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망자의 49일, 국립무용단 ‘사자의 서’…“죽음, 삶의 끝 아닌 일상이 중첩된 결과물”
[현장스케치] 망자의 49일, 국립무용단 ‘사자의 서’…“죽음, 삶의 끝 아닌 일상이 중첩된 결과물”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4.04.03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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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27,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김종덕 단장, 국립무용단 부임 후 처음 선봬는 대형 신작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 티베트의 위대한 스승 파드마삼바바가 남긴 불교 경전 『티베트 사자의 서(Tibetan Book of the Dead)』가 국립무용단 신작 <사자의 서>로 재탄생한다.

▲국립무용단 신작 <사자의 서>에 참여하는 조용진 단원, 김종덕 예술감독, 황진아 음악감독, 최호종 단원 ⓒ국립극장
▲국립무용단 신작 <사자의 서>에 참여하는 조용진 단원, 김종덕 예술감독, 황진아 음악감독, 최호종 단원 ⓒ국립극장

국립극장(극장장 박인건) 전속단체 국립무용단(예술감독 겸 단장 김종덕)은 <사자의 서>를 이달 25일부터 27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김종덕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겸 단장이 지난해 4월 취임한 이후 처음 선보이는 안무작이다. 

국립무용단은 <사자의 서> 개막에 앞서 3일 국립극장 분장동에서 연습 장면 공개 및 기자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자리에는 김종덕 단장을 비롯해 황진아 음악감독, 단원 조용진ㆍ최호종 등이 참석했다. 

김종덕 단장은 “이번 작품은 ‘죽음’에 관한 것이 아닌 ‘삶과 죽음’에 관한 것”이라며 “삶에 대한 성찰의 시간과 삶을 다시 설정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작품이다. 죽음을 삶의 끝이 아니라 일상의 중첩된 결과물로 바라봤다”라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이어 “망자가 느끼는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이라는 단계를 거치는 과정을 보여준다. 서사와 감정을 명징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고민했다. 죽음이 삶을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이자,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통로라 보며 인간 생애를 담담하게 관조하려 했다”라고 말했다.

▲국립무용단 <사자의 서> 연습 장면 ⓒ국립극장

총 3장으로 구성된 작품은 죽음 후 망자가 겪는 49일의 여정을 단계적으로 보여준다. 1장 ‘의식의 바다’는 죽음을 애도하는 제의로 시작, 저승사자가 등장해 망자를 사후세계로 인도한다. 죽음의 강을 건너며 춤추는 망자의 독무와 죽음을 애도하는 살아있는 자들의 웅장한 소리가 죽음과 삶의 대비를 강렬하게 보여준다. 2장은 ‘상념의 바다’로, 망자의 지난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소년기부터 장년기까지 순차적으로 전개되는 가운데 살면서 마주한 수많은 사람과 사건의 환영에 사로잡혀 지난 삶을 붙들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다. 삶을 회상하며 겪는 기쁨과 슬픔, 회한과 체념 등 감정의 굴곡을 담은 춤은 망자의 내면세계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마지막 3장 ‘고요의 바다’에서는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반복 움직임을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사후세계가 연결된다는 철학을 담아낸다. 삶에 대한 집착과 욕망을 내려놓은 망자의 절제된 표정과 과장되지 않은 움직임에 깨달음의 진리를 녹여내고, 이승에 남은 이들이 49재를 마무리하며 막을 내린다. 

작품의 중심인 망자 역할은 국립무용단을 대표하는 주역 무용수 조용진과 독보적인 실력으로 무대를 장악하는 최호종이 맡았다. 죽음을 맞이한 망자는 조용진, 회상의 망자는 최호종이 연기한다. 국립무용단 50여 명 전 단원이 각자의 경험과 감정을 솔로·듀엣·군무 춤사위에 담아 강렬한 에너지를 쏟아낸다. 

음악은 현대무용가이자 국립무용단 대표 레퍼토리 <산조>의 음악을 작곡한 김재덕이 1·2장, 거문고 연주자이자 작곡가로 활동하는 황진아가 3장을 맡았다. 

▲국립무용단 <사자의 서> 연습 장면 ⓒ국립극장
▲국립무용단 <사자의 서> 연습 장면 ⓒ국립극장

황진아 작곡가는 “작년 여름부터 이 작품을 논의했다. 감독님과 이야기 중에 가장 제일 마음을 울렸던 건 죽음과 삶이 다른 곳에 있지 않다는 말이었다”라며 “죽음이라는 주제가 경험해 보지 못하고 유추만 할 수 있는 것이어서 감정선 잡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심적으로 괴롭기도 했다”라며 “죽음과 삶이 다른 곳에 있지 않다는 점을 반영하기 위해 음악도 상반된 것들이 어우러지도록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독특한 악기를 쓰지는 않았지만, 친숙한 악기의 연주법을 다양하게 하려고 노력했다”라며 “현악기 파트는 활로 연주하는 보잉이 아닌 현을 거칠게 듣는 피치카토를 사용했고, 연주자들이 내는 부스럭거리는 소리나 숨소리도 그대로 넣었다”라고 덧붙였다.

두 명의 작곡가가 모여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는 현장 질문에 대해 황진아 작곡가는 “김재덕 작곡가님과 저는 아주 다른 결을 가지고 있는 음악가이기 때문에, 각기 다른 두 사람이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라며 “다만, 각자 맡은 1ㆍ2악장과 3악장은 시점의 차이가 있고, 이에 따라 주인공과 시선도 달라지기 때문에 음악을 연결하는데 어색함이 없었던 것 같다”라고 전했다. 

▲국립무용단 <사자의 서>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김종덕 단장 ⓒ국립극장
▲국립무용단 <사자의 서>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김종덕 단장 ⓒ국립극장

<산조>, <묵향> 등 한국무용에 강렬한 색감과 미쟝센을 더해 큰 호응을 얻었던 국립무용단의 이전 작품들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김종덕 단장은 “(국립무용단의) 지난 작품 의상들이 워낙 화려했지 않나. 그런데 사실 무용의 개념은 신체를 재료로 사상과 감정르 표현하는 시공간상의 총체 예술이다. 이에, 최대한 신체를 활용해 움직임의 질감으로 작품을 끌고 나갈 수 있는지에 집중했다. 죽음은 수직적 개념으로, 49일의 여정은 수평적으로 표현했다. 이를 통해 관객들이 주제를 관통할 수 있도록 명징한 이미지를 부여하고자 노력했다”라고 밝혔다. 

전통 무용과 컨템포러리의 조화를 이루어가겠다는 무용단의 방향성도 밝혔다. 김 단장은 “이해하기 쉽게, 국립국악원과 국립무용단을 비교해 보겠다. 국립국악원은 전통을 올바르게 전승하고 보존하는 기관이지만, 국립무용단은 전통 문화의 정서를 동시대에서 현대 예술로 인정받는 것이 주어진 역할이다”라며 “이 작품 역시 컨템포러리 댄스를 지향하고 있다. 그동안 <향연>, <제의> 등 전통의 재구성에 가까운 작품들이 많았는데, 이제 동시대성을 좀 더 강화시켜 현대 예술로써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3년의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