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의 국화옆에서는 ‘악의 꽃’
서정주의 국화옆에서는 ‘악의 꽃’
  • 김우종 (전덕성여대 교수, 문학평론가)
  • 승인 2009.12.11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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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를레르는 ‘악의 꽃’으로 법정섰지만 민족을 배반하지는 않았다

(지난호에 이어)

서정주의 국화는 그가 <귀촉도>에서 그린 이미지와 꼭 같이 전쟁터에 강제로 끌려 나가서 억울하게 죽은 후 소쩍새가 되어 우는 그 피맺힌 한과 눈물과 피를 마시고 핀 것이기 때문에 악마의 붉은 입술같은 악한 꽃이다.

서정주의 국화는 전쟁의 먹구름이 밀려오고 천둥같은 소리가 울려오지 않았다면 피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서정주의 국화는 전쟁을 저질렀기 때문에 그 수많은 죽음의 댓가로 피어난 꽃이다. 그러므로 그 꽃은 이 세상에서 가장 피 비린내가 나는 추하고 악한 꽃이다.

서정주의 국화는 이렇게 살아 있는 희생의 제물을 바쳐서 비로소 피어났던 악의 꽃이다.

한 송이 국화가 그냥 식물로서의 국화에 지나지 않는다면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모든 생명들이 다 죽은 자리에서 혼자 살아남은 그것은 더 아름다울 것이다. 그렇지만 그 무서리를 내리게 한 원인이 국화에게 있고 그런 짓을 해야만 혼자 피어날 수 있는 꽃이었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꽃이 아니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인간의 역사에서 이루어진 일이라면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국화 옆에서>는 선한 꽃과 악한 꽃의 이중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온갖 슬픔과 고통을 극복하고 피어난 꽃은 도덕적인 교훈의 아름다움이 있다. 이와 달리 온갖 슬픔과 고통을 남에게 주고 그들을 희생시켜서 피어난 국화라면 더럽고 악하다.
그런데 왜 이 같은 이중 장치를 해 놓았을까?

네 가지의 큰 이유가 있다.

첫째, 이 시에서 아름다운 국화의 이미지는 악의 꽃에게 입힌 의상의 역할을 한다. 악마에게 착한 천사의 옷을 입힌 것과 같다. 그리고 작자는 이것이야 말로 최고의 아름다움이라고 주장한다. 악마적 탐미주의인 셈이다.

둘째, 독사처럼 남을 물어 죽이더라도 기왕이면 꽃뱀일 필요가 있다. 아름다움으로 상대를 유혹한 다음에 물어 죽이면 되니까. 곱게 화장하고 향수 냄새 풍기며 유혹해야 멍청한 사내들이 잘 넘어가듯이 서정주가 반민족적 문학을 팔아먹으려면 그처럼 아름다운 꽃의 이미지를 이용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셋째, 이 시를 쓸 때는 일본이 물러 가버린 뒤였다. 종전되기 전이라면 직설법으로 침략전쟁과 일왕을 찬미했겠지만 그들이 가버린 뒤였기 때문에 본심을 조금쯤 가리는 위장술이 필요했다. 그래서 아름다운 베일 밑으로 흉악한 악마의 얼굴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

넷째, 서정주가 <국화 옆에서>에서 말한 것은 이 같은 악의 꽃이다. 그리고 이것을 최고의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시인의 작업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자신의 모든 반민족적 반인류적 행위를 아름다움을 위한 시인의 순교처럼 위장하기 위해서였다.

서정주는 보들레르와 니체에 대해서 말했다.

나는 보들레르의 글을 처음 사귀던 때나 지금이나 그가 우리 시문학 속에서 가장 뼈저리게 자기를 시에 희생한 사람이기 때문에 친밀감을 느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니체의 사상에 심취해 있었다는 것도 밝혔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의 영겁회귀자-초인超人…(중략)…은 그 당시에 내 가장 큰 지향이기는 했던 것이다라고.

보들레르는 <악의 꽃>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시인이다. 그 때문에 형사적 처벌도 받았다. 그런데 서정주가 보들레르의 아류가 되면서 여기에 니체까지 접목시켰다면 그 문학은 무엇이 될까?

서정주의 국화는 이렇게 피어난 악의 꽃이다. 다만 보들레르가 그의 시에 스스로 ‘악의 꽃’이란 이름을 달고 그 시집 때문에 법정에 섰던 것과 달리 서정주는 그 ‘악’을 아름다운 베일로 감추며 위장하고, 권력으로 자신에 대한 비판을 막고 처벌을 피한 후 장수하다가 죽어서도 지금까지 우리 국민을 속여 오고 있다.

보들레르는 프랑스 국민과 국가까지 배반하지는 않았다. 그는 프랑스의 나치 점령 시절에 살지도 않았지만 그의 <악의 꽃>에서는 그런 민족 배반 인류 배반의 피비린내는 나지 않는다. 이와 달리 서정주는 우리 민족을 배반하고 인류를 배반했다. 그의 <국화 옆에서>는 잔혹한 침략 전쟁에 대한 찬미이며 총사령관 일본 ‘천황폐하’에 대한 찬미이기 때문이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