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백남준과 호흡하는 동시대, ‘유명하지만, 잘 모르는 백남준’
[기획] 백남준과 호흡하는 동시대, ‘유명하지만, 잘 모르는 백남준’
  • 김연신 기자
  • 승인 2024.04.04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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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이 예견했던 미래의 도래
‘백남준 키드’…실리카겔 김한주 등
현대인들에게는 ‘상식’이 된 백남준
백남준이 남긴 가치 제대로 조명하고 기억해야

[서울문화투데이 김연신 기자]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전세계에 송출된 지 40년이 지났다. 오늘날 사회의 많은 부분은 백남준이 예견했던 미래의 모습과 같다. 우리는 통제가 어려울 정도로 확장된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에서 표류하게 되었고, 모두가 개인 채널을 가지고 있는 유튜브 시대가 도래했다. 백남준이 창시한 ‘비디오 아트’는 최신 기술을 입고 오늘날의 ‘미디어 아트’가 되어, 각종 전시장뿐만 아니라 건물 외벽에서도 미디어 파사드의 형태로 찾아볼 수 있다. 40년 전의 사회는 늘 앞서 있었던 백남준의 속도를 따라가기엔 한참은 느렸기 때문에, 그가 예견했던 많은 것들이 실현된 오늘날은 ‘포스트 백남준’이 아니라 진정한 백남준의 시대의 도래일지도 모른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 중
▲‘굿모닝 미스터 오웰’ 중

백남준이 타계한지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세상은 여전히 그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 지난 12월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백남준 연구서』를 발간했으며, 백남준을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가 국내 개봉했다. 이번 달 학고재에서는 백남준·윤석남·김길후 3인전이 열렸으며, 백남준아트센터에서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세계평화의 가치를 조망하는 전시, 《일어나! 2024년이야》와 동시대 작가들이 백남준이 던진 기술문명에 대한 화두에 답변하는 전시인 《빅브라더 블록체인》이 열렸다. 

다음 달에는 백남준이 ‘전자 초고속도로’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고 작품 기증을 통해 가까스로 한국관을 얻어냈던2024베니스 비엔날레가 개막, 공식 병행전시에 백남준의 ‘고인돌’이 출품된다. 오는 9월에는 백남준아트센터에서 《NJP 커미션》을 통해 백남준의 예술정신을 기반으로 동시대 사회적 아젠다를 다루고 발언하는 작가를 발굴하고, 그들의 신작을 전시한다. 올해 말, 부산현대미술관에서는 백남준 대규모 회고전이 준비돼 있으며, 올해부터는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이 재개될 예정이다. 포스트 백남준의 시대에는 백남준이 없는 곳이 없다. 백남준을 말하지 않고는 맥락을 이어가기 어려울 정도다.

백남준의 작품은 과거의 유물처럼 고리타분하게 전시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그가 꿈꾸고 예견했던 ‘초연결’의 양태로 살아 숨쉬며 새로운 기술과 문화와 관계 맺고, 확장되며 새로운 가치를 탄생시키고 있다. ‘정보 사회의 감시’ 등, 백남준이 던진 화두는 여전히 포스트모더니즘 예술가들로 하여금 새로운 매체를 통한 작업으로 여러가지 답변을 내놓게 하고 있다. 그의 창의성은 전염성을 배태하고 ‘백남준 키드’라고 불리우는 젊은 예술가들을 낳았으며,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재해석되고 전유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백남준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

▲백남준 작가
▲임영균, ‘백남준 인물 II’, 1983, 인화지에 흑백사진, 25×30.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임영균

