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뷰] MMCA 《페터 바이벨: 인지 행위로서의 예술》展, “보이고, 보이지 않는 인지의 경계”
[현장리뷰] MMCA 《페터 바이벨: 인지 행위로서의 예술》展, “보이고, 보이지 않는 인지의 경계”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2.02 1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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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공간과 복도 공간서, 2.3~5.14
MMCAㆍZKM 공동기획, 상호교환 전시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예술은 세상을 인지하는 하나의 행위라고 말하는 예술가이자 큐레이터, 이론가 페터 바이벨의 회고전이 개최된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 서울에서 2월 3일부터 5월 14일까지 열리는 《페터 바이벨: 인지 행위로서의 예술》이다. 이번 전시는 독일 카를스루에 예술미디어센터(ZKM, Center for Art and Media)와 공동 기획한 교류전으로 2019년 ZKM에서 공개됐던 전시의 투어전시다. 지난해 9월 10일부터 오는 2월 5일까지 ZKM 아트리움 1·2에서 개최되는 《김순기: 게으른 구름》전시와 상호 교환 전시다.

▲페터 바이벨, <관찰을 관찰하기: 불확실성>, 1973, 폐쇄회로 비디오 설치. MMCA 설치 전경 ⓒ서울문화투데이

《페터 바이벨: 인지 행위로서의 예술》은 미디어 개념미술작가로 알려진 페터 바이벨(1944~)의 작품세계를 조망하는 대규모 회고전으로 그의 1960년대 작품부터 2019년까지의 작품을 전체적으로 만나볼 수 있는 자리다. 전시는 그의 작품 세계를 예술행동, 퍼포먼스, 사진, 언어분석, 글쓰기, 시, 비디오, 확장영화, 컴퓨터 기반 설치 작업 등 총 10가지 주제 아래에서 살펴보며 작가의 대표 작품 약 70여 점을 소개한다.

페터 바이벨은 1960년대부터 예술가이자 큐레이터, 이론가로 활동하며 미디어아트의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예술가다. 1960년대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의학과 수리논리학을 수학하며 행동주의 그룹 예술가들과 협업을 시작으로 영상 작업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기술 기반의 작업과 미디어아트를 선도하며 오스트리아 아르스 일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 예술감독을 거쳐 1999년부터 독일 카를스루에 예술미디어센터장을 재임했다. 그는 미디어 작가, 철학자, 이론가, 교육자 뿐 만 아니라 큐레이터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를 공동으로 기획한 독일 카를스루에 예술미디어센터(ZKM)는 다학제간 프로젝트와 국제적인 협업 프로그램을 통해 전자 예술에 대한 수집, 출판, 아카이브 예술적ㆍ학술적ㆍ과학적 연구를 수행하는 기관이다.

▲2일 언론공개회에서 영상으로 인사를 전한 페터 바이벨 작가 ⓒ서울문화투데이

새로운 인지 행위에 대해

전시 개막 전 2일에 열린 언론공개회에 페터 바이벨은 건강상의 이유로 직접 참석하지 못하고, 영상으로 인사를 전달했다. 페터 바이벨은 백남준을 언급하며 한국이 미디어아트의 고향과도 같다고 말했다. 이러한 한국에서 전시를 개최할 수 있어 영광이라는 감회도 표했다. 한국에 작가가 직접 방문하진 못했지만 ZKM 학예실장 및 테크니션이 함께해 전시의 완성도를 높였다.

미디어 아트의 선구자라고 일컬어지는 페터 바이벨은 ‘미디어 아트’와 ‘예술’에 대한 자신의 정의를 힘주어 말했다. 페터 바이벨은 “인지행위로서의 예술, 예술이 하나의 행위임을 전시로 표현하고자 했다”라며 “‘미디어아트’에 대해 다수는 ‘재현의 매체’라고 보지만, ‘미디어’는 재현의 매체가 아니라 인간 감각기간의 연장이고 세상을 보는 새로운 관점이다”라고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철학을 설명했다.

언론공개회에서는 필립 지글러(Pilipp Ziegler) ZKM 학예실장이 이번 전시에 대한 소개와 설명을 전했다. 필립 학예실장은 이번 전시가 재현과 진리의 차이에 대한 존재론적 인식을 여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논리적 치료가 가지고 있는 치유에 대한 믿음’을 담고 있으며, 현재 우리 삶에서 너무나 익숙해진 디지털 문화의 근간을 이해 할 수 있게 한다고 설명했다.

▲페터 바이벨, <존재론적 점프: 여행 가방>, 1971 ⓒ서울문화투데이

필립은 “한 철학가가 전시장에 두 개의 돌이 키스를 하고 있다면, 90% 사람들은 그 돌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를 궁금해 할 것이고, 9%는 어떻게 돌이 키스를 할 수 있는지 궁금해 할 것이고, 페터 바이벨과 같은 1%의 사람들은 왜 돌이 키스를 하고 있는 지 궁금해 할 것이라고 말했다”라며 “이번 전시는 페터 바이벨과 같은 1%의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을 인식하고 있는지 인지행위로서의 예술을 담고 있고, 1960년대 페터 바이벨의 행위예술부터 2019년까지의 작업 전반을 돌아볼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페터 바이벨은 현재도 꾸준하게 작업을 이어오고 있으며, 1999년 ZKM 센터장으로 재임을 시작하면서 기술의 변화에 따라 기존 작업에 지속적인 변화도 꾀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도 공개되는 <FLICK>라는 증명사진 촬영 부스는 지난 전시에서부터 이어져, 전시가 행해진 국가별로 온라인에 앨범을 새롭게 생성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선 <FLICK_KR>로 공개돼 관람객들이 사진촬영에 함께 참여할 수 있고, 이를 다운로드 받을 수도 있다.

