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매일 '최초'를 갱신하는 김구림 개인전 《음과 양(YIN AND YANG)》
[전시리뷰] 매일 '최초'를 갱신하는 김구림 개인전 《음과 양(YIN AND YANG)》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1.09.18 2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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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위예술 선구자 김구림 신작 20여 점 공개
평창동 가나 전관서, 평면 작업 및 오브제 작업 볼 수 있어
오는 10월 17일까지
마스크 활용한 작품으로 시대성 표현
전시 개막 첫날 소리꾼 장사익 , 김화백 딸 김현진(Jess Beige) 축하 공연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김구림 작품은 시대에 대한 응답이다. 김구림은 시대가 작품을 만들게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굶어 죽고 먹고살기 힘들었던 1960년대 한국모습을 시골에서 보따리 하나 메고 서울로 쫓기듯 올라와 혼란에 뒤엉킨 여자들로 기록하고, 2010년대 중반에는 ‘성형’을 소재로 순수한 아름다움을 잃은 시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시대가 변하는 한 계속해서 변화된 작품을 선보일 것이라 얘기하는 김구림 작가 개인전이 열렸다. 가나아트센터에서 오는 10월 17일까지 개최되는 《음과 양(YIN AND YANG)》이다. 지난 17일 전시 개막에 맞춰 기자는 전시장을 찾아 김구림의 새로운 시대 기록을 만나고 왔다.

▲YinandYang20S-73.,2020,acryliconcanvas,97.2x130.3cm
▲YinandYang20S-73.,2020,acryliconcanvas,97.2x130.3cm(사진=가나문화재단 제공)

한국 아방가르드의 선구자 김구림은 1969년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를 구성하고, 1970년 《제4집단》 결성에 앞장서며 한국 전위예술을 이끈 인물이다. 지난 2014년엔 본지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현대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구림은 1936년생으로 초등학교 시절 해방을 겪고, 중학생 무렵에는 6·25 전란을 겪었다.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라온 그는 한국전쟁 당시 대구로 피난을 가 성인이 될 때까지 대구에서 자라왔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였던 그는 자연스레 미대에 진학했지만, 1년 만에 대학을 자퇴했다. 대학 수업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학비를 투자해 열심히 공부해 봐야 중·고등학교 미술 선생님밖에 더하겠냐는 본인 판단에 따른 결정이었다.

▲전시장 전경 (사진=가나아트센터 제공)
▲전시장 전경 (사진=가나문화재단 제공)

학교를 떠난 김구림은 헌책방을 찾아갔다. 거기서 그는 자신의 진정한 스승과 방향을 마주한다. 미군 부대에서 건너온 잡지 <라이프>와 <타임>에서 현대 예술을 만나게 된 것이다. 김구림은 잡지를 통해서 미술, 음악, 연극, 무용 등 모든 분야의 예술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고압선 아래에서 빙빙 돌며 ‘이것이 무용이다’라는 걸 보여준 미국의 무용가이자 안무가인 머스 커닝햄을 만나게 된다. 그때부터 김구림은 미술 이론을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무의식에서 의미를 창조해보자’라는 의지를 다지고 자신의 예술 세계를 펼쳐나갔다. 언제나 새로움을 표현하는 김구림의 시작이었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 내가 가장 처음인 것을 추구하는 김구림에게 ‘전위’는 아주 잘 맞는 옷과 같은 단어다. ‘미술’이라는 하나의 장르에 머무르지 않고, 음악·연출·영화 등 예술의 전 분야를 아우른 그의 예술은 언제나 살아있고, 태동한다. 독자적인 방향성과 독특한 정체성을 고수한 그에게는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따랐다. 《제4집단》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어떠한 진영에도 속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향을 올곧게 걸어가는 그의 모습은 어떤 이들에게는 눈엣가시와도 같았다. 특히, 다양한 목소리를 두려워했던 군사독재 시절 김구림은 많은 핍박을 받았다. 김구림은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었다.

▲YinandYang 11-S.9,2011,Mixedmediaonwoodpanel,200x100x15cm(사진=가나문화재단 제공)
▲YinandYang 11-S.9,2011,Mixedmediaonwoodpanel,200x100x15cm(사진=가나문화재단 제공)

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한국을 벗어난 그의 예술은 일본과 미국에서 서서히 빛을 발했다. 미국에 있을 당시에는 백남준과 2인전을 하기도 했다. 현재 김구림 작품 4점은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한국 미술가 중 백남준 다음으로 소장작이 많다. 테이트모던 미술관에 소장된 <태양의 죽음 Death of Sun>(1964)은 퍼포먼스적 요소가 가미된 작품인데, 비닐을 잘라서 거기에 불을 붙였다가 담요로 끄고 다시 그 행위를 반복하며 불로 표현된 태양이 자리한 흔적이 담긴 작품이다.

김구림은 이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로 자신의 군대 시절 시대상을 언급했다. 6·25사변 시기였기에 일상적으로 죽음을 마주했고, 내동댕이쳐진 시체를 자주 마주했다고 한다. 김구림이 <태양의 죽음>을 창작할 당시 다른 작품들도 <묘비명>, <죽음>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 당시의 슬픔과 죽음과 벌였던 작가 자신의 사투를 담아냈다고 한다. 이후에도 김구림은 각각의 시대가 담겨있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1960년대 한국을 바라본 <문명, 돈, 여자>, <24분의 일초의 의미> 등이다.