트렌드 최전선 아티스트들의 협업

《일어나! 2024년이야》는 얼터너티브 K팝 그룹 바밍타이거(Balming Tiger)와 독특한 영상 작업을 선보이는 현대미술 작가인 류성실의 퍼포먼스와 함께한다. 바밍타이거는 프로듀서, 영상 디렉터, 기획자, 비트 메이커 등 여러 분야의 크리에이터 11인이 모여 실험적이고 개성 있는 컨텐츠를 통해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고 있다. 다분야에 걸친 넓은 스펙트럼의 협업이 특징으로, 아르코미술관, 아트선재센터, 백남준 아트센터 등 미술관과 협업을 하며 인디밴드 ‘혁오’와 함께 네이버 라이브 컨텐츠를 제작한 바 있다. 그야말로 ‘뭘 좀 아는 젊은 층’들만 찾는, 트렌드 최전선에 있는 하이엔드 아티스트 그룹이다. 류성실 역시 ‘평범한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퍼포먼스 및 영상 작업을 하는 ‘괴짜’ 아티스트로, 컬트적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전부 과거의 플럭서스(Fluxus)를 연상시키는 이들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윤서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연구사는 “40년 전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내용과 형식을 오마주한 신작을 기획하면서 전 지구적 흥을 확산하고 있는 얼터너티브 케이팝 그룹 바밍타이거와 미술가 류성실에 동시대 아티스트의 응답을 요청하게 됐다”라며, “이들은 동시대 아티스트들의 시각으로 평화와 예술의 현주소를 이야기한다”라고 섭외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그는 “이제는 막대한 자본과 방송 전문가와 협력하지 않고도 누구나 자신의 채널을 가지고 서로 다른 시공간을 연결할 수 있다”라며, “백남준의 위성 예술 이후, 새로운 쌍방향 소통은 예술의 형식과 내용을 변화시키면서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라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류성실 작가와 바밍타이거의 협업작품, SARANGHAEYO 아트 라이브 (사진=백남준아트센터)
▲류성실 작가와 바밍타이거의 협업작품, SARANGHAEYO 아트 라이브 (사진=백남준아트센터)

GV에 등장한 ‘백남준키드’들

영화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 같은 경우에는 지난 12월 27일, 요즘 ‘핫’한 인디밴드 ‘실리카겔’의 멤버 김한주와 비디오그래퍼 멜트미러를 초빙해 GV를 진행했다. GV는 Guest Visit의 약어로, 영화에 대해 설명을 주고 받는 토크를 뜻한다. 보통 GV에 평론가나 음악 감독 등이 참석하던 걸 생각해보면, 인디 밴드 멤버와 젊은 아티스트를 초빙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경우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아트나인 이승영 기획자는 마찬가지로 평소 백남준을 열렬하게 사랑해온 ‘백남준 키드’로, 백남준을 자신과 같은 ‘MZ세대’들에게 잘 알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지금의 세대들을 움직이게 할 동력으로 실리카겔 멤버 김한주와 비디오 아티스트 멜트미러를 선정하게 됐다.

두 아티스트는 평소 ‘백남준’의 열렬한 팬이다. ‘실리카겔’의 뮤직 비디오 제작 의뢰를 위해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날에도 멜트미러가 ‘비디오 신디사이저’를 써보는게 어떨지 제안하면서 백남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이날 GV에서는 서로에게서 발견한 ‘백남준 키드’로서의 면모, 지금 우리가 ‘백남준’에게 주목해야 하는 이유 등을 주제로 관객과 대화를 나누었다. 김한주는 “백남준 하면 대부분 ‘비디오 아트’라는 키워드에 매몰되어 있는데, 음악적인 요소 또한 사유해볼 만 하다”라며, 같은 뮤지션으로서 영향을 받았던 백남준의 음악 작업에 주목했다. 이날 GV는 객석을 채운 팬들은 대부분 2-30대로, 백남준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젊은 층이 백남준에 대해 새로이 알아갈 수 있는 자리였다.

▲GV행사가 끝난 후, 관객들과 사진을 찍고 있는 실리카겔 김한주와 멜트미러의 모습이다.
▲GV행사가 끝난 후, 관객들과 사진을 찍고 있는 실리카겔 김한주와 멜트미러의 모습이다.

영화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 배급 기획을 맡은 엣나인필름 박소민 기획자는 “우리는 《전자 초고속도로》와 같이 ‘백남준’이 예측했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지금의 10-20대들은 ‘백남준’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스스로 ‘백남준 키드’라고 의식하지 못한다”라며, “백남준은 창조적이고 개성적이며, 유머와 장난기를 잃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열정적인 영감을 지닌, 요즘 말로는 ‘추구미’를 모두 품은 아티스트로, 알고 나면 모두가 열광할 수밖에 없는 ‘백남준’을 닮고 싶은 모두가 ‘백남준 키드’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과거 백남준을 한국에 소개했던 기자였던 이동식 저술가는 “오늘날 한국인은 K-팝, K-아트 등으로 세계문화를 선도하는 길에 들어섰는데, 그 앞에는 바로 백남준이란 예술가가 보여준 한국인 특유의 창조적 영감의 발휘가 있었던 것이다”라고 평가한다. 이처럼 백남준은 그가 알지 못하는, 혹은 그를 알지 못하는 젊은 세대들에게도 그가 세운 혁신적 근간 아래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쳐오고 있다.

