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 Library] 당신도 그림책을 읽어야 한다.
[Human Library] 당신도 그림책을 읽어야 한다.
  • 독립기획자 김다인
  • 승인 2024.04.1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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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읽었던 책 중 가장 기억에 강하게 남는 것이 무엇인가. 좋은 책의 기준에 대한 여러가지 견해에 반기를 들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릴 적 부모의 실감나는 연기를 거쳐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그림책의 장면들은 누구에게나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한편의 기억 속에 묻어둔 그림책이지만, 기회가 된다면 오랜만에 책장을 뒤적여 추억 속 그림책들을 다시 한번 펼쳐보는 것은 어떨까. 한순간에 동심으로 빨려들어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비둘기야 핫도그 맛있니(2009, 모윌렘스)>를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으로 꼽는다. 유아 시절 어머니의 구연을 들으며 그 익살맞은 목소리에 깔깔 웃었던 기억도 크지만, 무엇보다도 해당 책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그 속에 각인되어 있는 원초적인 감정이다. 그림책은 누구나 순식간에 감정에 몰두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앞서 언급한 그림책 <비둘기야 핫도그 맛있니>에서는 아기오리에게 자신의 핫도그를 나누어주기 싫어 전전긍긍하는 비둘기의 모습이 비춰진다. 아끼는 것을 뺏기기 싫어하는 아이같은 마음, 그림책의 섬세한 일러스트레이션 속에는 텍스트로는 미처 다 전달되지 못하는 미묘한 뉘앙스까지도 드러나 있다. 핫도그를 등 뒤로 숨겨보려 애쓰는 비둘기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비둘기의 목소리까지 귀로 들을 때, 비둘기는 좋아하는 것을 독차지하고자 했던 과거의 경험이 투영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반적 존재가 된다. 그림책이 전해주는 감정은 사소한 사건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그 자체로 생생하고 날것의 상태이다. 감정들에 무뎌질대로 무뎌진 우리의 의식이 깨어나기 위해선 그림책이 주는 이러한 자극들이 필요하다. 이에 관해 그림책의 중요성을 소개하는 책 <어른의 그림책(2015, 황유진)>에서는 이렇게 얘기한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잘 웃고 잘 울고 잘 감탄하는 능력을 점점 잃어간다. 짧지만 함축적이고 아름다운 그림책의 세계를 경험하면서 아주 잠깐이라도 감응의 능력을 회복하는 것, 그림책의 힘은 거기에서 나온다.”

세속에 지나치게 물들어버린 우리는 때로 어린아이의 시선이 필요하다. 아주대학교 교수이자 저명한 인지심리학자인 김경일 박사에 의하면 대상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선 이를 어린아이도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바꾸어 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 발명한 스티븐 새슨(Steven Sasson)은 코닥 직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카메라 필름을 어린아이에게 설명한 것에서 이미지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하는 것을 떠올렸다고 한다. 이러한 사례들을 뒤집어 이야기해보자면, 어린아이의 시선을 빌려 세상을 바라보았을 때 본질적 가치들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시선은 때로는 놀라울 정도로 냉철하고도 날카롭다. 일상의 익숙함 속에 갇혀 생각의 반기를 품지 못하는 우리에게 그림책은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동물원(2002, 앤서니 브라운)>은 부모와 어린 동생과 동물원 나들이를 떠난 아이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시종일관 불편한 기분을 심어주는 이 책은 이러한 의도된 찝찝함을 통해 읽는 이의 성찰을 유도하고 있다. 창살 뒤에 그려진 동물들은 무력하고 슬퍼보인다. 강압적인 아빠와 소심한 엄마, 산만한 아이들은 나들이에 집중하지 못하고 서로의 할 일만 한다. 시간 낭비였던 소풍을 마치고 돌아와 잠에든 주인공은 자신이 동물원 우리에 갇혀있는 꿈을 꾼다. 가족 구성원들의 단절된 관계, 동물을 구경거리로 삼아 학대하는 인간의 행태와 같은 일들에 문제 의식을 가지는 것은 주인공뿐이다. 그림책 속 아이가 품고 있는 의문들은 책을 읽는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인간과 동물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필자는 종종 주변에 있는 서점에 들러 시간을 보낸다. 그때마다 매대 앞쪽에 진열된 베스트셀러들을 뒤적거려보지만 결국 마지막에 향하게 되는 곳은 그림책 코너이다. 놀러나온 아이들과 뒤섞여 그림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책 속 내용에 몰입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일상의 권태에 빠져있다 잠시간 그림책이 주는 해방감을 느끼는 것은 내 안에 살고 있는 아이를 다시 만난 듯한 기분을 준다. 그림책을 읽는 어른이 점점더 늘어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