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가야 할 길, the road
아직도 가야 할 길, the road
  • 임고운 / 영화칼럼니스트
  • 승인 2010.01.2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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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의 현 상황을 코멕 멕카시는 예견이라도 한 것인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은 잿더미로 변해버리고 살아남은 아바지와 아들은  바다가 있는 남쪽으로  길을 떠난다.

그들을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것은 굶주림과 혹한, 그리고 인육을 먹는 폭도들을 피해야하는  두려움이다.아버지ㅡ비고 모텐스ㅡ는 절망적인 순간이 다가올 때마다 아들ㅡ코디 스미스 맥피ㅡ에게  착한 사람은 반드시 구원을 받기 때문에 마음의 불씨를 꺼뜨려서는 안된다고 얘기해준다.

로베르또 베니니의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수용소에 갇힌 아버지 귀도는 어린 아들에게 '지금은 전쟁놀이를 하는 중'이라며 유머로 아들을 달래줄 수 있었다.

하지만  ‘the road’의 아버지는 아들을 지켜내기 위해서 방아쇠를 당기고, 길에서 만난 힘없는 할아버지에게 조차 먹을 것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통조림하나도  줄 수 없을 만큼  보다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공포로 느껴지는 상황에서도 아들은"우리는 착한 사람이잖아요"하며    오히려 그들을 도와 주라고 울부짓는다. 기원전 4c인물인 알렉산더는 ‘문명인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이고  야만인은 인륜을 저버리는 자’라고 인류에 대해 경고 했다.

21c의 현대인들에게도 여전히 적용되리라는 걸 미리 알기라도 한 것처럼...

영화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인육을 먹는 저 폭도들도 어쩌면 야만인이 되기 전에는 배고픔과 추위가 그들 자신의 기본적인 인격을 위협하기 전까지는 친절하고  순박한 이웃집 아저씨, 아줌마였을지도 모른다.

프로이트의 표현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정상적인간'이란 사실 평균적인 의미에서 정상일 뿐이다. 환경에 가장 취약한 인간이 생명을  위협받는 순간에 어떻게 일탈될 수 있는지 우리도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소설 the road에서  코엑 매카시가 보여주고자 했던 미래에 대한 세기말적인 불안, 묵시록적 세계관은 영화속에서도 현실감을 너무나 충실히 재현하고 있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미래에 대한 공포감을 배제하고 영화를 보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다.

이미 1997년에 영화로 만들어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코엔 형제)의 원작자로 널리 알려진 코엑 메케시의 놀라운 묘사력은 영화에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때로는 스크린에서  눈을 떼고  싶은 충동마저 일게 한다.

영화의 배경이 세트장이 아닌  카트리나가 덮친 뉴올리언즈와 펜실바니아의 버려진 피츠버그광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현실감은 기이하리만큼 생생히 다가온다.

샤워커튼과 비닐을 옷삼아 걸치고  아들과 함께  힘겹게 발을 내딛고 있는 남자...

근육질의 배우들을 내세워 남성우월주의를 지향했던 헐리웃의남성상은 이제 가정과 아이를 위해서라면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헌신적인 가장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서부의 세익스피어라고 불리우는 미국 현대문학의 대표적작가인 코멕 메카시는 ,모든 예쁜 말들(1992),더 크로싱(1994), 평원의 도시(1998 ) ‘세상의 시작과 끝’을 서부라는 상징적인 도시로 묘사하고 있다

시작과 끝은 성경적의미에서는 멸망과 구원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인류의 종말의식을 현실감있게 고발하고 있는 그의 많은 작품들이 영화화되고 있는 것은 환경적 위협(핵 폭파문제 ,자연재해)에 시달리고 있는 인류의 구원을 향한 희망을 암시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대지진으로 굶주린 사람들이 갈 수록 미쳐가고 있다는 아이티. 코멕 메카시는 이러한 현실을 소설로서 예견이라도  한 것인가?

식품을 차지하기위해 돌을 던지고 흉기를 든  폭도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는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 프랭스에서는 아이와 가족을 지키기위해 다른 도시로 떠나려는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마치 the road의 주인공들처럼 더 이상 죽음 의 냄새가 나지 않는 도시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이곳에서 내 아이가  살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고 절규하는 한 어머니의 인터뷰도 절박한 실제상황이다.

마음의 불씨를  꺼뜨리지 말라고 얘기해 줄 수 없는 어른을 잃은 아이들은 질병과 굶주림에 방치된 채 시신들 사이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희망에 대한 신념을 가지라고 가지라고 얘기하기 하기에는 그들이 겪고 있는 집단적 혼란이 너무나 크다.

더 이상 지진이 나지 않고 피해자가 속출하지 않도록 그리고 극한 상황 속에서 폭도들로 변한 사람들이  더 이상 야만의 모습을 가지지  않기를 순수하게 바랄 수 밖에 없다   적극적인 구호대책과 함께 ...

영화와 현실이 구분되기 힘들만큼 영화밖 세상은 인류의 종말의식이 가까와오기라도 한 듯 대지진이 가져다 준  두려움과 공포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다.

the road의 주인속 처럼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착한 사람을 구분하는 방법을 알려줘야 할지도 모른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혹한과 배고픔, 어두운 공포와 절망앞에서  인륜을 저버리는 야만인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희망이다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 인류애적 염원이다.

아버지를  잃고 모든 것이 끝날 줄 알았던 아들이 착한 마음을 가진  새로운 가족을 만나 길을 떠나는 것처럼...

죽음을 앞에두고 울고 있는 아들에게   마음의 불씨를 꺼뜨리지  말라고 얘기하는 그 절박한 장면을 보며 웃고 키득거리며 바스락 거리며 팝콘을 집어 먹던 연인들, 극장을 나오며 "저런 개뼈다귀 같은 영화가 다 있어?"라고 투털거리던 여대생의 푸념이  여전히   공포처럼  다가와 오는 것은 지나친 감정의 낭비인가?

너무나 편한 세상에 사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the road와 같은 소설이 영화가 계속 쏟아져 나와야 한다  마음의 불씨없이 살아가는 그들에게 열정이나 사랑이 부족한 그들에게 '아직 가야 할 길이 있다'고  말해줘야 한다. 

임고운 /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