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아름다운 터널이 디자인이 필요한가요?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아름다운 터널이 디자인이 필요한가요?
  •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 승인 2020.08.06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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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서울시좋은빛위원회 위원

연일 비소식으로 유래 없는 긴 장마가 이어지는 8월이지만 시기적으로는 여름 휴가철에 들어섰다. 코로나 이후 대부분의 사람들이 국내에 머물며 언택트 시대, 대중교통보다는 자가 차량을 이용하게 되면서 정체, 사고등 달갑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전 국토의 70%가 산지인 까닭에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산을 통과하는 터널을 지나게 되는데, 운전자의 약 70%가 터널운행 시 지루함(졸음)을 느끼고 70% 중 환경에 대해 민감한 사람들은 정체 시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커져 호흡에 이상이 오거나 기타 증상을 경험하기도 한다고 한다. 해마다 전체 교통사고율은 줄어가는데, 터널 내에서의 사고율은 증가하고 있는 것은 운전자의 졸음이나 주의력결핍이 주된 원인이며 이는 단조로운 시각적 환경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터널의 조명설계는 조도나 균제도 그리고 자연스러운 밝기 적응이 일어나도록 구간별 기준이 마련되어 있으며 이는 터널의 길이와 형태, 마감, 교통량, 설계속도등 여러 조건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게 된다.

예를 들어, 짧은 터널에서는 주의를  환기시키고, 터널 내부의 시계를 확보하는데 유리한 주황색 조명을 사용하도록 하는 반면, 3km 이상의 터널에서는 오히려 이것이 졸음의 원인이 되므로 백색광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최근에는 터널의 길이가 길어지며 3km이상의 터널에는 디자인조명을 설치하도록 권고하고 있는데 운전자들의 지루함(졸음)을 감소시키기 위해 시각적 자극이 되는 색 변화를 적용한 것이다.

10km의 강원도 인제 양양터널이나 경상북도의 팔공산터널을 지나게 되면 들려오는 느닷없이 들려오는 호루라기 소리, 구간구간 보여지는 무지개빛 칼라 조명, 천정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영상등이 이러한 의도이며 표현의 세련됨이나 방식의 적절함을 다투기 전에 이로 인해 어느 정도의 성과를 보고 있다.

산과 협곡이 많은 노르웨이의 래르달(Laerdal) 터널은 세계 최장 터널로 그 길이가 24.5km에 달한다. 이 터널은 건축가와 심리학자 그리고 조명디자이너의 협업을 통해 설계되었는데 터널을 만들면서 떨어져 나온 바위를 벽에 뿌려 붙여 자연의 모습을 갖도록 하고, 긴 터널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5km 마다 넓은 광장을 두어 짧은 터널을 4개 지나는 느낌을 갖도록 하였다. 구간별로 운전자의 시각적 흥미를 끌 수 있도록 광장 구간에 파란색과 흰색 조명을 연출하여 운전자로 하여금 동이 터오는 새벽을 향해 달려가는 기분을 느끼도록 하였고 출구에는 밝은 주황색 조명으로 아침 이미지를 계획, 자연스러운 외부로의 연결이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최근, 도로의 지하화로 10km 이상의 도시터널이 증가할 전망이고 이들은 단지 길이만 긴 것이 아니라 정체로 인해 통과 뿐 아니라 머무는 공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루한 벽면 마감, 단조로운 그래픽, 의미 없는 컬러 빛의 점멸, 달리는 차량에서 인지하기 힘든 동영상. 지금의 시도는 단지 시작에 불과하며 새로운 터널 공간에 대한 심도있는 제안이 필요하다.

네덜란드의 아티스트 단 루스가드(Daan Roosegaarde)는 세계 최초로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걸작에서 영감을 받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자전거 도로’를 재현했고,‘특별한 방식으로 사람들이 기술과 결합된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최근 한국도로공사의 사장의 인터뷰에서 경부고속도로로 대표되는 국내 고속도로가 그동안 산업화와 현대화를 이끌었다면, 앞으로의 고속도로는 이용자에게 보다 집중해 안전과 편안함을 추구해야 한다며 고속도로의 '디자인'과 '안전'을 강조하였는데 이제 고속도로, 터널, 자전거 도로 등 인프라 시설도 ‘디자인’을 통해서 ‘경험’을 만들어 주는 장소가 될 것으로 조심스럽게 기대해본다.

이제 도시조명의 확장된 역할을 위한 준비를 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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