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타오르는 빛, 바라보는 자연”…뮤지엄 산, 우고 론디노네 《BURN TO SHINE》展
[현장스케치] “타오르는 빛, 바라보는 자연”…뮤지엄 산, 우고 론디노네 《BURN TO SHINE》展
  • 김연신 기자
  • 승인 2024.04.16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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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 뮤지엄 산 청조 갤러리 전관, 백남준관, 야외 스톤가든
조각, 회화, 설치, 영상을 포함한 40여 점
“뮤지엄 산에서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이상적”

[서울문화투데이 김연신 기자] 1년만에 ‘뮤지엄 산’에 새로운 기획전시가 찾아왔다. 지난해 개막한 《안도 타다오-청춘》展이 지난 12월 막을 내리고, 우고 론디노네의 국내 최대 규모 개인전이 그 뒤를 잇게 됐다. 지난 4월 6일, 한솔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뮤지엄 산(관장 안영주)에서 현대미술가 우고 론디노네의 국내 최대 규모 개인전 《BURN TO SHINE》 전시가 개막했다. 지난 8일에는 기자간담회 자리가 마련돼, 작품 전반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서울로부터 약 두 시간 거리에 위치한 원주시 지정면, 맑은 공기로 반겨주는 뮤지엄 산을 방문해 그 현장을 담아봤다.

▲지난 8일 개최된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에 대해 소개하는 우고 론디노네 작가의 모습. 

우고 론디노네(1964년 스위스 출생)는 동시대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로서, 그의 작업은 다양한 조각적, 회화적 전통을 결합한 유기적 조형언어를 구축하며 자연과 인간존재에 대해 깊이 성찰한다. 인간 본성에 대한 그의 광범위하고 관용적인 시각은 회화, 드로잉, 조각,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 폭넓은 매체를 통해 드러난다.

이번 전시는 뮤지엄 산의 기존 전시 공간인 청조 갤러리 전관은 물론, 백남준관, 야외 스톤가든까지 전방위에 걸쳐 조각, 회화, 설치, 영상을 포함한 그의 작품 40여 점을 소개한다. <수녀와 수도승(nuns+monks)> 연작으로 대표되는 조각부터, 일몰과 월출의 풍경을 담아낸 <매티턱(mattituck)> 회화, 그리고 여섯 개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선보이는, 전시와 동일 제목인 <번 투 샤인(burn to shine)>(2022) 영상 등을 만나볼 수 있다.

▲《BURN TO SHINE》 전시장 입구 전경 ©️김연신 기자

빛, 타오르다

전시는 입구를 장식하고 있는 시계, 창문, 빛을 상징하는 세 작품으로부터 출발한다. 각각의 작품에는 무의미, 평화, 고요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본래 창문이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통로로서 기능한다면, 좌측 벽에 위치한 창문들은 바깥이 비쳐 보이지 않는 창문으로서 경계와 경계를 넘나드는 해석을 요하고, 공중에 매달린 시계들은 우리가 객관적으로 인지하는 시간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전시 제목인 ‘번 투 샤인(burn to shine)’은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는 영상 작품과 동명으로, 존 지오르노의 시 <You Got to Burn to Shine (빛나기 위해 타오르라)>에서 영감을 받았다. 동시에 삶과 죽음에 공존에 대한 불교 격언이기도 하며, 몸을 불태우며 영생을 이어 나가는 그리스 신화의 불사조를 연상시키는 등 중의적 의미를 담았다. 작가는 “순환적으로 부활하고 매번 새롭게 재탄생하는 이 불멸의 새는 태양과 연계되며, 전생의 재로부터 다시 태어나 새 생명을 얻는다”라고 설명한다.

<번 투 샤인(burn to shine)>(2022)은 프랑스계 모로코인 안무가 푸아드 부수프와 협업한 이 퍼포먼스 영상 작품이다. 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의 전통 의식과 현대무용을 결합해 강렬한 사운드와 신체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작가는 “<번 투 샤인>은 변화(transformation)에 대한 욕망을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영상에는 12명의 타악기 연주자와 18명의 남녀 무용가가 등장하고, 이들은 불꽃을 둘러싼 채 춤을 추며 신비로운 황홀경에 이른다. 삶에 대한 축제이자 애도로서, 작품은 삶과 죽음의 연약한 경계를 탐색한다. 