▲YinandYang8-S.146,2008,acryliconcanvas,194x395cm (사진= 가나문화재단 제공)
▲YinandYang8-S.146,2008,acryliconcanvas,194x395cm (사진= 가나문화재단 제공)

이번 김구림 개인전 《음과 양(YIN AND YANG)》은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전관에서 열리며, 그의 신작 20여 점도 공개한다. 시대의 소리에 응답한 작품을 선보이는 김구림이기에 그가 바라본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화폭에 담겨있을지 궁금했다. 제 1전시실과 2전시실에선 그의 평면 작업을 만나볼 수 있고, 3전시실에서는 오브제 작품 등을 공개한다.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의 작품에선 여든을 넘어선 그의 나이를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한순간에 갈겨진 듯한 붓질에선 강렬한 힘과 생동감 있는 색채가 돋보였다.

김구림의 <음과 양>시리즈는 모두 ‘음과 양’이라는 제목을 지니고 있는데, 작품을 구분할 방법은 글자 뒤 숫자다. 작품 제작 연도와 작품 제작장소(서울이면 S, 뉴욕이면 N 등)와 그해 제작된 작품 순번으로 구분할 수 있다. 김구림은 1년에 300여 점의 작품을 완성하는 ‘다작’ 작가로도 유명했다. 지금은 체력의 이유로 100여 점을 제작하고 있는데, 김구림은 어느 순간 작품에 제목을 붙이는 것이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세상 만물이 모두 음과 양으로 이뤄져 있고 자신은 세상의 것을 작품으로 구현하기에 작품명을 ‘음과 양’으로 통일하면 되겠다고 깨달았다고 한다.

▲김구림 '음과 양' (사진=서울문화투데이)
▲김구림 '음과 양'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음과 양>시리즈는 세상의 밝음과 어둠이 모두 집약돼있는 것 같았다. 2전시실에서 만나볼 수 있는 평면 작업에서는 다양한 요소를 발견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아날로그적인 붓질 사이사이 선명하게 떨어지는 디지털 인쇄 이미지들은 이질적이면서도 조화롭게 화폭 안에 담겨있다. 여성의 눈동자나 신체 일부가 조각나 화면에 배치되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붓질은 예술가가 보여주는 의지의 몸짓으로 읽힌다.

3전시실에서는 김구림의 오브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기타 몸통, CD들이 얽혀있는 작품들은 소리가 없음에도 소리가 보이는 듯한 느낌을 전한다. 특히 쓰지 못하는 폐기물을 이용해 하나의 창작물을 만들고, 그것들을 또 다른 생으로 이끌어가는 과정은 과거와 현재를 한 자리에 구현시킨다.

이번 전시에서 기자가 주목했던 작품은 3전시실에 있는 마스크를 활용한 오브제 작업이었다. 마스크를 화면 상단 중앙에 배치하고, 아래쪽에 신문기사를 스크랩해 배치한 작품은 팬데믹으로 표현된 지난해와 올해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한 시대가 지나가면 과거의 것은 어쩔 수 없이 기록으로만 마주해야 한다. 팬데믹이라는 어려운 상황도 언젠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과거의 일부가 될지도 모른다. 예술가로서 시대를 충실하게 바라보고 자신만의 방향으로 기록한다는 점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김구림의 작품은 각 시대가 가지고 있는 느낌과 울분이 집약돼있다. 아름다우면서도 한편으론 절박한 그의 그림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사를 은유하고 있었다.

▲소리꾼 장사익 선생이 즉석 공연을 열어 전시를 축하하기 위해 온 미술계 인사들에게 김구림 작가의 딸 Jess Beige(김현진)을 소개하고 있다.

전시 개막 첫날인 지난 17일, 코로나19로 인해 따로 전시오프닝은 하지 않은 가운데 전시장에는김구림과 깊은 친분을 지닌 소리꾼 장사익 선생을 비롯, 평론가 김복영, 이호재 가나아트 대표, 임옥상 작가, 김찬동 전 수원시립미술관장 등이 함께해 전시를 축하했다. 건강이 여의치 않아 김구림 작가는 참석하지 못 하는 대신 김구림 작가 아내와 딸 김현진이 참석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아버지 김구림 작가의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은 김현진은 영국 골드스미스 런던대학교를 졸업했다. 지난해에는 로얄왕립미술학교 석사과정을 졸업해, 현재 영국에서 작가로 활동중이다. 다양한 예술 장르를 아우르며 자신만의 길을 걸어 나갔던 김구림처럼 딸 김현진도 페인팅뿐만 아니라 퍼포먼스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며 다재다능한 예술가로 성장 중이다.

▲전시장에서 개막 축하공연을 하는 김구림 작가 딸 김현진 씨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전시장에서 개막 축하공연을 하는 김구림 작가 딸 Jess Beige(김현진)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이날 전시장에선 장사익 선생의 제안으로 김현진의 즉석 축하공연이 펼쳐졌다. 이국적인 분위기를 지닌 낮은 음색의 목소리는 전시장을 잔잔하게 울리며, 김구림의 작품과 부드럽게 어우러졌다. 이어 장사익 선생과 김현진의 듀엣으로 'Autumn in Leaves'를 부른 다음 장사익 선생이 작사작곡한 신곡도 불러졌다. 장 선생은 한국적 정서를 은은하게 품고 있는 노랫말을 들려주며, 김구림 전시《음과 양》을 한껏 축하했다.

▲전시장에서 개막 축하공연을 하는 장사익 음악인(사진=서울문화투데이)
▲전시장에서 개막 축하공연을 하는 장사익 음악인(사진=서울문화투데이)

김구림은 머무르지 않는 예술가이다. 그가 걸어가는 예술 지향은 오로지 그가 탐구하고 받아들이는 세상을 바탕으로 한다. 안주하지 않고 유연하게 시대를 받아들이는 그의 예술은 20대 딸의 목소리와도, 70대 장사익의 목소리와도 어우러질 수 있었다. 전시 《음과 양》은 김구림의 지금과 그가 현대 미술사에 남긴 족적을 볼 수 있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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