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 국립정동극장 기획공연 ‘봄날의 춤’, 안애순의 ‘척(尺)’
[이근수의 무용평론] 국립정동극장 기획공연 ‘봄날의 춤’, 안애순의 ‘척(尺)’
  •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24.04.17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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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한 해설, 늘어나는 물음표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국립정동극장(대표이사 정성숙)은 유서 깊은 공연장이다. 구한말 국내 최초의 근대식 극장이던 원각사의 복원이란 의미를 담아 1995년, 장충동 국립극장 분관으로 설립된 후 내년이면 개관 30주년을 맞는다. 광화문 요지에서 326석의 정동극장과 212석의 세실극장을 운영하면서 뮤지컬, 연극, 콘서트, 전통무용 등 다양한 장르 공연을 소화해온 보석 같은 공연장이다.

정동극장이 4월을 맞아 두 개의 기획공연을 선보였다. 세실극장에서 ‘세실풍류-근현대춤 100년의 여정’(4.4~30)을 한 달 내내 보여주고 정동극장 본 무대에는 사흘에 결쳐 ‘봄날의 춤’(4.3~7) 세 편 공연을 올렸다. 대구시립무용단장을 역임한 안은미의 ‘거시기모노로그(4.3)’, 국립현대무용단장을 차례로 역임한 안애순과 안성수가 안무한 ‘척(尺)’(4.5)과 ‘스윙 어게인(4.7)’이다. 나는 두 번째 작품인 ‘척(尺)’을 보았다.   

척(尺)은 길이를 재기위해서 미리 만들어진 도량형인 자를 말한다. 30cm의 길이가 한 척으로 측정된다. 무용수들의 몸과 춤이 자로 재듯 표준화되고 정형화되어 있다는 불만을 내포하면서 이로부터 벗어나려는 의지를 표출하려는 듯한 제목이 특이하다.

정사각형, 직사각형, 삼각형, 원과 화살표 등 여러 가지 기계화된 검정색 도형들이이 개별적으로 혹은 집단을 이루며 끊임없이 스크린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8분 시간이 흐른 뒤에야 출연자들이 하나씩 무대에 등장한다. 남자 1, 남자 2, 여자 1, 여자 2, 남자 3, 남자 4등 여섯 명 출연자의 움직임에서 앞섰던 도형들이 표준화된 동작의 아바타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양팔과 머리를 위주로 한 첫 번째 움직임, 몸통과 상체 위주의 두 번째 움직임, 자리에 누워 양다리를 주로 움직이는 세 번째와 역시 자리에 앉아 엉덩이와 하체를 위주로 움직이는 네 번째, 다음엔 무대를 가로지르며 활발하게 이동하는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출연자가 시간차를 두고 차례로 등장한다. 한사람의 춤 동작을 분해하여 시간차를 두고 보여주는 것 같다. 이와는 반대로 표준화된 여럿의 움직임을 동 시간대 한 공간에 압축하면 한 사람의 춤이 될 것이다. 개별화된 움직임에 이어지는 네 사람의 군무와 여섯의 군무가 이러한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척’에서의 춤사위는 2022년 작품인 ‘몸쓰다’를 닮았다. 2021년, 광주 아시아문화의 전당에서 초연한 ‘척’을 2024년의 ‘척’으로 재연하고 2022년의 ‘몸쓰다’(토월극장)를 2023년의 ‘몸쓰다’로 재연하면서 그녀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춤에 대한 그녀의 인식인 듯 하다. 춤이 스토리나 상징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기보다 움직임 자체가 작품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팸플릿에서 안애순은 자신의 안무의도를 난해한 어휘로 설명한다. ‘서로 다른 신체의 경험이 신체 안팎에서 관계 맺고 축적하는 장소성을 사유함으로써 유사함과 다름 사이에 형성되는 개별화된 고유성의 세계를 성찰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오랫동안 고민해온 주제의식을 확장하여 ‘시간의 부피와 신체 장소의 고유성’을 이 작품에서 다루고자 했다고 부연한다. 난해하기는 마찬가지인 표현이다. 왜 안무가들은 춤보다 더 어려운 개념들로 자신의 춤을 설명하고자하는 것일까. 안애순의 춤에서 늘 느끼는 나의 의문이다. 

뮤지컬, 연극, 콘서트공연을 위주로 운영하면서 무용장르에 소홀했던 정동극장이 올 봄 두 개의 춤 공연을 기획한 것은 반갑다. 그러나 ‘안 트리오’란 이름에 집착하면서 ‘봄’이란 주제를 잊었던 것일까. ‘봄날의 춤’을 구성한 프로그램 중에서 정작 봄을 느낄 수 있는 신선한 작품을 만나지 못한 것은 아쉽다. 봄날에 새롭게 피어나는 꽃들처럼 내년엔 주제에 알맞게 선정된 작품의 초연무대를 보고 싶은 마음을 이곳에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