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섬 어르신 나들이 “한글 배우고 소풍 나오고"
통영 섬 어르신 나들이 “한글 배우고 소풍 나오고"
  • 홍경찬 기자
  • 승인 2010.06.2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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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RCE ‘우리 섬 배움마실’ 소풍에서 70여 명 어르신들 ‘덩실 덩실’

[서울문화투데이 경남본부=홍경찬 기자]“나이 70에 한글도 깨치고 소풍도 나오고, 너무 좋아서 이제는 자꾸 오래 살고 싶다”,“우리 아들이 자기 대신 효도한다고 선생님들에게 꼭 고맙단 인사를 전하라고 하더라”,“관광이야 열두 번도 더 가봤지만 다른 섬마을 할매들하고 같이 다니는 건 처음이지. 누가 언제 또 이런 자리를 만들것노”

▲ 통영 RCE(지속가능발전) 섬마을 배움 마실에 나선 어르신들이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를 탑승했다.
 통영RCE의 찾아가는 어르신 학교 ‘우리섬 배움마실’의 미륵도 나들이에서 절로 피어난 감탄의 꽃말들이다.

 욕지도, 사량도(대항, 읍포 마을), 한산도(봉암, 신거 마을) 등 3개 섬 5개 마을의 배움마실 어르신 학생 70여 명은 지난 6월18일 수산과학관과 미륵산 케이블카를 둘러 청소년 수련관에서 배움마실 소풍을 즐겼다.

 각 섬의 어르신들은 ‘한려해상국립공원’등 가는 곳마다 안내문이나 간판에 있는 글자들을 소리 내어 읽으며 그간 배운 한글실력을 서로 뽐내는가 하면, 삐뚤삐뚤하지만 직접 쓴 승선표를 보며 어깨를 으쓱이기도 했다.

 또 청소년 수련관에서 열린 놀이마당에서는 배움마실 선생님들과 어울려 흥을 돋우는 것으로 마을과 주민, 담당 선생님 자랑을 대신했다.

 박재금 할머니(사량도 대항)는 “공부도 노래도 열심히 하는 게 최고더라. 노래자랑한다고 해서 우리 마을 할매들은 한 달 넘게 연습했다”며 어깨춤을 멈추지 않았다.

  배두선 할머니(한산도 신거)는 “다른 마을은 2학년이고 우리 마을은 1학년이라 공부는 처질지 몰라도 노는 것은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다”며 연신 목청을 가다듬었다.

 사량도 대항마을과 욕지도 배움마실이 2년째로 접어든 반면, 한산도 신거와 봉암, 사량도 읍포 마을은 올해부터 시작한 것을 염두에 둔 말이다.

▲ 통영시 산양읍에 위치한 수산과학박물관을 방문 배운 한글로 문구를 읽어보고 관람도 한 통영 섬마을 어르신.
 봉암마을의 정두리 할머니가 욕지도 임막례 할머니에게 “한 해 배웠으면 졸업을 해야지”라고 농담을 던지자 “무슨 소리를 합니까. 공부하는 재미가 너무 좋아서 죽을 때까지 할겁니다”라고 응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욕지도와 사량도 대항마을 어르신들은 특히, 작년에 배움마실 선생님으로 활약하다 건강과 일신상의 이유로 올해는 그 자리를 다른 선생님께 넘긴 ‘옛 스승’을 이번 미륵도 소풍에서 만나 감격의 해후를 했다.

 두 섬의 어르신들은 “전화만 하다 이렇게 얼굴을 보니 반갑기 그지 없다”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작년 선생이나 올해 선생이나 어떻게 좋은 선생님들만 딱딱 뽑아주는지 우리가 참 복도 많다”는 게 5개 마을 배움마실 어르신들의 한결같은 말씀이다.

 배움마실 채영우 욕지도 담당 선생님은 “소풍가는 날 당일 날씨 걱정이 많았고 준비하면서 부족한 게 없는지 자다가도 일어날 정도로 신경이 많이 쓰였지만, 어르신들이 흡족해 하시고 흥에 겨우신 모습을 보니 내일 당장 소풍을 또 가자고 해도 흔쾌히 나설 수 있을 것처럼 힘이 난다”고 보람을 전했다.

 이덕선(한산도 봉암) 할머니는 “손주들이 소풍가기 전날 잠을 못 잔다고 하던데, 나는 손주들보다 더하는 것 같더라”며 배움마실 소풍 설레임을 전했다.

 최병대 통영RCE 부위원장은 “몸이 불편하시고 일이 바쁘신 데에도 배움마실 소풍을 나오신 섬마을 어머님, 아버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한글을 깨우쳤으니 다른 섬의 어르신 학생들과 짧은 편지라도 교환하며 친구 삼으시면 새로운 재미가 더할 것”이라며 이번 소풍이 배움마실에 발전적 동기부여를 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