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숙의 문화읽기] 사마르칸트 벽화 속 ‘고구려 사신’이 일깨운 문화유산 보존·연구의 중요성
[성기숙의 문화읽기] 사마르칸트 벽화 속 ‘고구려 사신’이 일깨운 문화유산 보존·연구의 중요성
  •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 승인 2019.04.25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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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혼과 얼 훼손하는 비정상적 행정을 멈춰라”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해외 순방 때마다 문화외교에 각별히 신경쓰는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는 늘 관심사다. 중앙아시아를 순방 중인 문 대통령은 지난 주말 우즈베키스탄 동남부에 위치에 사마르칸트를 방문했다. 이번 방문국의 문화외교 상차림의 주요 메뉴는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아브(아프라시압) 궁전벽화에 등장하는 ‘고구려 사신’으로 차려졌다.

사마르칸트는 우즈베키스탄 남동부에 위치한 고도(古都)로 유명하다. 1965년 도로공사 중 아프라시아브 궁전벽화가 발굴되어 세계 고고학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사마르칸트 고대왕국의 검과 은제 동전, 토기, 꽃병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는 쾌거도 있었다. 7세기 바르후만 왕 재위 때다. 가장 번성했던 시기의 유물로 왕궁문화의 품격을 엿볼 수 있다.

사마르칸트 벽화 속 고구려 사신과 조우관

아프라시아브 궁정벽화엔 바르후만 왕이 각국 사신을 접견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벽화그림에는 각국 사신 대열에 두 명의 고구려 사신이 있어 시선을 끈다. 그들은 머리에 조우관(鳥羽冠)을 쓰고 허리에 칼을 차고 있는 모습이다. 조우관은 새 깃털을 꽂아 만든 모자를 일컫는다. 고구려 귀족층이 애용한 모자로 고구려인의 전형을 나타낸다.

고구려인을 상징하는 조우관에 대한 기록은 고대 중국 문헌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구당서(舊唐書)』 「동이전(東夷傳)」의 삽이조우(揷二鳥羽), 『위서(魏書)』 「고려전(高麗傳)」의 방삽조우(傍揷鳥羽)가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귀족남성은 대부분 조우관을 썼다.

우리에게 낯익은 집안 무용총 벽화에 등장하는 말 탄 귀족 역시 조우관을 착용했다. 머리에 조우를 꽂은 모자를 착용하고 근엄한 자세로 긴 소매춤을 추는 다섯 명의 무용수를 바라보는 귀족은 집안 무용총 무덤의 주인공으로 추정된다.

조우관을 쓴 고구려인은 중국 돈황벽화에도 등장한다. 돈황 335호 석굴 주실 북벽에 묘사된 외국 사절 중 조우관을 쓴 고구려인이 보인다. 조우관을 쓴 고구려인은 한결 같이 넓은 소매의 윗저고지와 통이 넓은 바지를 착용한 모습이다. 넓은 소매 혹은 긴 소매는 고구려 귀족층이 즐겨 입었던 일종의 패션 트렌드라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모습은 고구려 전문무용수의 의상에서도 포착된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나타나 있듯이 고구려무용은 긴 소매춤으로 상징된다. 당나라 궁정시인 이백은 고구려무용에 심취하여 한 편의 시를 남겼다. “금화 折風帽를 쓰고, 백마로 더디 도네, 펄렁이는 넓은 소매, 海東 새가 날아온 듯 하네”.

시에 등장하는 절풍모는 고구려 사람들이 즐겨 썼던 관모를 말한다. 이백은 넓은 소매자락을 펄렁이며 춤추는 모습이 ‘해동 새’가 날아온 것 같다고 노래했다. 여기서 ‘해동 새’는 고구려 무희를 일컫는다. 이백은 굴원 이후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된다. 고구려무용을 찬탄한 이백의 싯귀는 시공의 경계를 잇는 문화의 징검다리로 우리에게 큰 울림을 안겨준다.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성 황제로 손꼽히는 측천무후와 고구려무용과의 연관성은 더욱 흥미롭다. 측천무후는 권력을 휘어잡기 위한 정치적 목적에서 자주 궁중연회를 베풀었다. 『신당서(新唐書)』 「양재사전(楊再思傳)」에는 관료인 양재사가 자주 빛 도포를 반대로 입고서 박자에 맞춰 고구려무용을 추어 연회를 흥겹게 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렇듯 고대 중국의 인문적 교양을 지닌 소위 독서인층(讀書人層) 사이에서 고구려무용은 큰 인기를 끌었다. 

고구려무용은 중국 수나라, 당나라의 구부기·십부기에 포함된 주요 레퍼토리로 궁정연회에서 자주 추어졌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율동적인 춤사위, 화려한 의상과 분장술 등 고구려무용의 수준 높은 예술성은 중국 황족과 귀족의 심미안을 충족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고구려무용의 아이콘, 호선무

고구려시대 기억해야할 춤이 또 있다. 바로 호선무(胡旋舞)다. 이 춤 역시 당나라 궁중연회의 주요 레퍼토리로 인기가 있었다. 호선무의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전한다. 원래는 커다란 공 위에서 연행하는 일종의 곡예적인 춤으로 알려졌다.