‘유명하지만’ 잘 모르는

한국계 미국인 아맨다 킴 감독이 제작한 영화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은 지난해 1월 선댄스영화제에서 선보이고 미국에서 선개봉했다. 엣나인필름 박소민 기획자는 평소 백남준의 팬이었던 유태오 배우가 선댄스영화제에서 작품을 접하고 소개해 ‘백남준 영화’가 세상에 공개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다른 한국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싶었고, ‘백남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게 백남준을 한국에 잘 알리고자 배급을 결심하게 됐다. 백남준의 생애를 다룬 첫 영화는 과거 백남준이 그랬듯 한국에 역수입된 셈이다.

▲_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_영화 포스터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 영화 포스터 (사진=엣나인필름)

박소민 기획자는 “‘예술보다 더 위대한 예술가’라 불리우는 세계적인 아티스트 ‘백남준’은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도 유명해서 잘 모른다”라며, “모두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한 편이라도 제대로 본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논하는 것과 같다”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MZ세대인 아맨다 킴 감독의 시선에서 세련되고 감각적인 방식으로 탄생한 이번 영화가 젊은 층에게 ‘백남준 입문서’ 역할을 하기를 바라는 동시에, 그들이 느낄 ‘허들’에 대해 고민했다. 

그래서 택한 방식은 ‘도슨트 상영’이다. 엣나인필름은 ‘도스트 상영’이라는 영화관에는 이례적인 방식을 채택해, 영화 시작 전 약 5분간 김나율 백남준기념관 도슨트를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도록 했다. 아무래도 관객들이 백남준의 작품과 유명세는 익히 알고 있지만, 그의 작업과정이나 작품세계와는 익숙치 않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동식 저술가는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본 세대는 이미 노년으로 접어들었기에 진정으로 그가 추구한 세계와 방법론을 지금 세대들은 잘 보지 못했고 잘 알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는 “백남준이 찾아낸 세계는 당시에는 참신한 것이었지만, 현대인들에게는 이미 상식이 되었기에 무엇이 백남준인지를 알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라며 현실을 지적했다. 

동시대, 간과된 면모들

김윤서 학예사는 “백남준이 쌍방향 소통을 지향하면서 예술에 기술을 더한 활약은 크게 알려졌지만, 이를 통해서 백남준이 궁극적으로 바랐던 세계 평화의 가치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라며, 이번 전시는 “백남준이 궁극적으로 바랐던 세계 평화의 가치와 예술의 힘을 이야기하고자 기획됐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백남준이 설파하던 세계 평화의 가치는 차치하고도, 과연 오늘날 백남준의 예술에 기술을 더한 활약이 올바르게 인식, 평가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박소민 기획자는 “백남준을 수식하는 수많은 단어들 중 ‘과학자’이자 ‘기술자’의 면모가 간과되고 있다”라고 말한다. 백남준이 예견했던 포스트 인터넷 시대가 현실이 됐고, 젊은 층은 활자 매체보다 영상 매체에 더욱 익숙해졌으며, 영상 예술을 도처에서 접할 수 있게 됐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과 매체를 발굴하고 예술과 결합한 백남준의 ‘과학자’이자 ‘기술자’적인 면모는 오히려 간과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백남준 작가
▲백남준 작가

그는 “백남준이 ‘20세기 최초의 디지털 크리에이터’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TV부처> 시리즈 작품들을 통해 앤디 워홀보다도 먼저 멀티 페르소나의 개념을 제시하고, <굿모닝 미스터 오웰> 등의 작품을 통해 ‘모두가 자신의 채널을 갖는’ 지금의 유튜브 시대를 예견했던 사람이라는 점은 교과서가 알려주지 않는다. 또한 미술관에서 보는 작품만으로는 ‘백남준’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라며 역설적으로 ‘유명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점에 대해 재차 아쉬움을 표했다.  

이동식 저술가 역시 “오늘날 백남준 정신은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상식이 되었지만 그것을 확실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는 백남준을 미술가로 가둬놓고 있다”며, “그는 오히려 미디어예술가이자 미래학자로 되살아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동식 저술가는 1984년 KBS에서 굿모닝 미스터 오웰생방송을 생중계하고 백남준씨를 방송에서 수차례 알렸으며,  1986년 백남준씨의 위성새방송 <바이 바이 키플링> 한국편 제작을 담당하는 등 TV 방송에서 백남준 씨를 가장 많이 만나고 다룬 前KBS문화부 기자로, 명실공히 백남준 전문가다.

