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 산책]모차르트 이야기3-인공지능 시대의 모차르트
[이채훈의 클래식 산책]모차르트 이야기3-인공지능 시대의 모차르트
  • 이채훈 클래식 해설가/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 승인 2019.10.21 16: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채훈 클래식 해설가·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4:1로 제압한 뒤 AI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세상에 대한 상상이 만발했다. 이제 AI는 여러 분야에서 실용화되기 시작했다. 음악도 예외가 아니다. AI 작곡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으로 나타났다. 예일대가 개발한 쿨리타(Kulitta)가 바흐에 필적하는 곡을 만들었고 모차르트 교향곡에 도전할 거라고 한다. 영국 주크덱(JukeDeck)의 작곡 프로그램은 이미 음반 시장에 곡을 내놓았다고 한다. 인공지능이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보다 더 훌륭한 음악을 작곡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논란이지만, 인간보다 더 빨리, 더 많이 작곡할 수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AI가 작곡가의 생계를 위협할 거라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작곡가가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소재를 제공하여 인간 창의성을 극대화시킬 거라고 낙관하는 사람도 있다.

AI가 클래식 연주 무대에 등장한 것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실제로 ‘로봇 피아니스트’와 ‘인간 피아니스트’가 겨루는 흥미로운 연주회가 열리고 있다. ‘로봇 피아니스트’의 이름은 테오트로니코(Teo Tronico). 이탈리아의 스타트업 기업 테오트로니카(Teo Tronica)가 개발한 이 AI 피아니스트는 53개의 손가락을 장착했을 뿐 아니라 페달을 밟을 수 있는 발도 있다. 디지털 악보를 읽고 연주하는 건 물론, 위대한 피아니스트의 녹음을 피아노 롤(Piano Roll)로 재생하여 연주한다. 이 AI 피아니스트는 2012년 베를린 필하모닉의 가족 콘서트에 출연, 쇼팽 피아노 협주곡과 림스키 코르사코프 <일벌의 비행>을 멋지게 연주하기도 했다. 테오(트로니코)와 맞서는 ‘인간 피아니스트’는 로베르토 프로세다(Roberto Proseda). 1975년 이탈리아 태생의 뛰어난 피아니스트다. 그는 2012년부터 AI 피아니스트 테오와 함께 전세계를 순회하며 렉처 콘서트를 열고 있다.

테오는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큰소리친다. “모든 ‘인간 피아니스트’는 멸종할 것입니다! 인간은 의식도 못한 채 로봇의 노예가 될 거라구요” 프로세다는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로봇은 인간을 대체할 수 없어요. 음악은 기계적인 게 아니지요” 테오가 먼저 쇼팽의 녹턴 Op.9-2를 연주한다. 악보를 그대로 옮긴 정확한 연주다. 프로세다가 연주를 중단시킨다. “당신 연주는 도저히 들어 줄 수가 없군요. 감정을 표현하고 조화를 만들어내야죠” 프로세다가 연주한다. 루바토를 구사하여 분위기를 한껏 살린 연주다. 이번에는 테오가 혹평을 가한다. “당신은 제멋대로군요. 틀린 음표와 불규칙한 연주가 37군데나 돼요”

‘AI 피아니스트’와 ‘인간 피아니스트’의 대결

https://youtu.be/hOouhaWHEfc

테오와 프로세다가 모차르트 C장조 소나타 K.545(그리그의 이중주 편곡판)을 함께 연주하자 분위기가 좋아진다. 마지막 대목, 프로세다는 스크리아빈 <왼손을 위한 녹턴>을 왼손, 즉 다섯 손가락으로 연주한다. 기분 좋게 연주를 마친 프로세다는 테오에게 가르치듯 한 마디 던진다. “손가락 수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우수한 손가락이 중요하지요” 하지만 테오는 물러서지 않고 더 심한 독설을 퍼붓는다. “다섯 손가락으로 하니 열 손가락으로 할 때보다 낫군요. 아예 제로 손가락으로 하면 더 좋을 것 같네요” 프로세다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고, 경연은 막을 내린다. 프로세다가 이 렉처 콘서트에서 말하고 싶은 건 “로봇처럼 기계적으로 연주하는 것은 재앙”이며, ”음악은 연주자의 해석을 통해 다시 탄생할 때만 듣는 이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AI 피아니스트 테오는 막무가내다. 사람들은 ‘로봇 피아니스트’와 ‘인간 피아니스트‘의 경연에서 어느 쪽 손을 들어 줄까? 지켜 볼 일이다.

