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유일한 닭 박물관, 서울 닭 문화관
세계 최초의 유일한 닭 박물관, 서울 닭 문화관
  • 박기훈 기자
  • 승인 2010.04.23 10:45
  •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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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에 대한 오해를 올곧게 바로 세우는 문화보존의 공간

닭은 고기와 계란을 공급해주고, 시계노릇도하며, 나침반의 역할도 한, 우리선조들과 필수불가결한 공존의 대상이었다. 또한 관혼상제와도 관련이 깊어 결혼 때는 산 닭을, 장례 때는 나무 닭인 ‘꼭두닭’을 사용했다. 오늘날 우리 선조들의 생활이자 문화였던 ‘꼭두닭’은 아쉽게도 상여와 함께 그 맥이 끊겼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그 얼과 뜻, 솜씨와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이 남아있다. 그곳이 바로 서울 닭 문화관이다. 닭을 통해 우리나라와 세계의 문화를 동시에 엿볼 수 있는, 문화보존의 메카이자 선봉장으로 자리매김한 그곳을 찾아갔다.

◆20년의 인연, ‘꼭두닭’

닭은 인류 역사만큼이나 길게 인간과 함께 삶을 공유하면서 애환을 함께 한 친숙한 동물이다. 특히, 많은 장인들의 생각과 기술로 기록되고 남겨진 닭의 문화 유품은 하나같이 아름답고 우아하며 나름의 역사성까지 지니고 있다.

더욱이 민화 속의 닭 그림이나 상여 위에 놓인 ‘꼭두닭’은 우리만의 고유문화로 세계 그 어떤 것들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자랑스러운 문화유품이다.

하지만 남겨진 것은 그리 많지 않다. 300년 전까지만 해도 장례가 끝나면 같이 태우도록 국가에서 법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장지(葬地)에서 하관(下棺)하면서 ‘꼭두닭’을 즉시 태우면 영혼이 천당으로 더 잘 올라갈 수 있다는 믿음도 우리의 문화유산이 사라져가는 이유로 작용했다.

이후 300년 전부터 정부에서 태우지 못하도록 해서 살아남는 일부의 ‘꼭두닭’과 함께 세계 각지의 닭과 관련한 작품 및 유물들이 서울 닭 문화관에 전시되어 있다.

고풍스러운 가회동 북촌한옥마을 한 편에 자리 잡은 서울 닭 문화관은 2006년 12월 19일 문을 연 사립박물관으로, 닭을 주제로 한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박물관이다.

이화여대 보건교육과 교수로 일하다 2005년 정년퇴직한 김초강 관장이 ‘꼭두닭’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80년대 후반에 학생들과 함께 강원도 익제 산골로 수학여행을 떠났을 때 민박집 주인이 ‘꼭두닭’을 장작 대신 쓰는 것을 보면서부터였다.

이후 국제학술대회의 이유로 뉴욕으로 나갔다가 그곳에서 열린 오리엔탈 문화전시에서 우리의 ‘꼭두닭’이 하나의 상품으로 팔리는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랐다고 한다.

그때 ‘우리의 것을 다른 이들이 다 점령하기 전에 먼저 매점매석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모은 ‘꼭두닭’이 1000여점이나 된다.

◆세계 최초의 닭 문화관

전체 3000여 점의 닭 관련 물품들을 주제에 맞게 바꿔가며 전시하고 있는 서울 닭 문화관은 2층으로 구성되어있다.

1층은 테마전시관이다. 테마전시관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의 닭과 관련한 물품들을 선정한 주제에 맞게 꺼내서 전시하고 있다. 현재는 ‘공존’을 주제로 한 11번째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닭 모양을 그대로 본 따 만든 사실적인 예술품들뿐만 아니라 꽃병이나 시계, 접시, 장신구 등에 새겨진 닭들이 보는 이들을 반긴다. 이번 특별전은 우리가 생활하는데 필요한 물품들과 함께 하는 닭들을 통해 전시의 주제인 ‘공존’을 느낄 수 있는 동시에 세계 각국의 예술적 표현의 차이를 통해 그들의 삶의 양식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닭을 그린 그림들이 벽에 걸려있는 계단을 통해 2층 상설전시관으로 올라가면 일월도신장, 귀면(鬼面), 요여(腰輿), 계관도(鷄冠圖)등 우리 선조들의 전통 문화 속에 살아 숨 쉬는 닭의 모습들을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메인은 바로 ‘꼭두닭’이다.

