고 유동적인 사고를 장착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다양한 계층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제4집단》은 국가에서 보기에 위험한 집단이었고, 결국 정부의 압력에 의해 해산을 하게 되었다.4)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양성을 인정하고자 하는 요즘의 사회와는 다르게 획일성과 수직성을 강요하던 당시의 사회에서 의견을 공유하고자 했던 《제4집단》의 특성은 사회의 분위기와는 맞지 않는 것으로 보였을 가능성이 있다. 
 
국가에 의해 해체되기 전까지 이들은 몇 번의 퍼포먼스만을 수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의 만남이 만들어낸 실험적이고도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기성예술과는 다른 방식으로 예술이 뻗어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 《제4집단》 관련 신문기사
또한 김구림은 무대미술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무대미술은 이미 캔버스, 화랑, 미술관을 넘어서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퍼포먼스나 대지미술을 선보여온 작가가 만들고자 했던 또 다른 총체미술이자 전시 작품이었다. 그는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살풀이 8(Exorcism 8)>(1988) 공연의 무대미술을 하기도 하고, 존 케이지의 음악을 배경으로 만든 공연인 <무제(Untitled)>(2013)라는 제목의 작품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보여주기도 하였다.5) 
▲ <살풀이 8(Exorcism 8)>, 1988, 호암아트홀
이처럼 작가는 분야를 나누고 한 쪽에만 치우치거나 매몰되는 것을 지양하고 예술의 전 분야를 아우르는 작업들을 진행해왔다. 대립되고 인위적인 부분, 극단적인 부분들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 아닌 다양성과 총체성을 작품에서 보여주고자 하였다. 
 
현상과 흔적 
 
‘현상(現象)’과 ‘흔적(痕跡)’이라는 주제는 김구림의 다양한 작업에서 드러난다. 2000년에 작가의 전시가 ‘현존과 흔적’이라는 이름으로 열릴 정도로 이 주제에는 작가의 아이덴티티가 담겨있다. 대지미술, 실험적인 퍼포먼스 등으로도 잘 알려진 김구림의 작업은, 고정된 작업이 아닌 그 순간과 그 상황을 반영한 작품들이기에 더욱 현실적이다. 김구림은 이러한 작업들을 통해서 관람객들에게 과정에 의해서 생성된 결과를 보여주고,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관람객들이 상상할 수 있도록 한다.  
 
1969년에 만들어진 <현상에서 흔적으로(From Phenomenon to Traces)>라는 작업은 플라스틱 박스, 얼음, 트랜스페런트 종이로 이뤄진 작업이었다. 얼음이 녹으며 얼음과 함께 있던 종이는 말라붙으며 원래 종이와는 또 다른 성격을 지닌 종이가 된다. 그러나 종이를 변화시킨 얼음은 없어진 뒤이며, 관람객들은 얼음이 녹고 남은 종이 즉, 현재의 모습들을 목격하게 된다.
 
작가는 이 작업에 대해서 “그러나 여전히 그 자리에는 처음 얼음의 형태, 크기 등의 모습과 흔적을 종이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있음은 곧 없음의 상대적이다...(중략)... 물질과 비 물질, 현상과 사라짐 그리고 흔적, 이것은 곧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섭리이며 또한 이 세상사의 일면이기도 하다.”6)고 작가노트에 언급하기도 하였다.
 
또한 같은 글에서 작가는 “인간도 태어났다가 죽어가고 모든 만물이 그러하듯이 윤회(輪回)로서 환원(還遠)한다. 그 환원은 처음의 그것이 아닌 또 다른 새로운 모습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진리이며 도(道)이다.”7) 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이는 작가가 퍼포먼스, 대지미술 등 미술관 밖으로 나가 보여준 작품들을 중심적으로 설명해주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현상/흔적’에 대해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사건의 시간 흐름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 이후 남은 흔적이 있을 때 그 흔적은 처음과는 다르지만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한 ‘또 다른 현상’이라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예측할 수 없고 즉각적으로 마주하는 여러 일들을 경험해 가며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존재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각자는 자기의 삶의 현상을 흔적으로 겹겹이 쌓으며 조금씩 자신의 길을 만들어 나가는 존재인 것이다. 
▲ <현상에서 흔적으로(From Phenomenon to Traces)>, 1969, Plastic Box, Ice, Transparent Paper, 480.0×110.0×80.0cm
앞의 작품과 같은 이름의 <현상에서 흔적으로(From Phenomenon to Traces)>(1970)는 우리나라 최초의 대지미술로, 1970년 4월 11일 한강 살곶다리 부근의 잔디를 삼각형의 모양으로 태워 흔적을 남긴 퍼포먼스이다.
 
