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광복절 앞두고 독립열망 담긴 태극기 등 보물 지정 예고
문화재청, 광복절 앞두고 독립열망 담긴 태극기 등 보물 지정 예고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1.08.1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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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 태극기, 김구 서명문 태극기, 서울 진관사 태극기 등
한국인 정체성 지키려는 염원 담긴 유물들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항일독립유산인 태극기와 광복군 유물이 대거 보물과 문화재로 지정‧등록예고 됐다. 8월 15일 광복절을 앞두고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12일 ‘데니 태극기’와 ‘김구 서명문 태극기’, ‘서울 진관사 태극기’ 등 태극기 유물 3건은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 예고했고,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서명문 및 축하문」, 「한국광복군 기관지 광복(光復)」, 「한국광복군 훈련교재 정훈대강」, 「김좌진 장군 사회장 약력서」 4건은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데니 태극기,앞면 (사진=문화재청 제공)
▲데니 태극기,앞면 (사진=문화재청 제공)

이번에 지정 예고한 태극기 3건은 19세기~20세기 초 제작된 것들로, 일제강점기 혹독한 시련 속에서 독립에 대한 열망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켜내려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문화재다. 우리 역사 최초로 국기(國旗) 제작이 시도되고 변천되는 과정과 독립에 대한 열망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간절한 염원이 담긴 대한민국 역사 대표‧우리 민족 상징이라는 가치를 인정받았다.

우리나라 국기 변천사를 담고 있는 ‘데니 태극기’

「데니 태극기(데니 太極旗)」는 고종의 외교 고문으로 활동한 미국인 오웬 니커슨 데니(Owen Nickerson Denny, 1838~1900)가 소장했던 것으로, 1891년 1월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가지고 간 것을 1981년 그의 후손이 우리나라에 기증해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데니는 1886년 조선 정부 외교 및 내무 담당 고문으로 부임했다. 1886년 6월 조선과 프랑스 간 통상조약 체결 시 국제관례에 익숙하지 않은 조선이 불리한 통상 조약을 맺지 않도록 조선을 보호하고자 했고, 조선이 주권을 가진 독립국으로서 조약을 맺을 수 있도록 조력했다.

‘데니 태극기’는 세로 182.5cm, 가로 262㎝로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옛 태극기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클 뿐 아니라 우리나라 국기 제정의 초창기 역사를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라는 점에서 뜻 깊은 사료다. 학계에서는 이 태극기가 데니 유품 중에서 발견됐기 때문에, 그가 조선에 마지막으로 머문 해인 1890년을 제작의 하한연대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국가를 상징하는 국기를 처음 만들어 사용한 시기는 1882년 9월이었고, 1883년 3월 6일 고종은 전국에 사용토록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19세기 말 한국의 국기가 반포된 이래 그 모습을 그리거나 기록한 자료들은 일부 남아 있지만 실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데니 태극기’는 우리나라 국기 변천사를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

‘데니 태극기’의 대한민국 보물 지정 사유로는 국기를 제정해 독립국임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던 대한제국 외교적 노력을 증명하는 유물이라는 점, 일제강점기 독립을 향한 열망의 상징이 된 태극기의 기원을 보여준다는 점, 조선의 자주독립을 지지한 미국인 외교관 가문이 90여년 넘게 간직해 오다 우리 정부에 기증함으로써 진정한 호혜(互惠, 서로 동등하게 혜택을 누림)의 상징이 됐다는 점,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고 큰 태극기라는 점이 꼽히고 있다.

▲김구 서명문 태극기(사진=문화재청 제공)
▲김구 서명문 태극기(사진=문화재청 제공)

독립운동가들의 간절한 신념이 담긴 ‘김구 서명문 태극기’

「김구 서명문 태극기(金九 署名文 太極旗)」는 1941년 3월 16일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회 김구(金九, 1876~1949) 주석이 독립의지를 담은 글귀를 적어 친분이 있던 벨기에 신부 매우사(梅雨絲, 본명 샤를 메우스 Charles Meeus)에게 준 것이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매우사 신부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부인 이혜련 여사에게 이 태극기를 전했고, 후손들이 보관하다가 ‘안창호 유품’ 중 하나로 1985년 3월 11일 독립기념관에 기증됐다.

