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최우수상 수상자 인터뷰]마선숙 시인 “생활 속 가족의 갈등, ‘그래도 가족’이라는 건강함 보이고 싶다”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최우수상 수상자 인터뷰]마선숙 시인 “생활 속 가족의 갈등, ‘그래도 가족’이라는 건강함 보이고 싶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9.03.3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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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대학 진학, 젊은 학생들과 소통하는 계기 돼... 나이는 등단 걸림돌 아니다”

책이라면 무조건 좋아했던 여학생이 있었다. 하지만 맏딸의 의무감은 그를 학교가 아닌 취업과 살림의 길로 이끌었다. 9명의 대가족을 돌봐야하는 상황에서도 그는 틈틈이 책을 읽고 생활 속에서 일어난 여러 이야기들을 메모했다. 그렇게 그의 메모는 시와 소설이 됐고 마침내 60이 넘은 나이에 등단의 꿈, 그리고 만학의 꿈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의 노력은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최우수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 마선숙 시인과 만났다. 그리고 그 만남은 유쾌했다. 처음 만났음에도 마치 몇 번 이야기를 나눈 것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공감을 하는 분위기였다. 공감. 이것만큼 와닿는 단어가 있을까. 그렇게 공감 속에서 진행된 마선숙 시인과의 이야기다.

▲마선숙 시인이자 소설가. 2013년 '시와문화'를 통해 늦깍이 등단을 하기 전부터 여류문학인회 주최 제15회 주부백일장 장원, 문예진흥원 주최 제20회 마로니에 전국여성백일장 장원을 차지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2014년 <저녁의 시>로 불교문예 단편소설 부문에 당선됐고 '21세기 우수인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마 작가는 9명의 대가족을 돌보는 와중에도 펜을 놓지 않고 작가의 꿈을 키워왔고, 가난 때문에 학업의 꿈을 펴지 못했지만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가며 창작을 공부하고 유수의 백일장 장원을 거쳐 정식 작가로 등단해 활동하고 있다.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최우수상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 느낌은?

처음 듣자마자 반신반의했다. 사실 나는 상과는 인연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어느 문학상에 작품을 출품한 적이 있었는데 주민등록번호를 적어야한다고 했고 나중에는 나이 때문에 어렵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문단 활동을 하다 보니 학연, 혈연, 지연이 없다고 말하기가 어려웠는데 나이까지 많다보니 과소평가당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서울문화투데이가 상을 준다고 하니 '최선을 다하니까 하늘이 알아주는구나'라는 마음이 들더라.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상을 받으면 상값을 해야 하는데 과연 나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에 어깨가 무거워져 잠을 설치기도 했다.

▲지난 1월 24일 열린 제10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시상식에서 문학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마선숙 작가가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9명의 대가족을 돌보면서 집필을 한 것으로 들었다. 어떻게 가능했는지? 글을 쓰게 한 힘은 무엇이었는지?

시누이 넷, 시동생이랑 같이 살았는데 시누들이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이었다. 늘 대학에서 뭘 배우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시누들이 버린 문학개론, 인문학개론 같은 책들을 주워다 밤이면 혼자 읽어봤는데 재미있더라(웃음). 빨간 형광펜으로 밑줄을 쳐가면서 재미있게 공부했다. 어린 시절부터 책, 정확히 말하면 활자라면 뭐든지 다 좋아했고 눈에 띄는 건 다 읽었다. 고전소설, 문학작품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선데이서울'까지 읽었으니까(웃음). 그러면서 대학에 가겠다고 속으로 별렀다.

그전에 발표된 대가족 이야기를 보면 실제 대가족과 함께 사는 내 눈에는 관념적으로 공허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더러 보였다. 대가족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 문제들을 언젠가는 써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틈틈이 메모를 남겨 서랍 가득 모아놓았다. 작은 일에서 큰 문제를 끄집어내면서 나만이 쓸 수 있는 대가족 이야기를 만들어보겠다는 꿈을 가졌다.
오후에 시간이 나면 마을버스를 타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지금도 종종 하는 일인데 풍경들을 바라보며 작품을 구상한다.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학업의 꿈을 늦게 이루신 것으로 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텐데 어땠는지?