▲1984 7월, 이동식 저술가(좌)와 백남준(우)
▲1984 7월, 이동식 저술가(좌)와 백남준(우)

우리는 백남준을 미술가로 가둬놓고 있지만 그는 오히려 미디어예술가이자 미래학자로 되살아나야 한다. 기술로만 여겼던 TV를 예술의 수단, 혹은 방법으로 활용한 것이다, 그것을 위해 TV 수상기의 화면을 바꾸고 수상기를 조각의 재료로 쓴 것은 시각예술적인 측면이지만, 위성으로 나라와 나라를 연결해서 교류함으로써 인류가 더 재미있는 세상을 살며, 전쟁을 넘어서서 평화를 이 세계에 가져오자고 하는 것은 미술가가 아닌 미디어예술가의 영역이었다. 앞으로의 세상은 전자세계로서 전자기술이 중요한 소통수단이 될 것이며, 예술이란 수단을 통해 각박한 현대문명에서 인간에게 새로운 욕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미래학자의 영역이다. 그런데 우리의 미디어연구가들은 매클루언의 그늘로만 생각하기에 백남준을 버렸고, 미술에서는 TV 수상기로 만든 그의 작품이 점점 돈이 안 된다며 그를 보지 않으려 하고 있다.

-    이동식, [이동식의小窓多明] 백남준을 버리는가 中

이동식 저술가의 말처럼, 오늘날 백남준이 유명한 것은 너도나도 알지만, 백남준이 남긴 가치가 제대로 조명되고 있는지는 확답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백남준’이라는 위대한 유산을 안게 된 만큼, ‘앞으로 백남준을 어떻게 조명하고 기억할지’는 우리 사회가 지속적으로 고민해봐야 할 중대한 과제로 남았다.

백남준을 기억하려면

이동식 저술가는 “백남준은 비디오아트라는 한 예술장르를 당대에 스스로 창조하고 발전시킨 사람으로서 예술사에 기록돼 있다”라며, “오랜 시간 수많은 사람이 창조의 땀을 흘려 이뤄지는 예술장르를 당대에 한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은 백남준이 유일하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가 지적하는 점은, “우리가 말로는 백남준을 좋아하고 배우려고 한다지만 서울 어디를 가도 그를 알려주는 표지도 시설도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백남준 생가터 기념관은 시 예산 문제로 문을 닫을 뻔 하다가 여론의 반발로 겨우 위기를 넘겼고, 백남준 아트센터는 용인에 위치해 있어 백남준을 기억하는 외국인들이나 일반시민들이 방문하기가 쉽지 않다. ‘백남준이 만든 최대의 조각’이라고 불리우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다다익선>도 다시 붉을 밝혔으나 늘 켜져 있지는 않다.

▲복원을 마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다다익선’ (사진=국립현대미술관)
▲복원을 마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다다익선’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이동식 저술가는 “올해 그를 조명하는 예술행사가 이어지긴 하지만, ‘우리들은 사실 백남준을 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일반인들에게는 무관심의 대상이 되었다”라고 지적한다. 그는 “우리는 여전히 외국의 유명한 건축가나 예술가들의 작품을 들여오는 데에는 큰 관심을 갖지만, 백남준을 눈으로 기억하게 해주는 곳이 아직까지 서울에 없다는 점이 이상하게 여겨진다”라며, “백남준이 자란 곳이기도 하고,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서울 시내 중심가에 어떤 식으로든 그를 기억하고 내세울 시설이나 기념물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역설한다. 이어 “백남준은 우리나라의 차원을 넘어서서 세계적으로 더 키우고 평가받도록 해야 한다”라며, “이러한 작업은 어느 개인이나 단체가 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기에 국가적인 추진이 필요하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동시대가 여전히 백남준과 호흡하고 있음은 명명백백하다. 백남준을 기억하는 전시나 행사, 작품들은 쉴 틈 없이 나오면서 그의 이름을 동시대에 새기고 있다. 그러나 백남준이 올바르게 알려지고, 기억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찍힌다. 

젊은 예술가들은 여전히 백남준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40년 전 그가 던진 질문에 새로운 작품을 통해 열렬하게 화답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의 경우, 백남준이 유명한 것은 알아도 정작 백남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서울에서 백남준을 다루는 전시는 끊임없이 열려도, 시민들이 백남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공간은 아직 마련되어있지 않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백남준이 남긴 위대한 유산이 계속 살아 숨쉬게 하려면, 우리 세대 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도 백남준을 잊지 않고 계속하여 백남준과 호흡할 방안을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