▲전시장 4관의 burn to shine 영상 작품 (사진=뮤지엄산)

<너의 나이, 나의 나이, 그리고 태양의 나이(your age and my age and the age of the sun)>(2013-현재)와 <너의 나이, 나의 나이, 그리고 달의 나이(your age and my age and the age of the moon)>(2020-현재)는 3세부터 12세까지, 1000여 명의 어린이들과 협업해 완성한 프로젝트다. 작품이 전시된 두 전시공간 모두 벽 아래의 80센티미터 가량의 공간을 통해 진입할 수 있다. 이는 관람객이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작품에 접근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어린 아이들이 그린 순수한 모습의 태양과 달은 미술관 1층과 2층에 위치한 동일한 구조의 갤러리에 전시되어 공명한다. 작품은 진행형 프로젝트로, 아이들의 드로잉은 매 전시마다 작가에 의해 소장, 축적되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화한다.

해와 달의 모티브는 작가의 <매티턱(mattituck)> 회화 연작에서 재등장한다. 작가가 거주 중인 뉴욕 롱 아일랜드 지역명을 제목으로 삼은 이 작업은 정지된 장소를 관통하는 시간의 흐름을 담았다. 일몰과 월출의 풍경을 보색으로 이루어진 3색의 수채화로 포착해낸 각 작품은 작업이 완성된 날짜를 제목으로 하며 사적인 일기이자, 삶의 기록으로 기능한다.        

▲전시장 1관의 말 조각작품 연작과 매티턱 연작.jpg
▲전시장 1관의 말 조각작품 연작과 매티턱 연작. (사진=뮤지엄산)

자연, 바라보다

<매티턱(mattituck)> 연작이 전시된 갤러리 공간에는 푸른색 유리로 주조된 11마리의 말 조각 시리즈가 함께한다. 각각의 작품들은 세계 각지 바다의 명칭의 제목으로 삼으며, 바다 풍경을 담았다. 작품의 중앙에서 말의 상체와 하체를 가르는 선은 하늘과 바다를 구분하는 수평선의 모습과 닮아 있다. 각각의 말의 시선은 전부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교차하고 있다. 

작가는 각 작품을 ‘4원소의 결합체’라고 말한다. ‘흙’에서 추출한 규소에 ‘열(불)’을 가해 ‘물’처럼 흐르는 상태에서 ‘공기’를 불어넣어 형상을 만들어낸 작품은 주 재료인 ‘유리’를 통해 4원소를 통합하고 있다.

<수녀와 수도승(nuns+monks)>연작은 야외 스톤가든과 백남준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 조각 작품은 소녀와 수도승의 옷자락이 흩날리는 듯한 형태를 하고 있다. 각각의 작품은 다른 머리 색과 몸 색을 가지고 있는데, 작품명은 머리 색과 몸 색을 읽으면 된다. 수녀와 수도승의 차이에 대해서는 작가가 아직 밝힌 바가 없다고 한다. 

백남준관에는 4m 높이의 <노란색과 빨간색 수도승(yellow red monk)>이 원형의 천정으로 내려오는 자연광 아래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서있다. 백남준관은 기존 백남준 소장품을 전시 중이었으나, 이번 전시를 위해 분위기를 전환했다.

▲백남준관에 전시된 <노란색과 빨간색 수도승(yellow red monk)>

야외 스톤가든에는 6점의 수녀와 수도승이 정원의 자연석과 어우러져 선사시대의 거대한 돌기둥을 연상시킨다. 3m가 넘는 크기의 이 기념비들은 청동으로 주조되었지만 작은 규모의 석회암 모형을 기반으로 제작된다. 

이에 대해 작가는 “돌은 내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재료이자 상징이다. 2013년 록펠러 광장에서 선보인 <휴먼 네이처(human nature)>의 석상 작품에서부터 시작되었고 2016년 네바다 사막에 설치한 <세븐 매직 마운틴(Seven Magic Mountains)>으로 이어졌다.”라며, “두 작업 모두 자연석을 아름다움과 사유의 대상으로 탐구하고 감상하려는 시도로서,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바깥세상과 내면세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매우 사적이며 명상적인 시각적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이를 통해 나는 본다는 것이 물리적인 현상인지 혹은 형이상학적인 현상인지에 상관없이 그것이 어떤 느낌이고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조각을 만든다”라고 설명한다. 

우고 론디노네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매일 자연을 볼 수 있고, 도시의 소음이 없는 뮤지엄 산에서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이상적”이라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또한 이번 전시를 위해 원주 지역 아이들 1000명과 협업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아이들을 예술의 일부로 참여시킬 수 있어 아주 기쁜 작업이었다”라며, “미술관은 아이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며 문을 열어두는 공간이 아닌, 아이들을 직접 끌어들이는 공간이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삶과 자연의 순환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우고 론디노네의 개인전 《BURN TO SHINE》은 오는 9월 18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