‘꼭두닭’은 말 그대로 ‘꼭대기에 올라앉은 닭’이라는 의미이다. 우리 선조들에게 있어서 닭은 극락왕생의 인도자이자 망자를 지켜주는 동물로 여겼기 때문에 반드시 전통 상여 위에 얹었다고 한다. 닭이 이러한 상징성을 가지게 된 건 12지의 열 번째 동물로 날개가 달린 것은 유일한 것이기에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봤기 때문이다.

전시된 ‘꼭두닭’들을 보면 우리 조상들의 예술적 감각에 절로 탄성이 나온다. 자원이 넉넉하지 않던 시절, 5개의 색(오방색)만으로 이토록 멋지게 표현할 수 있었나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또, 그 창의성에 감탄하게 된다. 수십 쌍이 넘는 ‘꼭두닭’의 그 모양이 하나도 비슷한 것들이 없다. 이는 크게는 각 지방, 좁게는 각 동네까지의 문화를 가늠할 수 있는, 시대와 지역을 읽을 수 있는 귀중한 문화지표라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 닭 문화관을 돌아보고 나오면 닭에 대한 예술품들이 이토록 다양하다는 사실에 놀라게 되고, 소중한 문화유산인 닭을 그저 먹을거리로만 치부했던 자신에 대해 반성을 하게 된다. 문득, 상설전시관 입구에 걸려있던 ‘닭의 다섯 가지 덕’이 생각난다.

“닭의 벼슬은 관을 쓴 것으로 문(文)이요, 발톱의 갈퀴는 무(武)이고, 적에 맞서서 감투하는 것은 용(勇)이요, 먹을 것을 보고 서로 꼭꼭 거려 부르는 것은 인(仁)이요, 밤을 지켜 때를 잃지 않고 새벽을 알림은 신(信)이다”

김초강 서울 닭 문화관 관장
“21세기는 우리 모두가 문화로 봉사해야 할 때”

 
◆“닭은 우리 조상들의 삶이자 문화”

상의에 은색 닭 브로치를 달고 찾아오는 관람객들을 일일이 웃으며 맞이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김초강 관장. 김 관장은 선인들이 표현한 동서고금의 닭들을 보며 배우고 느끼는 공간이 되었으면 싶어 박물관으로 등록되어 있음에도 ‘문화관’으로 이름을 지었다며 ‘닭은 우리선조들의 삶의 모델이자, 자손을 반듯하게 잡는 하나의 교훈’이라고 말한다.

힘차고 역동적이면서 자신의 역할을 다해내는 수탉은 아버지 상이었고, 암탉은 평등사회를 실천하는 자유로운 어머니 상이었다. 이토록 선조들이 생활로 끌어들이고 문화로 승화시킨 우리 닭의 의미가 일제시대 이후 잘못전해지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일본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을 비하할 때 ‘닭대가리’라고 욕했어요. 닭의 위상을 떨어뜨리면서 하나의 문화를 말살시키려 했던 의도가 지금까지 이어진 거예요. 이런 것들을 바로잡으면서 우리 조상의 얼을 되돌려야겠다는 것이 문화관 설립의 큰 목적이기도 하죠”

삼한사온(三寒四溫)의 사계절을 견디며 생존하는 자존력을 가진 우리나라 닭이 세계의 다른 닭들보다 더 훌륭할 것이라고 말하는 김 관장은 전시된 일본유물 중 하나인 ‘긴꼬리닭’에 대한 말을 꺼냈다.

전 세계가 ‘장미계’라는 일본 닭으로 기억하는 ‘긴꼬리닭’은 사실 임진왜란 때 전리품의 하나로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것이다. 이후 일본은 보호재로 보호하며 길렀으나, 우리는 가난한 시절을 겪으며 몽땅 잡아먹어 토종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이제는 주객전도의 상황이 되어 일본이 자신들의 것이라 주장하고 있을 정도다.

