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기획]문화유산국민신탁 “문화유산 보존, 애국의 길”
[테마기획]문화유산국민신탁 “문화유산 보존, 애국의 길”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3.03.30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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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기금 문화유산 보존ㆍ관리 법인, 2007년 설립
지난해 회원수 1만 5천 명 돌파
자랑스러운 문화유산 물려주는 것, 지금의 의무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우리나라는 오랜 역사 속에서 찬란한 문화를 만들어왔지만, 식민지와 전쟁 같은 아픈 역사를 겪고 산업화의 바람에 휘몰리며 많은 문화유산들은 그 흔적도 찾을 수 없게 됐다.

영국에서는 이미 100여 년 전부터 시민들이 나서 내셔널트러스트(National Trust) 운동을 벌여, 소중한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을 지켜내고 있다. 그리고 이를 모델로 문화유산국민신탁(이사장 김종규ㆍ삼성출판박물관장)이 탄생했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은 민간의 모금(기부·증여·성금 등)을 통해 보존 위기에 처한 국내의 문화유산을 매입·관리하는 문화재청 산하기관이다. 2007년 설립됐으며 출범 15년만인 지난해 9월 회원수 1만 5,000명을 달성했다.

 

▲서울시 종로구 통인동 이상의 집
▲서울시 종로구 통인동 이상의 집 (사진=문화유산국민신탁 제공)

김종규 이사장은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길이 애국의 길과 같다고 말한다. 김 이사장은 “지금 우리가 문화ㆍ자연유산을 자랑스러워하는 만큼, 후손들도 이 문화유산을 지닐 수 있도록 우리가 잘 보호하고 물려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라며 “조국의 아픈 역사와 산업화의 바람은 문화유산을 잃게 만들기도 했지만, 지금 우리는 다시 보호해나가고 있다. 어떤 후원회원은 문화유산국민신탁에 가입하고 ‘애국자가 된 기분’이라고 말했는데, 기분만이 아니라 실제 애국을 한 것이라 말하고 싶다. 문화유산지킴이로 걸어가는 발걸음이 애국의 걸음이다”라며 우리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있는 정신과 무게에 대해서 말했다.

문화유산국민신탁에서는 매입이나 증여 과정을 통해 총 4개의 문화유산을 관리하고 있고, ‘국가소유 문화유산’을 총 8개 위탁 관리한다. 총 12개의 문화유산을 관리 중이다. 관리 과정에는 보수 공사 및 공간 활용 계획을 수립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공간 활용에서는 지역 내 사회를 반영한 문화 체험 프로그램 등도 운영한다. 지역관할 문화재 중에 국가문화재 등록 절차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전국 곳곳에 흩어진 문화 유산들의 보다 체계적인 관리망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래는 문화유산관리신탁이 현재 관리하고 있는 전국의 주요 문화재이다.

단명으로 끝난 천재작가 이상의 기억

문화유산국민신탁이 2009년 매입한 첫 번째 문화유산은, ‘이상의 옛집 터’이다. 서울 종로구 통인동에 위치한 이곳은 시인 이상이 3세부터 23세까지 거주ㆍ활동한 공간으로, 문화유산국민신탁은 이곳에 기념공간 및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했다.

경주와 신라문화를 사랑했던 영원한 신라인

이어 2010년에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위치한 ‘고청 윤경렬 선생의 옛집’을 매입했다. 6.25전쟁 이후 척박한 문화환경 속에서도 당시 경주박물관장이였던 진홍섭 선생과 함께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를 개설하여 어린이들의 감수성 향상 및 교육에 기여했으며, 경주 지역 신라시대 문화재에 대한 평가를 높이는 데 많은 공헌을 한 분이다.

소유를 버리고 자부심을 얻다

2011년에는 ‘동래정씨 동래군파 종택 및 그 일원’을 증여받아 국민신탁을 체결했다. 동래정씨 동래군파의 종가로, 가옥 안채는 조선 정조 7년(1783)에 세운 것으로 추정하며, 사랑채는 고종 14년(1877)에 지은 것이다. 2000년 3월 24일 경기도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이곳은 조선 후기 살림집으로서의 전형적인 특징을 유지하고 있으며 사랑채의 평면 분할 방식, 행사청의 구성, 작은사랑채의 위치 설정 등이 독창적이고 기능성을 중시한 집이어서 보존가치가 있는 가옥이다.

▲ 경기도 군포 동래정씨 동래군파 종택 및 그 일원
▲ 경기도 군포 동래정씨 동래군파 종택 및 그 일원 (사진=문화유산국민신탁 제공)

월파 서민호의 민족정신

지난해 10월에는 전라남도 고흥군에 자리한 ‘죽산재’를 증여받아 국민신탁을 체결했다. 죽산재 건립연대는 1933년이다. 이 건물은 죽파 서덕봉(字화일, 1860~1933)이 서재로 쓰고자 지었으나 준공 후 얼마 사용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월파 서민호(1903~1974)선생이 부친의 제실과 서재로 썼다. 서화일은 지주로 사회사업과 복지, 교육 등에도 심혈을 기울였고 아들인 서민호는 조선어학회사건과 항일독립운동을 한 근대 역사인물이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은 국가소유의 문화유산 위탁관리도 함께 맡고 있다.

