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 현동에서 아라가야 고분군 확인
경남 창원 현동에서 아라가야 고분군 확인
  • 김지현 기자
  • 승인 2019.06.04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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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묘 추정 확인ㆍ배ㆍ오리모양 토기, 갑옷 등 유물 출토

(재)삼한문화재연구원이 시행한 ‘거제-마산3 국도건설 현장’ 발굴조사에서 아라가야 시기의 나무덧널무덤ㆍ돌덧널무덤 등 670여기의 무덤과 배‧오리모양 등 상형토기ㆍ 갑옷과 투구ㆍ말갖춤 등을 발견해  5일 오전 11시 현장설명회를 연다.

발굴조사는 지난 2017년 8월부터 경남 거제시 장목면에서 창원시 우산동까지 연결되는 국도 건설공사 구간에서 청동기 시대의 수혈주거지 등 37기ㆍ가야 시기의 수혈주거지 등 15기ㆍ아라갸야 시기의 나무덧널무덤 622기ㆍ돌덧널무덤 35기ㆍ널무덤 17기ㆍ기타유구 200여기 등을 확인했다.

진·변한 지역은 좋은 품질의 철을 생산해 낙랑ㆍ중국ㆍ일본 등지로 공급했다. 현재의 마산ㆍ김해의 항구들이 그 창구로 해안평야의 언덕진 대지에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에 이르는 유적이 도처에 산재해, 선사시대 유적의 전시장으로 평가받았다.

▲840호 나무덧널무덤 전경. 아라가야 지역에서 조사된 유적 중 가장 큰 규모이다(사진=(재)삼한문화재연구원)

대형고분 839호와 840호는 나란히 배치돼, 부부묘로 추정한다. 이 중 840호 고분은 길이 860cmㆍ너비 454mㆍ깊이 124cm 규모로, 아라가야 지역에서 조사된 유적 중 가장 큰 규모이며, 주로 무구류와 마구류 등이 나왔다. 839호는 길이 772cm, 너비 396cm로, 나무덧널무덤에서는 머리 쪽에 모양이 세련되고 창이 정교하게 뚫려 있는 불꽃무늬굽다리접시(화염문투창고배, 火焰文透窓高杯) 등이 나왔다. 출토유물의 제작기술과 유구의 규모 등으로 볼 때, 840호의 주인은 남자, 839호는 여자로 당시 최고층의 부부묘로 추정한다.

아라가야 계통의 통형굽다리접시(통형고배, 筒形高杯), 불꽃무늬투창굽다리접시(火焰文透窓高杯), 기하문부호가 새겨진 짧은목항아리(단경호, 短頸壺), 화로모양그릇받침(노형기대, 爐形器臺), 컵모양토기 등 토기류와 덩이쇠(철정, 鐵鋌), 모루, 쇠끌(철착, 鐵鑿), 망치 등 단야구(鍛冶具)와 철찌꺼기(철재, 鐵滓), 미늘갑옷(찰갑, 札甲), 복발형투구(복발형주, 伏鉢形冑), 목가리개(경갑, 頸甲), 고리자루칼(환두대도, 環頭大刀), 쇠창, 쇠화살촉, 유리구슬, 세환이식(細環耳飾, 귓불에 붙이는 장신구) 등 총 1만여 점의 유물들을 출토했다.

▲387호 무덤에서 나온 배모양토기(사진=(재)삼한문화재연구원)

유물 중에서는 찰갑, 판갑, 투구 등 무구와 고리자루칼, 철촉 등 무기류와 철정, 철착, 철부 등 공구류도 다량 확인되었다. 이 가운데 배를 만들 때 최적화된 도구인 어깨가 넓은 쇠도끼(유건철부, 有肩鐵斧) 수십 점과 100여 점의 끌(鐵鑿)도 함께 출토되었다. 또한, 무덤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덩이쇠는 김해지역 출토품보다 더 가볍고, 작게 제작된 특징이 있다.

배모양토기(주형토기, 舟形土器)는 387호 나무덧널무덤의 피장자 머리쪽의 덩이쇠다발 윗면에서 한쪽이 기운상태로 확인했다. 길이 29.2cm, 높이 18.3cm의 크기로 배면에 조밀한 톱니무늬가 새겨져 있다. 기존에 나왔던 쪽배(獨舟木)형 배모양토기와 달리 판재를 조립한 준구조선(準構造船) 형태다.
 
최근 함안 말이산 고분군에서 출토된 준구조선 형태의 배모양토기는 흘수(吃水) 부분이 과장되게 표현해, 육지 인근의 좁은 바다를 다니던 내해용으로 추정하지만, 여타의 한선(韓船)이나 왜선(倭船)과 같이 노를 고정하는 고리가 없는 범선(돛단배)으로, 국제항로를 다니던 외항선용으로, 당시 사람들의 해상 교역을 증명해 주는 역사적 자료로 가치가 높은 유물이다.

▲335호 나무덧널무덤에서 나온 오리모양토기(오리 몸에 낙타 얼굴 형태)(사진=(재)삼한문화재연구원)

335호 나무덧널무덤에서 출토된 오리몸체에 낙타머리가 결합되어진 토기는 원삼국 시대부터 많이 제작된 오리모양토기와 달리 오리(조류)와 낙타(동물)가 결합한 형태로는 처음 확인된 토기로서, 당시 국제교류를 보여준다.

발굴결과로 볼때, 창원 현동은 아라가야의 문화상을 공유하며, 제철을 생산 기반으로 한 대외 공급 역할을 맡은 해상 세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