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먹은 화첩을 되살리다…‘관서명승도첩’ 복원
벌레 먹은 화첩을 되살리다…‘관서명승도첩’ 복원
  • 김연신 기자
  • 승인 2024.04.1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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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보존처리 적용
서울역사박물관 상설전시실 전시 예정

[서울문화투데이 김연신 기자] 보존과학 기술로 벌레 먹은 화첩이 전과 같은 모습으로 복원됐다. 서울역사박물관(관장 최병구)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77호 <관서명승도첩(關西名勝圖帖)>을 약 1년 6개월의 보존처리를 거쳐 복원한 성과를 공개했다.

▲관서명승도첩 얖표지. (좌)보존처리 전, (우)보전처리 후
▲관서명승도첩 얖표지. (좌)보존처리 전, (우)보전처리 후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관서명승도첩>은 작자미상의 19세기 실경산수화로, 평안도의 명승을 중심으로 주변 경관을 담은 총 16면의 화첩이다. 2003년에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77호로 지정된 바 있다.

<관서명승도첩>은 입수 당시 앞·뒤를 관통하는 1mm~2mm의 작은 구멍 수백 개가 뚫려 있는 등 벌레에 의한 손상이 심한 상태였다. 그림의 분리 과정 중 뒷면에서 수십 마리의 벌레의 죽은 시체와 애벌레, 분비물 등이 발견됐다.

국내 제작 전자선 열화비단 최초 사용

이번 <관서명승도첩>의 보존처리는 서울역사박물관의 전문인력과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의 공동 연구로 진행됐다. 국내 과학기술로 전자선 열화비단을 제작하여 유물의 보존처리에 사용한 최초의 사례다. 전자선 열화비단이란 전자선을 쬐어서 비단의 강도를 인공적으로 약화 시킨 비단을 뜻한다. 

▲보존처리 후 14면 '삼등 육육동'
▲보존처리 후 14면 '삼등 육육동'

훼손이 심했던 비단의 결실부 보강을 위해 재질, 조직 그리고 열화 정도가 동일한 비단을 사용했다. 비단의 열화 정도가 다르면 유물의 비단과 복원용 비단이 상호 동화되지 않아, 수축 팽창으로 인해 뒤틀리거나 기존 비단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존처리용 전자선 열화비단은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가 운영 중인 전자가속기를 이용하여 제작했다. 전자가속기에서 인출되는 고에너지 전자빔을 복원 소재인 비단에 조사(照射)하게 되면, 비단의 화학적 결합이 깨지게 되어 유물에 사용된 비단과 거의 동일한 열화 정도를 손쉽게 맞출 수 있다. 전자가속기는 전자총에서 방출되는 전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켜 높은 에너지의 전자선을 만들어내는 장치로, 소재의 멸균, 결합 및 분해 반응을 유도할 수 있다.

전자선 열화비단은 일본에서 대체로 수입품을 사용해왔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우리 과학기술로 전자선 열화비단을 제작하여 보존처리에 사용하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보존처리 중 색맞춤 및 건조 과정
▲보존처리 중 색맞춤 및 건조 과정

숨겨졌던 그림 드러나다

이번 보존처리의 또 하나의 성과는 숨겨진 그림을 발견하여 유물의 감상을 위하여 노출시킨 점이다. <관서명승도첩>의 장황은 그림의 가장자리에 약 2cm 폭의 흰색 종이로 사면을 두른 형태였다. 보존처리 과정에서 흰색 종이 하단의 그림을 확인하고 드러냈다. 

보존처리 과정에서 가장자리의 흰색 종이를 분리해보니, 총 16면 중에서 1~5면은 흰색 종이 하단에 여백이 있었으나 6~16면은 흰색 종이 하단에 그림이 연속적으로 그려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존처리를 통해 1~5면은 원래 장황 형태대로 흰색 종이를 두르고, 6~16면에는 흰색 종이 아래에 숨겨진 2cm의 그림을 노출시켰다. 

최병구 서울역사박물관장은 “벌레로 손상된 귀중한 유물을 국내 기술로 연구하고 도입하여 복원했으며, 보존과학 분야의 새장을 열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라며, “서울역사박물관은 보존처리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소장품의 다양한 훼손을 막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평안도의 아름다운 경관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관서명승도첩>은 오는 7월 상설전시실에 전시될 예정이다. 자세한 정보는 서울역사박물관 누리집(https://museum.seoul.go.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