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신의 장터이야기 67]유씨의 하루를 멈추게 한 1929년의 장터시세
[정영신의 장터이야기 67]유씨의 하루를 멈추게 한 1929년의 장터시세
  • 정영신
  • 승인 2023.05.09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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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신의 장터이야기 67

 

약초를 사러 장터에 나온 할배를 한참을 따라 다녔다.

온 장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값을 물어보면서,

할배의 빈보따리 속에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는다.

어느 아낙네 노점 앞에 멈추어 제법 살 것처럼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이번에는 약초파는 아짐이 시끈둥 하다.

할배는 장날마다 나와 약초값을 알기 위해 이집저집 돌아다닌다.

산에서 채취한 약초를 쌓아놓고, 같은 약초를 찾아다니며

값을 물어보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지리산에서 육십년 넘게 약초를 캔 유씨할배를 만난 곳도 구례장이었다.

 

1989 구례장 Ⓒ정영신
1989 구례장 Ⓒ정영신

 

사진속 할배는 검정고무신에 한복차림새다.

지금은 장터에서 낯선 풍경이지만

팔십년 후반까지 한복을 차려입고 장에 나오는 사람이 많았다.

텔레비전이 산중에 있는 안방까지 들어가더니 장터유행도 하나하나 바뀌었다.

비녀를 꽂던 머리는 뽀글뽀글 밭에 서 있는 배추처럼 변하고,

보자기 하나로 장보던 여인네들이 가방을 들었다.

시골장터까지 시간이 마술을 부려 변화를 몰고 왔다.

 

그러나 어떤 이는 천구백이십구년 하루 시간을 멈추어 우리에게 보여준다.

구십사년 전, 운조루에 살았던 유씨라는 사람이 일기에 쓴 장터시세다.

보리종자 10140,

읍내 쌍화상점에서 겨울옷 1350.

장터가 움직이는 박물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