예전에는 맏딸이라면 진학보다는 취업을 먼저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그랬다. 그렇게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과 살림을 했는데 글을 쓰다 보니 대학에서 제대로 공부를 하고 싶었다. 남편에게 처음에 대학을 가겠다고 하니까 말이 없었다. 반기는지 싫어하는지 내색을 하지 않더라. 사실 대학에 가는 걸 달가워하지는 않았다.

항상 남편과 어긋나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이번만은 지지 않겠다고 마음 독하게 먹었다. 그렇게 바위처럼 버텼더니 시험 전날 남편이 시험장에 데려다주겠다고 차를 닦더라(웃음). 같이 가서 실기시험 보는 동안 밖에서 기다려줬다.

가족의 갈등, 가정의 붕괴를 주테마로 하고 있는데 그것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다른 작가의 작품들도 이 소재가 많은데 차이를 두는 부분이 있다면?

▲마선숙 작가의 시집과 소설집

가족의 의미가 점점 희미해져 간다. 한 집에서 한 솥밥을 먹지만 '하우스' 아닌 '홈'이라고 할 수 있는 가정이 얼마나 될까?  부모에 대해 가장 모르는 사람이 자식이고 자식에 대해 가장 모르는 사람이 부모다. 남편에 대해 가장 모르는 사람이 아내고 아내에 대해 가장 모르는 사람도 남편이다.

세대 간의 단절이 무섭고 우리 사회가 통과하고 있는 사회 현안들이 무섭다. 각각의 입장만 있지 대화가 없다.

실제로 우리가 4대가 모여 살았으니 각 계층이 다 한 집에 모인 셈이다. 밥 하나만 놓고 봐도 연세드신 분은 진밥, 남편은 중간밥, 그리고 자식들은 된밥을 좋아한다. 서로 밥이 다르면 먹기 싫어한다. 그러다보니 삼층밥을 지어야했다.  '삼층밥'에 세대 갈등이 나와 있다. 생활 속에서 파악한 것이다. 대가족 생활에서 직접 겪은 갈등들, 그리고 확실한 캐릭터가 내가 구현하는 차이다. 간혹 어떤 작품들은 등장인물을 너무 많이 만들다보니 인물들이 존재감 없이 사라지는 부분이 있었는데 나는 인물을 많이 만들기보다는 확실한 캐릭터를 보여주려 한다.

한편으로는 가족들이 각자 혼자 인 것 같지만 어떤 문제가 생기면 끈끈하게 하나로 뭉치는 모습을 통해 부정에서 화평으로 가는 과정을 다르게 모색해보고자 한다. 극단의 개인주의지만 그래도 가족일 수밖에 없는 건강함, 가족이란 이름의 폭력성 뒤에 숨은 따스함 같은 것을 보여주려한다. 

소설집을 보면 50대, 70대, 90대 부부가 주인공인 작품들이 많다. 특히 노부부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대학 졸업작품으로 노인들을 소재로 한 소설을 제출했다. 그때 탑골공원, 종묘에 가서 취재를 많이 했다. 노인들 문제가 참 처절하고 심각했다. 몸은 노쇠해 가는데 수명은 길어지고 수입은 없고 고독감에 빠져 ‘차라리 얼른 죽었으면 좋겠다’는 분들을 많이 만났다. 불과 몇십년 전만 해도 존중받던 분들이 이제 어르신이 아니고 '짐'이 되어버린 실체를 보며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갈 것인지를 묻고 싶었다.