음악사에 이와 비슷한 풍경이 있다. 1781년 크리스마스 이브, 오스트리아 황제 요젭 2세의 궁전에서 세기의 피아노 경연이 벌어졌다.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꼽히던 두 사람, 모차르트와 클레멘티가 실력을 겨룬 것이다. ‘근대 피아노 연주의 아버지’로 불리는 무치오 클레멘티(1752~1832)는 3년 일정으로 유럽을 여행하는 중이었다. 클레멘티는 당시 유럽에서 하이든 다음으로 유명한 음악가였다. 그는 베르사이유에서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위해 연주했고, 뮌헨, 잘츠부르크의 팬들을 열광시킨 뒤 빈에 도착했다. 

모차르트(1756~1791)는 그해 6월 잘츠부르크 통치자 콜로레도 대주교의 속박을 걷어차고 나와 빈에서 자유음악가로 새롭게 출발하고 있었다. 요젭 2세는 두 사람을 초청하면서 피아노 경연이 열릴 거라고 예고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도착했을 때 궁전에는 러시아 왕족을 비롯, 많은 손님들이 경연을 고대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당황했지만, 곧 의연히 받아들였다.

황제가 말했다. “여기 두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있으니 연주를 청해 듣기로 합시다. 클레멘티가 먼저 연주하시오.” 클레멘티는 자신의 신작 소나타 Bb장조를 연주했고, 뒷부분에서는 즉흥 연주도 선보였다. 청중들은 환호했다. 클레멘티는 당시 인기 있던 자신의 <토카타>도 연주했다. 이 곡은 피아노 연주의 새로운 테크닉을 선보인 쇼케이스로, 특히 3도 음정으로 진행되는 대목은 ‘악마적인’ 기교가 필요하다고 한다. 클레멘티의 놀라운 테크닉에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클레멘티 소나타 Bb장조 op.24-2 (피아노 발라쥬 쇼콜라이)

http://youtu.be/uxwxhDsZtIA

클레멘티 <토카타> Op.11 (포르테피아노 콘스탄티노 마스트로프리미아노)             

http://youtu.be/A6gIT7SIEzQ

모차르트는 어떤 곡을 연주했을까? 피아노에 앉은 그는 느린 템포의 즉흥 연주를 선보였다. 카프리치오 C장조 K.395였다. 기교보다는 음악성을 들려주고자 한 것이다. 

모차르트 <카프리치오> K.395 (피아노 외르크 데무스)                         

https://youtu.be/olnui1dE4Zw

이어서 모차르트는 아주 포퓰러한 주제로 변주곡을 연주했다. 동요 <반짝반짝 작은 별> 주제와 변주곡, 누구나 아는 단순한 선율이 다채로운 변주로 펼쳐지자 모두 기뻐했다. 이 노래는 모차르트가 1778년 파리 여행 때 들은 유행가 <엄마에게 말해 드릴께요>(Ah, vous-dirais je, maman)였다. 원래 가사는 이렇다. “엄마,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제 마음은 요동치고 있어요. 아빠는 저더러 어른스럽게 처신하라지만, 저는 어른스런 추론보다 달콤한 봉봉과자가 더 좋거든요.” 사랑 앞에서 이성적으로 행동하기 어렵다는 젊은 처녀의 하소연이다. 이 노랫말은 모차르트 자신의 마음이기도 했다. 그 시대의 룰에 따라 봉건 영주 밑에서 평탄하고 안전하게 살라고 아버지는 늘 자신을 설득하지 않았던가. 당시 상식으로는 그게 합리적인 일이었지만, 모차르트는 고초를 마다않고 자유음악가의 길을 택하지 않았던가. 