이 태극기의 가장 큰 역사적 의의는 김구와 안창호로 대표되는 일제강점기 해외 독립운동가들의 활동과 한국인들의 광복에 대한 염원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는 사실이다. 서명문에서 김구는 망국의 설움을 면하고 자유와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광복군을 도와줄 것을 강하게 호소했다.

‘김구 서명문 태극기’는 지금까지 알려진 19세기~20세기 초 제작 태극기 중 정확한 제작시기가 알려진 유일한 자료라는 점, 대한민국의 독립을 열망한 독립운동가들의 간절한 신념이 대표적으로 담겨 있다는 점, 매우사 신부로부터 안창호 선생이 태극기를 전달받기까지 상황이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 있어 전래 경위가 분명하다는 점, 1942년 6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태극기의 제작규정을 통일하기 직전에 제작돼 태극기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역사ㆍ학술적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서울 진관사 태극기(사진=문화재청 제공)
▲서울 진관사 태극기(사진=문화재청 제공)

3‧1 만세운동시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서울 진관사 태극기’

「서울 진관사 태극기(서울 津寬寺 太極旗)」는 2009년 5월 26일 서울시 은평구 진관사 부속건물인 칠성각(七星閣)을 해체․복원하는 과정에서 내부 불단(佛壇) 안쪽 벽체에서 발견된 것으로, 태극기에 보자기처럼 싸인 독립신문류 19점이 함께 발견됐다. 문류는 「경고문」ㆍ『조선독립신문』ㆍ『자유신종보(自由晨鐘報)』ㆍ『신대한(新大韓)』ㆍ『독립신문』 등 5종이다.1919년 6월 6일부터 12월 25일까지 발행된 사실로 미루어 진관사 소장 태극기 역시 3.1만세운동이 일어나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즈음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진관사 태극기는 일장기 위에 태극과 4괘의 형상을 먹으로 덧칠해 항일(抗日) 의지를 극대화했다는 점을 큰 특징으로 꼽는다. 왼쪽 윗부분 끝자락은 불에 타 손상됐고 여러 곳에 구멍이 뚫린 흔적이 있어 만세운동 당시 혹은 그 이후 현장에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현재 1919년에 제작된 태극기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 태극기는 1919년에 제작된 실물이라는 자체만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진관사 태극기’는 사찰에서 최초로 발견된 일제강점기 태극기로, 불교 사찰이 독립운동의 배후 근거지나 거점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처럼 ‘진관사 태극기’는 불교계 등 다양한 계층에서 주도했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 항일 정신을 형태상으로 강력하고 생생하게 담고 있다는 점, 함께 발견된 독립신문류를 통해 태극기의 변천사와 그 의미를 밝힐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는 점에서 역사․학술적 가치가 높아 보물로 지정해 문화재에 담긴 의미를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고 평가받는다.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서명문(사진=문화재청 제공)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서명문(사진=문화재청 제공)

문화재 등록예고되는 한국 광복군 기록

그리고 이번에 문화재로 등록 예고되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서명문 및 축하문」은 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의 가릉빈관에서 임시정부 주석이자 광복군창설위원회 위원장인 김구의 주관 아래 거행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관련 유물이다. 「한국광복군 기관지 광복(光復)」 1941년부터 1942년까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정훈처에서 발행한 기관지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의 독립운동 취지와 활동 상황을 군사, 외교, 국제정치, 경제 등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하고 있어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한국광복군 훈련교재 정훈대강」은 1945년 5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정훈처에서 발행한 소책자 형태의 훈련교재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의 활발한 독립운동 상황을 엿볼 수 있다.

「김좌진 장군 사회장 약력서」는 1930년 1월 만주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金佐鎭, 1889.11.24.-1930.1.24.)의 사회장(1930년 3월)에서 낭독된 약력서로 김좌진 장군의 전 생애를 순차적으로 알 수 있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료다.

▲한국광복군 기관지 광복(光復) 제1권 제2기(사진=문화재청 제공)
▲한국광복군 기관지 광복(光復) 제1권 제2기(사진=문화재청 제공)

한편, 문화재청은 지난 2019년부터 독립운동사료를 포함한 근현대문화유산에 대한 적극적인 역사ㆍ학술 가치의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구에 응해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국가등록문화재들에 대한 검토를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말모이 원고」 등 한글 관련 문화재 2건을 보물로 지정했으며, 이후 두 번째로 태극기 3건을 이번에 보물로 추가 지정 예고하는 결실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