태백산맥 문학길을 따라가다

조정래 작가의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로 등장한 전남 벌교의 ‘보성여관’은 2004년 역사 및 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제132호로 지정됐다. 2008년 문화유산국민신탁은 보성여관의 관리단체로 지정되었으며, 2년간의 복원사업을 거쳐 2012년 6월 7일 예전 모습을 되찾은 ‘보성여관’을 새롭게 개관하게 됐다.

▲전라남도 고흥군 ‘죽산재’
▲전라남도 고흥군 ‘죽산재’(사진=문화유산국민신탁 제공)

울릉도와 독도의 근현대사를 한 눈에

2011년에는 울릉도와 독도의 근현대사를 체험할 수 있는 ‘울릉 역사문화체험센터’를 개소했다. 일제의 울릉도 침탈의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로, 울릉도 도동의 중심부에 위치해 접근성이 쉬우며 근대 주택사 연구에도 가치 있는 건축물이다. 2006년 ‘울릉도 도동리 이영관 가옥’으로 문화재 등록 명칭이 되었으나 2008년 문화재청에서 매입하여 역사인물 문화재를 제외하고는 인물의 이름을 쓰지 않는 ‘등록문화재 명칭 부여 기준’에 따라 ‘울릉 도동리 일본식 가옥’으로 변경하였다.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 142번지 외 1필지에 있다.

아픈 역사를 간직하는 방법

부산시 동구에 위차한 ‘문화공감 수정’은 일본식 주택으로, 2007년 7월 3일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1939년에 지은 일본식 목조 2층의 기와지붕 건물이며, 꽃장식의 일본식 석등, 건물 모서리의 화려한 장식 등이 일제강점기 부산 지역 고급 주택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근대기 주택 건축사의 자료로 가치가 높다.

▲부산 정란각 (사진=문화유산국민신탁 제공)
▲부산 정란각 (사진=문화유산국민신탁 제공)

조선 중기 대전의 대표 살림집

‘대전 소대헌ㆍ호연재 고택’은 조선 중기 대전지역의 살림집을 이해할 수 있는 건축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충청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큰사랑채와 작은사랑채를 동시에 갖추고 큰사랑채가 양통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청을 한 쪽에 두는 방식이나 안채의 마루방과 툇마루 등이 전면 뿐 아니라 사방에 다양한 크기로 배치하는 양식은 지역적 특색을 나타내고 있다.

한옥을 품은 근대 건축물

우리나라 근대 역사를 간직한 인천 배다리의 ‘조흥상회’ 역시 문화유산국민신탁이 관리한다. 인천 최초의 만세운동이 일어난 곳도 배다리 일대였다. 당시 조흥상회는 배다리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장사가 잘됐었다고 한다. 현재 조흥상회는 지역 문화예술 단체 및 지역상권 활성화를 위한 활용을 계획 중에 있다.

▲고청 윤경렬 선생의 옛집 (사진=문화유산국민신탁 제공)

전주 최초의 대형 일식집

전주 중앙동 구 ‘박다옥’은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라감영3길 14에 소재한 건물로 일제강점기 전주 최대의 번화한 일본인 상업지역에 지어졌던 상업건축물이다. 이 건물은 당시 전주에 들어선 최초의 대형 일식집이었다고 전해진다. 약 10여년 정도 식당으로 운영되다가 1940년 이 건물의 소유주가 남선수력전기주식회사로 바뀌면서 전기회사로 사용됐다. 현재 전주 중앙동 구 박다옥은 지역 주요 기관과 함께 공공활용을 목적으로 활용계획 중에 있다.

▲ 남평주조장 (나주시향토문화유산)
▲ 남평주조장 (나주시향토문화유산) (사진=문화유산국민신탁 제공)

90년 역사를 간직한 근대문화의 보고

나주 남평읍 남평리 164번지에 위치한 ‘남평주조장’은 일제강점기인 1932년 5월 15일 건립돼 2011년 나주시향토문화유산 제27호로 지정됐다. 지난해 90주년을 맞았으며, 같은해 11월 국가등록문화재 등록을 신청해 추진 중이다.

비운의 역사 공간, 희망으로 피어나다

‘중명전(重明殿, 사적 제124호)’은 1904년 덕수궁 화재 이후 황제의 거처로 사용됐던 공간이며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 역사가 있는 장소다. 1976년 민간에 매각됐던 중명전은 2003년 정동극장의 손을 거쳐 2006년 문화재청이 인수했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은 2010년 문화재청으로부터 위탁받아 전시, 안내해설 등을 운영하며 역사 보전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