노인들의 비애와 몰락, 농경문화가 몸에 밴 노인들이 산업사회 정보화 사회를 쫓아가지 못하는 무력감, 인터넷을 손주에게 배워야 하는 자괴감, 그래선지 어떤 분은 '노인들은 다 장애인'이라고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나도 늙어갈 것만 남았기에 노인문제가 내 문제로 뼛속 깊이 각인되어 온다. 갑작스런 고령화 시대로 40대 손주, 60대나 70대 아버지, 90대 할아버지가 같이 늙어가니 여러 층위의 사람들 관계에서 벌어지는 갈등들이 얼마나 많겠나. 개인주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  성 풍조, 경제적 곤궁, 이혼, 향락적 유혹, 자녀교육, 독거노인, 질병, 치매 등 문제들이 첩첩산중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노인문제를 계속 파고 들어가려한다.

 

삼대 이야기


                                                 마선숙


나이가 형광등처럼 껌벅이는
아버지의 아버지와
구두 고치듯 자신을 수선하고 싶은 칠순의 아버지와
세월을 견인하고 싶은 마흔의 아들이
노래방을 간다

삼대의 합창은 청춘을 돌려다오

아흔도
칠순도
마흔도 목청 높여 노래하며 서로를 관광객처럼 구경한다

대중소설처럼
테이크아웃 커피에 나이를 실려 보내고 싶은
삼대는
청춘이 소매치기 당한 듯 억울하다

삼대는
늙지 않는 탯줄처럼 청춘을 꺼내고 싶다

가는 세월 잡고
오는 세월 막으며

 

늦은 나이에 대학(숭의여대)을 들어갔고 그 대학으로부터 최근 ‘자랑스런 숭의인상’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만학의 즐거움’을 이야기하자면? 대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배웠던 것이 무엇인지?

55세에 대학에 입학했다. 학교를 통털어 제일 왕언니였다. 현역인 스무살 전후 학생들과의 소통이 어려워 고민을 많이 했다. 문예창작과라 학생들 기질이 자유로워서 지각하거나 수업에 빠지는 학생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좋게 말하면 충고지만 나쁘게 말하면 잔소리하고 싶은걸 참느라고 아주 애썼다. '얘들아. 대학은 자기 그릇 만드는 시절이란다. 연애만 하지 말고 공부 좀 열심히 하고 책도 좀 많이 읽어' 하고 참견하고 싶어서(웃음). '꼰대'라고 할까봐 묵묵히 삼켰는데 그 덕에 어린 학생들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잔소리하지 않은 게 정말 잘한 것 같다.

대학 생활하면서 생긴 좌우명이 있다. '어느 누구도 나쁜 사람 만들지 말자'. 학생들 중에는 조금 학업에 불성실해보이고 맘에 들지 않은 학생들이 있었는데 이 학생들과 깊은 이야기를 해보면 나름대로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고 또 순수함이 있었다. 그래서 매사 역지사지, 바꾸어서 생각하면서 이 좌우명이 생겼다. 어린 학생들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가끔 며느리가 '어머니는 젊은 사람들을 참 많이 이해하세요'라고 추켜세울 정도로(웃음).

시와 소설을 함께 쓰고 있는데 하나의 이야기가 시와 소설로 나뉘어지는 과정이 있는지? 혹시 시와 소설 중 어느 장르가 더 쓰기 쉬운지?

일단 시는 운문이고 소설은 길게 쓴 산문이다. 시는 이미지의 형상화에 주력한다. 은유를 통해 언어로 그리는 그림이라 할까? 소설은 사람 사는 이야기를 사건 상황으로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그 이야기들이 이 시대의 이야기며 새로운 인간상의 창조가 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인다.

예를 한 번 들어볼까? 호수에 누가 돌을 던졌다. 소설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하면서 돌 던진 사람을 캐들어간다. '왜? 왜? 왜?' 하면서 말이다. '왜'를 그리는게 소설이니까. 까뮈의 <이방인>을 보면 주인공 뫼르소가 어머니가 죽은 날 여자와 잠자리를 하고 햇빛을 쬐다 상처를 줬다고 아랍인을 죽인다. 사회적으로 보면 파렴치범이고 부조리한 인물이지만 소설로 그의 심리를 그리면 이해받는다. 자신의 운명이 자신과 하등 관계없이 끌려가는 것에 분노하며 왜 사회적 잣대에 따라야하는지 물어보면 문학 속에서는 구원받는다. 소설에 깊이 빠져 주인공의 영혼과 하나될 때마다 소설가가 된 기쁨이 종종 느껴지곤 한다.