강둑의 풀을 태우고 거기서 새로운 풀이 돋아나면 예술‘작품’은 원래 모습의 자취마저 감춰버리고 만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된 작가노트처럼, 현상이 흔적이 되고 새로운 존재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 작품은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다시금 재현되기도 하였다. 
▲ <현상에서 흔적으로(From Phenomenon to Traces)>, 1970, 살곶이 다리 뚝방
김구림의 작업에서 드러난 현상과 흔적을 서로 연관 짓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하게도 ‘시간의 흐름’이다. 시간은 원래 있던 것도 없게 하고, 없던 것도 있게 하며, 새로운 것을 낡게 하기도 하고, 낡은 것이 새롭게 재탄생될 수 있게 한다.
 
작가는 작품 <삽(Shovel)>(1973)에 관해 “실제 새 삽을 사다가 고물처럼 만들고 닳게 해놓았다.”라고 언급 하였다. 일본에서 개인전을 할 당시 김구림의 작품을 보았던 평론가 미네무라 도시아끼는 그에게 “일본 미술이 잊고 있었던 시간의 중층성이라는 문제에 대해 귀중한 제언을 해주었다.”8)라며 그의 작품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포스트 프로덕션』에서 니꼴라 부리요는 “사물에 새로운 관념(idea)을 부여하는 것이 이미 생산 행위”라고 이야기 하며, “창조한다는 것은 사물을 새로운 시나리오에 삽입하는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9) 김구림은 의도를 가지고 원래 그 사물이 지니고 있던 성질이 아닌, 새로운 시간성을 부여하며 낯선 성질과 시간의 흐름을 지닌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즉 작가는 과거의 현상을 현재 물건이 가진 시나리오에 삽입하며 원래 있지 않았던 흔적까지도 새롭게 만들어낸 것이다. 
▲ <삽(Shovel)>, 1973, Installation, 89.0×26.0cm
▲ <걸레(Duster)>, 1974, Silk screen on Table cloth, ed.3, 120.0×74.0×70.0cm, 도쿄 국제 판화 비엔날레 출품작
이러한 작업 양상은 그가 만들어내는 판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김구림은 우리나라에 에칭, 드라이포인트 등의 판화기법을 소개하였고,10) 첫 판화 공방을 만들기도 했었다. <걸레(Duster)>(1974), <Stil Life B>(1981) 등은 판화라는 장르로 ‘도쿄 국제 판화 비엔날레’와 ‘서울 국제 판화 비엔날레’에도 출품을 한 작품으로, 원래 알고 있던 판화 작품과는 조금 색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다. 
 
작가는 “기존에 판화를 정의내리는 모호한 문제를 타개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상품을 예술로 끌어들이는 방식을 생각해보게 되었고, 테이블 클로스로 새로운 작업을 시도해보고자 하였다. 천에 컵 자국을 내기도 하고, 방석을 여러 개 만들어서 오랫동안 사용하면 땀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자 하였으며, 실크 스크린으로 물이 빠진 것을 만들어 내며 새로운 판화의 이론을 정립하고자 했다.”라고 언급하였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눈앞에 드러난 결과로서의 현상만이 아닌, 과정과 결과, 시간성, 그리고 현상이 지나간 뒤 흔적과 과거가 남는 세상의 이치에 대해 알려주고자 하는 듯 보인다. 

현실과 일상

▲ <1/24초의 의미(The Meaning of 1/24 Second)>, 1969, 제작·감독·편집·디자인 김구림
▲ 김구림 <1/24초의 의미>
앞에서 언급했던 시간, 현상, 흔적, 관계 등을 다루는 작품의 아이디어는 김구림의 현실인식에서 시작한다. 그는 계속 변화하는 현실, 그리고 그 속에 존재하는 일상을 포착해온 작가이다.
 