다른 관점의 해석도 있다. 수 년전 서울 연낙재 주최 학술대회에 참여한 중국의 저명한 무용사학자 동시지우(董錫玖)는 고구려의 호선무가 공 위에서 추는 춤이 아닌, 원형의 메트 위에서 추는 기예적인 춤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중국 고대무용사의 권위자 왕거펀(王克芬)도 이러한 관점에 동조하고 나섰다. 이러한 주장은 돈황벽화 막고굴 220굴 동방악사정토변(東方樂師淨土變)에 그려진 무악도(舞樂圖)에 근거한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호선무에 매료되어 주옥같은 시를 남겼다. “왼쪽으로 돌고 오른쪽으로 돌아도 지칠 줄을 모르고, 천번 돌고 만 번 돌아도 그치지 않네 ··· 회오리 바람 오히려 더디네”. 호선무가 강국(康國), 즉 사마르칸트에서 전래됐다는 사실도 이채롭다.

고구려 무용을 상징하는 긴 소매춤 그리고 호선무의 원류가 실크로드를 넘어 중앙아시아 사마르칸트를 관통하여 인도지역에까지 맞닿아 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58년 사마르칸트 피안지켄트 지역에서 호선무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벽화가 발견됐다. 고대인의 광활했던 지리적 개념이 실로 놀랍다. 서역에서 기원된 춤이 중국을 건너뛰어 고구려에 전해졌고 다시 중국 수·당의 궁정연회에서 추어졌으니 역수출된 셈이랄까. 고구려시대 문화강국의 저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주말 한국의 문화재 정책을 총괄하는 정재숙 문화재청장이 사마르칸트로 날아갔다. 한국과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내외가 지켜보는 가운데 양국의 문화유산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위한 양해각서 체결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정부는 1,500여 년 전 양국의 교류 흔적을 나타내는 2명의 고구려인이 살아 숨 쉬는 아프라시아브박물관의 궁전벽화 전시실 등 사마르칸트의 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환경개선 작업을 지원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프라시아브박물관에서 유물을 관람한 후, “관람시설 개선도 중요하지만 벽화의 보존과 연구에도 힘쓰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진다. 또 문화재청장은 “고구려 사신의 실제 모습 앞에서 시공을 초월하여 전율을 느낀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렇다. 세월이 켜켜이 쌓인 사마르칸트 벽화 속 그림에 등장하는 고구려 사신은 시공의 경계를 넘어 섬뜩한 전율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왜 그럴까? 고구려시대를 표상하는 상징과 기호에서 찾아진다. 벽화에 그려진 조우관을 쓴 2명의 고구려 사신의 외형에 그 단서가 숨어있다. 1,500여 년 전 고구려인을 상징하는 조우관, 그리고 고구려무용의 아이콘 호선무의 흔적이 아로새겨져 있는 사마르칸트의 유서 깊은 문화유산의 현장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은 적지 않다.

문화유산 보존에서 ‘연구’의 중요성

우리 민족의 혼과 얼이 서려있는 문화유산이 시공을 초월하여 세계인에게 전율을 안겨주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이번 사마르칸트 방문길에서 문 대통령은 고구려 사신이 그려진 벽화의 “보존과 연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문화유산의 올바른 보존을 위한 이론연구는 유형문화유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순간’의 예술이자 일회성의 특성을 지닌 무형문화유산의 올바른 보존 계승을 위한 이론연구는 더욱 긴요하다 할 것이다.

최근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예고에 대한 불공정 논란으로 무용계가 시끄럽다. 보유자 인정예고에서 춤이 지닌 역사성과 정통성 그리고 고유성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현 상황은 실로 개탄스럽다. ‘서양춤의 한국화’의 산물인 신무용 주자의 보유자 인정절차는 무형문화재 ‘보존과 연구’의 중요성을 문화재청 스스로 방기하는 행태이자, 특정인을 위한 과도한 특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현대무용 하다가 전통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문화재청 관료의 가벼운 상황인식에 집약돼 있다. 불공정 논란의 책임을 무형문화재위원으로 전가(轉嫁)하려는 문화재청 관료의 대담한 용기는 과연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무형문화재위원들은 도대체 어떤 기준과 근거로서 11명의 ‘보유자후보’를 선정했는지 실로 의문이다. 전문성을 발휘해야할 무용분야 위원들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궁금해진다. 무용분야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절차의 불공정 논란에서 무형문화재위원들의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3년 전, 태평무 보유자 인정예고로 인한 불공정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원로 연극학자는 무형문화재위원에 연임되어 이번엔 위원장 자리를 꿰찼다. 무형문화재위원장을 비롯 몇몇 위원들이 공정성 측면에서 의심받고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강조하건대, 공정성의 실현은 사적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가능해진다. 특정 ‘보유자후보’와 학맥, 단체(협회) 또는 동일 유파의 춤 전승자 등 견고한 끈으로 묶여있는 무형문화재위원들이 과연 공정한 판단을 할 수 있겠는가?

아쉽게도 몇몇 무형문화재위원의 전문성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전문성의 유무는 학문적 식견과 폭넓은 안목에 따라 판단될 요소다. 쉼 없는 연구와 탐구력이 관건이다. 문화유산의 보존에서 ‘연구’의 중요성을 역설한 사마르칸트 발(發) 대통령의 말씀은 무용분야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예고에 대한 불공정 논란에 휩싸여 있는 현 상황에서 곱씹어야 할 중요한 가치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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