모차르트 <반짝반짝 작은별> 주제에 의한 변주곡 K.265 (피아노 막달레나 바체프스카)     

https://youtu.be/Lcmmc-_bfGo

경연이 끝났다. 누가 이겼을까? 황제는 무승부를 선언했다. 참석자 모두를 흡족케 하려는 외교적 행동이었다. 클레멘티는 더 빨리 더 화려하게 연주했고, 과거에 누구도 보여주지 못한 테크닉을 선보였다. 그러나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고 감동을 준 것은 모차르트였다. 클레멘티는 모차르트의 연주를 극찬했다. “이렇게 영감에 가득 찬 우아한 연주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특히 아다지오에 압도됐지요. 황제가 골라 준 주제에 번갈아 변주를 붙여서 즉흥연주를 했는데, 그의 솜씨는 놀라웠습니다”

모차르트는 클레멘티의 테크닉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그것은 음악이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이듬해 아버지에게 보낸 모차르트의 편지의 한 대목. “클레멘티는 훌륭한 피아니스트입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죠. 그의 오른손은 무척 훌륭하고 특히 3도, 6도 진행은 완벽합니다. 하지만 기교를 제외하면 그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단 한 푼의 취향도, 느낌도 없습니다. 그는 단순한 기술자(mechanicus)일 뿐입니다” 모차르트는 클레멘티를 혹평했지만 이날 경연에서 배운 것도 있었다. 1786년 작곡한 변주곡 K.500에는 모차르트의 초기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피아노 효과가 나타나는데, 이것은 명백히 클레멘티의 영향이었다. 이날 클레멘티가 연주한 소나타 Bb장조의 주제를 모차르트는 8년 뒤 오페라 <마술피리>의 서곡에 활용하기도 했다. 

클레멘티의 피아노 음악은 요즘도 간혹 연주되며, 어린이들을 위한 소나티네 앨범에도 빠지지 않는다. 클레멘티는 피아노 판매, 악보출판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그의 테크닉은 쇼팽과 리스트가 활약한 19세기 피아노의 전성시대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오늘날 모차르트 음악이 클레멘티보다 훨씬 더 자주 연주되는 건 살아 숨 쉬는 인간의 온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황제 요젭 2세는 이 날의 음악 경연을 오래도록 기억했다. 황제가 궁정음악가 디터스도르프에게 물었다. “모차르트의 연주를 들어본 적 있나?” “세 번이나 들었습니다, 폐하” “어땠나?” “음악애호가라면 누구나 좋아할 것입니다” “클레멘티 연주도 들어봤나?” “네, 그렇습니다” “모차르트보다 클레멘티를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대의 의견은?” “솔직히 말씀드리면, 클레멘티의 연주는 기술인 반면 모차르트는 예술입니다” “내 생각도 그렇다네” 

‘로봇 피아니스트’ 테오트로니코는 “악보대로 정확히 연주하는 게 최고”라고 주장한다. ‘인간 피아니스트’ 프로세다는 “악보에 없는 작곡자의 의도를 해석하는 게 연주자의 생명이며, 그럴 때만 듣는 이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어느 쪽이 옳을까? 가장 깊은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언어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예술을 사랑하는 것이다.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모든 것을 악보에 써 넣었다. 가장 중요한 것만 빼고…” 

20세기 초 콘베이어 벨트가 도입된 뒤 인간이 기계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기계가 인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이 보편화되는 21세기, 자칫 인간마저 로봇을 닮아가지 않을까 우려된다. <사피엔스>를 쓴 유발 하라리는 말했다. “인류는 점점 더 똑똑해졌지만 개인은 덜 똑똑해졌다. 인간은 개미와 벌을 닮아가고 있다” 인공지능이 발달할수록 이에 비례해서 인간이 점점 더 기계를 닮아가는 게 아닌지 경고한 것이다. 뇌과학자 김대식은 최근 저서 <기계 vs 인간>에서 이렇게 결론짓는다. “인간이 기계 같은 삶을 산다면 기계한테 100퍼센트 진다. 내가 하는 일이 기계 같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결국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인간일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빼앗아서 실직 사태가 만연하고, 대다수 사람들이 구매역을 상실하면 자본주의 체제는 유지될 수 없다. 기본소득제가 곧 절박한 의제로 떠오를 것이다. 한 과학자는 “곧 모든 사람이 놀고먹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낙관했지만, 이를 위해서는 인간 사회가 먼저 평등하고 정의로워져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대다수 사람들이 기술문명의 발전에 기계처럼 순응한다면, 로봇이 인간을 두드려 패며 통제하는 디스토피아가 우리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로봇이 흉내낼 수 없는 인간의 따뜻한 마음이 소중한 요즘이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인공지능 시대인 21세기에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