<1/24초의 의미(The Meaning of 1/24 Second)>(1969)는 김구림이 제작, 감독, 편집, 디자인을 하여 만든 영화이다. 그는 고가도로의 난간, 화면 내에 꽉 차게 보이는 건물들, 피어오르는 연기, 샤워하는 남자와 거리를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짧은 시간 내에 화면을 계속 바꾸면서 보여주고 있다. 
 
작품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은 쉴 새 없이 걸어 다니거나 일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이미지 사이에서 연관성을 찾기는 어렵다. 중간에 나오는 하품하는 남자는 움직임이 강조되어 나오던 이 작품에 쉼표와 같은 역할을 하며 개연성과 의미 없이 연결된 다른 화면들을 이질적으로 끊어낸다. 이 작품은 “현대가 다양하게 변화하고 큰 사건들이 벌어지기는 하지만, 사람들 개개인을 변화시킬만한 큰 사건은 없다.”11)는 점을 보여주는 작업으로 당시 소개되기도 하였다.
 
김구림은 이 영화를 통해 도시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무료함, 목적 없는 움직임, 연관성 없는 것들을 실험적으로 화면 안에 투사함으로써 관람객들에게 그들이 매일 마주하는 일상과 현실의 모습들에 새로운 감정을 부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김구림은 현실의 모습을 변화시키는 문명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1969년 이미 일렉트릭 아트를 선보이며 현대 사회의 기술적인 부분에도 관심을 가져온 작가는 2015년 내비게이션을 소재로 작업을 진행하였다. 
 
<음과 양-무덤(Yin and Yang-Tomb)>(2015)에서는 무덤에 갇힌 시체, 그리고 그의 무덤에 놓여 있는 수많은 내비게이션을 함께 보여준다. 내비게이션은 현대인들이 편리하게 자신에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게 하는 기기로, 작가가 기술이 인간의 삶을 변화시킨 대표적인 사례로 선택하였다. 
 
내비게이션이 더 발전하고 사람들에게 편리한 길을 안내할수록, 사람들은  길을 가야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과 관찰에 시간을 쏟지 않게 되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신이 직접 정보를 모으고 정리하며 독자적인 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닌, 혼자서는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하고 기계의 명령에 종속되어 버리는 인간의 모습을 나타내었다.  
▲ <음과 양-무덤(Yin and Yang-Tomb)>, 2015, Mixed Media, 400×400×257cm
작가는 성형에 관한 이야기 역시 작품에 풀어내었다. “2001년 성형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강남을 다니다 보니까 성형외과가 너무 많고, 한국의 여성들이 공장에서 빼낸 마네킹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여성들이 한 부분만 보면 예쁜데 모든 부분이 붙으면 괴물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을 파고 들어가게 되었다.”라고 작가는 말하였다. <음과 양 4-S 365(Yin and Yang 4-S 365)>(2004)를 보면 엎드려 있는 한 여성과 그 위에 꼴라주 되어 있는 눈과 입이 보인다. 각각의 눈과 입, 그리고 여성이 서로 다른 것을 보며 이야기 하고 있는 장면은 통합되지 않고 모두 어긋나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부조화를 바탕으로 하는 여성의 모습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개성과 정체성마저도 성형을 통해 없애버리고 이질적인 모습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보인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성형에 대한 이야기는 부조화하고 누군가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며 내면조차 마네킹화 되어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김구림은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세상에 의해서 만들어진 기준에 따라 일상을 무비판적으로 살아가는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스스로 자신의 좌표를 만들어온 김구림이 작품을 통해 현대 사회에 외치는 쓴 소리 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는 시리아 난민과 현대판 노예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작품을 하기도 하였다. <음과 양 15-S 45(Yin and Yang 15-S 45)>(2015)에는 바다 위에서 죽음을 맞이한 난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배를 타고 살 길을 찾아 나서는 난민들의 모습을 극단적이고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회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여 국민이 자신의 목숨을 이끌고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해야 하는 상황, 그러한 국가를 떠나기 위한 이주 역시 쉽지 않은 것이라는 점 등을 작가는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 <음과 양 4-S 365(Yin and Yang 4-S 365)>, 2004, Mixed Media on Panel, 20.0×15.0×6.0cm
▲ <음과 양 15-S 45(Yin and Yang 15-S 45)>, 2015, Mixed Media, Size variable
철학과 교수인 김상환은 『해체론 시대의 철학』에서 “계몽은 곧 자아의 고유한 판단을 대리하던 타인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선입견(Vorurteil)은 나의 판단(Urteil)과 입견(立見) 앞에(vor) 있는 타인에서 오기 때문이다. 진리에의 의지는 타인과 멀어지는 운동이며 고독함에로의 결단이다. 계몽은 타인과 분리되는 운동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12)라고 계몽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김상환의 말처럼, 김구림의 인생은 타인의 판단과는 다른, 독자적인 입견으로 이루어져 왔다. 다른 사람 없이 스스로 진행하고 혼자 할 수 있어 미술을 선택했다는 김구림은 스스로를 계몽하며 만들어 온 작품들을 통해 고독하고 진지하게 미술을 마주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따라가는 것은 당장은 쉬울 수 있으나 쉬워진 이후 홀로 땅을 딛고 일어서기가 어려워진다.
 