기존의 작업에서 기술의 변모에 따라서, 새롭게 구현되기도 하는 페터 바이벨의 작업들은 그의 과거와 지금을 동시에 마주할 수 있는 새로운 감각을 전하기도 한다. 지금 2023년 MMCA 전시장에 설치된 작업들은 그의 초창기 작업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동시에, 그의 1960년대 시점의 작업이 지금에 와서 어떻게 읽힐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그 과정은 페터 바이벨이 미디어 아트에 끼친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과정이고, 미디어 아트의 변화를 읽어볼 수 있는 시선을 제공한다.

▲페터 바이벨, <FLICK_KR> ⓒ서울문화투데이

<관찰을 관찰하기: 불확실성>…다르게 바라보기

이번 《페터 바이벨: 인지 행위로서의 예술》은 미술관의 전시장 공간이 아닌, 다원공간과 복도공간을 활용해서 선보여진다. 페터 바이벨의 중요한 영상 작품인 <다원성의 선율>을 다원공간에서 공개하기로 결정하면서 이뤄진 선택이다. <다원성의 선율>은 11개의 영상과 사운드로 구성된 설치 작품으로 지난 200년을 거치며 발전한 인류사 중에서도 산업혁명을 거쳐 데이터 기반의 포스트 산업 정보 혁명까지를 시각화했다.

다원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11개의 채널에서 쏟아지는 영상들은 즉각적인 공감각적 몰입을 선사한다. 기존 2019년 ZKM 전시에선 11개 채널에서 각기 다른 사운드를 개별적으로 전달했지만, 이번 서울 전시에선 관람객들이 공간 속에서 디지털 풍광을 경험할 수 있게 11개 채널의 사운드를 편집해 재생한다.

▲페터 바이벨, <다원성의 선율>, 1986-1988, 11채널 비디오 설치의 스틸 컷, 디지털화된 비디오, 컬러, 사운드. (사진=MMCA 제공)

<다원성의 선율>은 ‘바퀴시대’라고 불리는 시대의 이미지 모음집으로 1986년부터 1988년 사이 2년간의 광고 영상 등을 모으고, 이미지를 제작해 구성했다. 이 작품은 1980년 중반 미래 시대와 디지털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2023년 지금, 그 당시 미래라고 생각했던 지금에서 그 영상을 마주하는 것은 독특한 감각을 전한다. 과거의 것이지만, 작품 안에 도사리고 있는 미래성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페터 바이벨의 작품은 개념미술, 미디어 아트로서 언뜻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의 작품은 되레 즉각적인 감각을 전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전환된 시선을 제공한다. 2층 복도에 설치된 <관찰을 관찰하기: 불확실성>은 1973년 작품으로 3개의 카메라와 모니터가 삼각 대형으로 설치되는 작품이다. 관람객이 삼각 대형의 중앙에 위치하게 되는 순간 영상이 해당 관람객을 촬영하게 되며 자신의 모습을 동시에 모니터로 확인할 수 있지만, 관람객은 자신의 정면이나 얼굴 모습을 볼 순 없다. 계속해서 자신의 뒤통수만을 확인할 수 있다. 작가는 이를 통해 관찰과 인식의 행위 사이의 한계를 드러내고자 했다.

▲페터 바이벨, 선동 연설, 1968년 6월 7일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 ‘예술과 혁명’ 행사, 에른스트 슈미트 필름 ‘예술과 혁명’ 스틸 컷, 16mm, 흑백, 컬러, 무음, 2분. © 페터 바이벨 (사진=MMCA 제공)

이처럼 작가는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세계를 묘하게 제한하고, 우리의 시선을 속이거나 꺾어서 새로운 감각을 전달한다. 그러한 과정은 미디어를 인식하는 우리의 인지 체계에 균열을 전달한다. 몇몇 작품의 경우 화면에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아, 작동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지만 관람객이 작품 앞으로 다가가는 순간 카메라를 통해 작품이 작동되는 듯 보이게 한다. 관람객들이 작품에 직접 참여하며, 즐길 수 있게 하는 것도 이번 전시의 특징이다.

페터 바이벨은 예술과 과학 사이를 자유분방하게 넘나드는 작가로서 현재까지도 자신의 문제 인식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20세기 후반에서 21세기 초반 사회 변화를 반영하고 당시 예술에 대한 관습적 견해에 도전했다. 미디어 발전 초창기 언어이론, 수학과 철학에 대한 깊은 관심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확장했고 더 나아가 실험 문학에서 퍼포먼스, 해체주의와 실험영화 등의 주제도 다뤘다.

▲페터 바이벨, <가능한(Possible)> ⓒ서울문화투데이

1층 다원공간 복도에는 <가능한(Possible)>이라는 작품이 있다. 하얀 스크린에 영사기가 ‘가능한’이라는 글자를 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이 작품은 하얀 스크린에 ‘가능한’이라는 글자를 붙여둔 것이고 영사기는 빛만 쏘고 있다. 이처럼, 작가는 우리가 바라보고 쉽게 믿고 받아들이는 세계를 재밌게 변화시키거나 바라보는 것과 바라봄을 당하는 것 등 시선의 오고감에 대해 생각할 거리들을 전한다. 이미지와 실재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피사체를 찍어서 시작되는 ‘미디어 아트’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생각을 시작하게 한다. 그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예술은 ‘인식의 과정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전시장이 아닌 복도 공간과 공연장을 활용한 이번 전시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그런 전시 환경으로부터도 비롯되는 재밌고 새로운 경험을 전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