“왜곡된 것들을 올곧은 조상문화로 다시금 되돌리려면 이런 수고를 안 하면 안돼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도 하죠. 솔직히 저 혼자는 힘들고 다 못하는 부분이죠.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도와주셔야 해요”

세계 우표 속의 닭 그림을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배우는 아이콘으로 제공한 ‘우표와 닭을 아이콘으로 세상보기’, 우리나라나 세계의 남자들이 싸움닭을 통해 가족과 국가 안녕을 위해 싸우는 지혜와 기교를 배웠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투계(鬪鷄)전’ 등 여러 가지 특별전을 선보였던 김초강 관장은 앞으로 무궁무진한 주제들을 가지고 많은 자료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저는 아무런 기초자료조차 없는 무(無)에서 시작해서 많이 힘들었지만, 이젠 제가 계속 자료들을 계속 정리하고 보여주면서 후손들이 좀 더 편하게 우리의 문화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하나의 자료가 돼서 기뻐요. 이후에 저처럼 문화로 ‘봉사’하고 싶고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래요”

◆“가치 있는 문화보존 자체가 큰 보람”

21세기는 문화전쟁시대이다. 이러한 때에 ‘닭’이라고 하는, 남이 업신여길 수 없는 훌륭한 문화 아이콘을 갖고 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김 관장은 이러한 문화 아이콘의 존재를 세계에 자랑하는 동시에 이러한 것을 같이 공유할 수 있다는 게 큰 행운이자 복이고 보람이라고 했다.

“우리의 문화를 통해 후손들의 정체성을 반듯하게 잡아주면서, 해외에는 ‘우리가 옛날에 빈곤했지만 지 정도의 문화를 갖고 있는 나라’ 라는 것을 알려야 해요. 이런 것을 해나가는데 의의를 두다보면 그까짓 연금 좀 써도 좋고 싸구려 밥 먹어도 상관없어요”

올해로 고희(古稀)를 넘긴 김 관장은 “어르신들의 삶의 모델이 되고프다”고 했다. 세월의 흐름만을 자랑하지 말고, 자기 스스로 할 일 찾아서 자기위치를 만들면서 어떻게 남을 좀 도울 수 있는지 생각하는 봉사정신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반면 젊은이들에게는 우리의 고유문화를 잘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하고 싶다고 했다.

“‘너도 내가 미처 손대지 못한 숨겨진 문화가 있을 것이다. 명품만 찾지 말고 그런 것들을 찾아서 나처럼 이렇게 모아라’라고 하고 싶어요. 그래서 세계문화전쟁시대에 같이 합승해서 ‘너희에게 없는 우리만의 고유문화가 이런 것이 있다’고 내세울 수 있는, 한국인으로의 정체성을 바로 갖고 우리나라의 역사문화를 절대 무시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어요”

◆박물관은 문화의 배고픔을 채우는 공간

우리나라 문화의 보존을 위해 끊임없이 ‘봉사’하는 김 관장은 사람들의 박물관에 대한 인식부족 때문에 많은 상처를 받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커피 한 잔에 7~8천은 거리낌 없이 쓰면서도 얼마 안되는 박물관 관람비가 아까워 들어갔다가 나가는 사람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심지어 ‘자기가 좋아서 모았으면 그만이지 돈까지 받느냐’며 역성을 내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우리의 문화민도(文化民度)가 아직 멀지 않았나 느껴지는 대목이다.

“박물관이 우리와 먼 거리에 있는 게 아니에요. 일상에서 생활하다가 일탈하고 싶을 때 잠시 와서 미처 몰랐던 문화 밥을 먹으며 자기의 정체성을 되찾아나가는, 하나의 좋은 교육의 장소로 인식 되었으면 좋겠어요”

김초강 관장은 ‘하나의 목적도 이루기가 힘든 것이 일인데, 자꾸 이 목적 저 목적 내세우면 안 된다’며 전통문화 계승을 통한 문화강국으로의 도약만을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희생정신을 가지고 애쓰는 이들을 격려해주면서 같이 뭔가 이뤄내려는 마음이 중요한 때이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내 손끝에서 전해지는 것’ 뿐만 아니라 ‘박물관에서 우리의 살아온 역사를 같이 공부하는 것’도 하나의 봉사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취재/인터뷰 서울문화투데이 박기훈 기자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