이 세상에 무수한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해도 결국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이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자신의 길을 만들어온 김구림의 인생은 그 자체로도 우리에게 울림을 던져준다. 
 
새삼 전위적이고 앞서 나간다는 뜻으로 김구림의 앞에 항상 붙어있는 ‘아방가르드(Avant-garde)’라는 단어보다 그에게 잘 어울리는 단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의 작품들에서는 그의 어떤 또 다른 견해를 만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각주
1)신영복, 『강의』, 파주: 돌베개, 2004, p. 321
2)장윤환, 「한국의 전위예술」, 『신동아』(1975.1), 김미경, 「《제4집단》」, 『미술사논단』, 한국미술연구소, Vol.11, 2000, p. 259에서 재인용.
3)김구림, 『현존과 흔적』, 2000, 서울 : 한국문화예술진흥원, 김미경, 「작가와의 인터뷰」, p. 77. 
4)“...(중략) 경찰서에 끌려가서 왜 제4집단이라고 명명했느냐, 집단의 상징으로 왜 백기를 사용했느냐, 자금은 어디서 나왔느냐 등으로 취조당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김구림, 『현존과 흔적』, 위의 글, p. 77.   
5)“이 작품은 1970년 100명의 무용수로 서울문예회관에서 준비 중 무산된 작품으로, 2013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실현한 것.” 김구림, 『김구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서울: 서울시립미술관, 2013, p. 59. 
6)김구림, 『KIM KU LIM』, 2015, 서울 : aMart Publications, Inc, p. 49. 
7)김구림, 『KIM KU LIM』, 위의 글, p. 49. 
8)김구림, 『KIM KU LIM』, 위의 글, p. 72.
9)니꼴라 부리요, 『포스트 프로덕션』, 정연심·손부경 역, 서울: 그레파이트 온 핑크, 2016, pp. 34-35. 
10)손경여, 박원우, 「“굶주려도 좋은 작품을 하고 싶었다!”- 서양화가 김구림 미국에서 영구귀국, 9월에 회고전 가져.」, 『미술세계』, 2000, p. 158. 
11)“서울의 쇼킹 풍조: 누드영화 만든 한국의 해프닝파”, 『주간경향』, 1969. 5. 4, p. 12, 김구림, 『김구림: 잘 알지도 못하면서』, 2013, 신정훈, 「서울 1969년 여름: 영화 <1/24초의 의미>와 김구림의 도시적 상상력」, p. 119에서 재인용.
12)김상환, 『해체론 시대의 철학』, 서울: 문학과 지성사, 2005, p. 380.
 
 
■글쓴이· 박주원(미술평론가)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전공했고, 동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2014년부터 노트폴리오 매거진에 현대미술에 관한 글을 썼다. 2017년 삼성미술관 LEEUM 학예연구실에서 인턴으로 일했고, 수원 대안공간 눈 <취향은 존재의 집> 공동 전시에서 '글로 배우는 연애' 전시를 기획했다.
 
*이 지면은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비평가 지원 프로그램에 본지 서울문화투데이와 박주원 작가가 각각 선정돼 4회에 걸쳐 4명의 작가론이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