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밤의 일상과 도시조명의 변화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밤의 일상과 도시조명의 변화
  • 백지혜 디자인 스튜디오라인 대표, 서울시좋은빛위원회 위원
  • 승인 2021.07.14 10: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수가 1000명을 넘으면서 다시 거리두기 단계조정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불과 몇일 전까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기대감으로 미루어 두었던 여행이며 공연, 축제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는데 다시 철렁하는 마음을 쓰다듬는다.

통행금지라는 과거의 시스템을 경험하지 못한 지금의 세대가 우리의 삶 속에서 해진 뒤 일상을 지금처럼 제한 받아본 적이 있었나 싶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가족들이 모여 며칠 동안 밤새도록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관혼상제를 치루었다. 한밤중에 제사를 지내고 밤새워 음주가무를 하며 슬픔도 달래고, 좋은 일도 나누었다. 정월대보름과 팔월한가위는 특화된 야간행사로 달에 소원을 빌고 쥐불놀이와 강강술래등 달빛에 의지하여 밤문화를 즐겼던 것이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현대에 와서도 밤 문화는 빠른 경제성장 과정에서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며 문전성시를 이룬다. ‘당신은 잠들어도 우리는 깨어있다’며 야근을 일상화했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워 지면서 영화관이나 노래방, 음식점, 주점등 다양한 서비스업이 불야성을 이루어 풍요로운 자본주의 세상을 누려온 것이다.

세계적으로 심야학원, 야간자습과 같은 학생들만의 독특한 밤문화가 있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의 밤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밝고 화려하다. 해가 지면 인적이 드물어지는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은 상상하기도 힘든 밝음과 현란함이 낮보다 더 활기 찬 밤풍경을 만들고 사람들은 깊어 가는 밤을 잊는다.

여러 날 동안 방역지침으로 사회적인 모임시간이 제한되었고 이 때 귀가의 분주함이 가실 무렵 서울 거리 돌아다니는 즐거움에 빠진 적이 있었다. 사람들의 북적임이 가셔진 거리에 조명이 빈 거리를 공허하게 채우고 있는 모습을 감상하는 일은 매우 낯설고 또 흥미로웠다.

그로부터 벌써 일년 째, 코로나 이전 일몰 후 새벽까지 이어지던 일상에 제한 시간이 주어지고 여가, 해소의 의미로 삼삼오오 떠들썩하게 즐기던 시간들 대신 ‘꼭’필요한 모임인지 되묻고 나중에 편히 보자며 서둘러 헤어진다.

코비드 2년째, 백신 접종 확대 소식과 더불어 보다 강력한 전파력의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에 코비드 이전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기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도시의 밤 역시 그러할 것이다. 특히 ‘모여’ ‘제한 없는’ 시간을 보냈던 밤은 그 사용법이 달라지고 도시의 조명도 그 역할이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 도시조명은 안전한 밤거리 만들기를 넘어 도시가 가진 경관적 특징을 강조하여 드러내거나 회색빛 고층건물로 가득한 도시에서 선택적 보여짐을 통한 반전의 이미지를 선사하기도 한다. 시민들은 안전하고 아름다운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삶의 만족도가 높아질 것이다.

도시마다 적극적인 야간경관 개선 정책으로 수준을 높여가고, 확대되어가는 빛요소를 스마트하게 관리하는 기술에 까지 이른 지금, 도시의 밤은 산업화시대로 접어든 시기. 희미한 가스등으로 안전하게 살았던 때로 돌아가려 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의 야간경관은 당연히 보여 지는 것에 의미를 두는 개념이나 그 목적이나 기능은 사람의 행위에 의해 그 질과 양이 결정되어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예전 화려하고 현란한 조명 아래서 떠들썩했던 모임이 아니라 모임의 비일상화, 제한적이고, 작아진 외부 활동 문화가 계속된다면 당연히 도시의 밤 풍경도 달라질 것이다.

10시 이후 낯설지만 흥미롭게 돌아보던 서울의 모습에서 과장이 덜어내어지고 불필요함과 기능 없는 것들이 정제되어 새로운 야간경관의 가이드라인으로 제시될지 또 모를 일이다. 지금의 모습 보다 활기는 덜어지겠지만 도시 고유의 모습이 드러나고 또 다른 개념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앞으로 경험하게 될 여러 변화, 특히 도시의 야간경관에 대한 개념과 가치의 변화가 더욱 흥미로운 것은 보여주기 식 야간경관 사업이 점점 늘어가는 시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시의 경관은 어떤 힘에 의해 정책적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사는 사람들의 삶에 유기적으로 반응하고 서서히 변화해가야 오래도록 지속 가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