시는 발견이고 영감이고 상상이고 착안이다. 소설이 육하원칙으로 호수의 돌을 풀어간다면 시는 호수에 돌을 던졌을 때 나오는 물결무늬를 상상력을 통해 맘껏 확장시킨다. 시공간을 통한 비상식적인 상상도 무한대다. '기차를 탔는데 옆에 눈사람이 앉았다' 소설에선 가능하지 않지만 시는 가능하다. 내 관찰 내 통찰 내 사유를 어떻게 보여줄까 고민하면서 말이다. 나만의 언어로 미학적으로 리듬감도 있고 신선하면 최상이다. 빗소리를 시적으로 형상화할 때 남들과 다르게 자기만의 언어로 표현해야 생명을 얻게 된다.

시 쓰는 사람은 시가 어렵다고 하고, 소설 쓰는 사람은 소설이 어렵다고 하는데 나는 시와 소설이 똑같이 어렵다. 처음엔 매수에 눌려 소설이 더 힘들고 노동력이 더 든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시도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틀을 깨기가 어려웠다. 상상의 빈곤, 감수성 결여, 인문학적 소양과 싸우며 결핍감에 많이 시달리고 소설도 호흡이 길지 못해 '왜 이렇게밖에 못쓸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문학은 부정에서 출발한다. 행복도 뒤집고 불행도 뒤집고 앞모습보다 뒷모습을 주시해야하고 단순한 것도 복잡하게 만들고 행복 속에서도 허점을 캐는 게 문학이다. 그래서 사실 내 자식들에게는 문학을 권하고 싶지가 않다. 본인이 정 하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벽돌 한 장 한 장 쌓듯이 한참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일을 하게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자연이나 사물이 하는 이야기가 들려오니 시를 안 쓸 수 없고 사람살이에 관심이 가다보니 이야기가 자꾸 구상된다. 이것도 팔자가 아닌가싶다(웃음)

▲마선숙 작가가 문학을 향한 자신의 열정을 담담히 풀어내고 있다.

앞으로의 작품에서 다루어 보고 싶은 소재나 주제가 있다면?

지금 쓰고 있는 작품이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의 여주인공 '소냐'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주인공을 순수하게 사랑한 소냐에게 감탄했는데 그런 인간상을 창조하고 싶었다.

종로에서 노인들을 취재할 때 '박카스 할머니'들을 만나기도 했는데 어떤 분의 얼굴에서 그 소냐의 거룩한 모습을 봤다. 우리는 박카스 할머니라고 하면 이전부터 그런 일을 했던 사람들이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살림하고 자식 키우다가 나이 들어 자식과 연락이 안 되고 살림이 어려우니까 나서는 분들이 있었다. 이 모습을 보면서 몸은 더러워졌지만 영혼이 순수한 여인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고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사실 젊은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꼭 한 번 써보고 싶은 이야기다.

선생님처럼 늦은 나이, 혹은 어려운 살림으로 인해 시인이나 소설가를 꿈꾸면서도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지금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내가 등단할 때만해도 나이를 따지는 분위기라 등단이 어려웠는데 불과 5,6년 만에 나이를 따지는 일이 예전보다는 덜하다. 신춘문예도 50대 작가가 당선이 되고 직장에서 은퇴한 이들이 시나 소설 쓰는 것을 많이 배운다. 내가 어렵게 갔던 길을 이제는 쉽게 갈 수 있다. 이제 100세를 넘어 120세 시대가 온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많이 있다는 의미다. 조급해하지 말고 뜻을 이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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