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흐름을 공간 속에 옮겨내는 자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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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기훈 기자
  • 승인 2010.08.26 1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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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그리는 화가’ 권기철…9월 7일 대구 수성아트피아서 초대전 가져
[서울문화투데이=박기훈 기자] 권기철 작가(47)는 상당히 감정적이다. 즉흥적으로 작업을 시작하다 자신의 생각과 합일(合一)이 되지 않으면 일주일, 한 달, 일 년을 방치해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작품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면 말동무로 변신해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낸다. 정제되지 않은 충동, 작위적(作爲的)이면서도 작위적이지 않은 자유인인 권 작가와의 인터뷰 역시 즉흥적으로 성사됐다. 본지와의 인터뷰 스케줄 하나만을 위해 개인전 준비 중 홀연히 올라와 홀연히 내려간 그와의 만남은 너무도 순식간이었다.

◈국내화단의 ‘모차르트’

권기철 작가는 어린 시절 정말 지독한 가난 속에서 살았다. 학교도 가지 못갈 형편이었다. 신문배달을 해 고학으로 중고등학교 학비를 해결했다. 당시만 해도 사는 환경이 어려운, 이른바 ‘문제아’들이 많았던 신문보급소의 틈바구니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지켜오며 외로움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유일한 친구였던 라디오 덕분이었다. 이것이 그가 ‘소리를 그리는 작가’로 유명세를 떨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됐다.

“처음에는 FM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팝을 많이 들었어요. 그러다 대학 졸업 후에는 자연스레 클래식으로 흘러가더라고요”

그는 클래식 중에서도 모차르트 작품을 좋아한다. 작품 작업을 할 때도 크게 틀어놓는다. 수많은 클래식 거장 중에 유난히 모차르트를 고집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예를 들어 베토벤과 모차르트가 있다하면 전 모차르트에 손을 들어주고 싶어요. 그 순발력과 함께 가볍고 경쾌한 느낌이 좋아요. 어떤 사람들은 ‘모차르트와 비슷한 천재성 때문에 그런 것 아니냐’는 부끄러운 말씀도 하시지만 전 단지 워낙 엄숙하고 웅장한, 제도권 속에서 권력화 되는 것 자체를 굉장히 싫어할 뿐이에요. 그러다보니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 일종의 조롱이랄까 약간 이런 걸 좀 하는 성격인데, 그런 면에서 굉장히 저하고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이렇듯 음악을 좋아하는 그는 구상작업을 하던 당시 클래식 연주회장을 자주 찾으며 악기를  형상화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매혹적인 선 작업에 열중하던 그는 1998년 대구시립교향악단(이하 대구시향)과 인연을 맺게 된다.

“어떤 기자분이 대구시향 관계자한테 ‘악기를 그리는 화가가 있던데 포스터를 그런 그림으로 가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것이 인연이 돼서 지금까지 12년째 계속하고 있죠”

권 작가는 이러한 공로 때문에 지난해 12월에는 대구시장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음악과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그에게 음악이란 어떤 존재일까.

“음악은 제 그림에 에너지를 증폭시켜 주고, 평범한 것을 특별한 느낌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준 하나의 동반자죠”

◈2010년 9월-인생의 터닝 포인트

권기철 작가는 바람과 같다. 자기 스스로가 고정돼있지 않고 시시각각 계속 변화한다. 그가 해왔던 작업들의 궤적만 봐도 알 수 있다. 구상작업에서 추상으로, 추상에서 흑백으로, 흑백에서 칼라로 바뀌어왔다. 재료에서도 마찬가지다. 작품에 쓰이는 재료를 점점 확대해가면서 평면에서 입체로 탈바꿈해왔다. 

▲어이쿠봄간다 love/260x100cm/한지위 혼합재료/2010

이러한 그가 오는 9월(대구 수성아트피아 호반갤러리, 9월 7일~26일)과 10월(파주 헤이리 아트페어 특별전, 한 갤러리) 전시회를 앞두고 있다. ‘어이쿠 봄 간다’라는 커다란 틀 안에서 ‘흔들림’, ‘바람’, ‘마찰’, ‘자연’, ‘교감’ 등 10여 개의 키워드로 진행되는 이번 전시회에 대해 권 작가는 “이번 주제에 100퍼센트 공감한다”고 만족해한다. 특히, ‘흔들림’에 대해 더욱 그러하다.

“‘흔들림’ 자체가 제 삶하고 비슷한 거 같아요. 가령, 제 마음자체가 한 곳에 오래 있질 못하고 항상 변화하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좀 더 엄밀히 말하면 내 개인 정체성이 안착되어 가는 과정에서의 흔들림을 말하는 거죠”

5~60점 정도의 작품을 출품할 예정인 대구 수성아트피아 호반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은 다른 여타 전시회와 사뭇 다른 점이 있다.

“전시관이 두 개의 공간인데 큰 곳에는 신작들을 발표하고 다른 한 곳에는 구작(舊作)들 중 대표적인 것들을 선별해 전시할 예정이에요. 그런데 현재 제가 갖고 있지 않은 것들도 전시하고 싶어서 제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분들께 미리 연락을 취해 전시해달라고 부탁드렸죠. 제 입장에서도 좋고, 그 분들 입장에서도 흔쾌히 받아 들이셨어요”

이외에도 그에게 이번 9월 전시회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바로 디자인 전문업체인 ‘601비상’과 함께 그동안의 작품을 한 데 모은 도록을 전시회에 맞춰 발간하게 된 것이다. 단순히 한 전시회만을 정형화된 도록이 아닌, 그 자체가 하나의 또 다른 작품이 되는 미술인생의 총집합체인 셈이다.

“이번에 책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제가 나름의 자료 정리를 해봤어요. 1993년의 첫 개인전부터 오는 9월에 있을 27번째 개인전까지 정리해보니까 작품의 흐름을 다시 꿰고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내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가 어떻게 사회성으로 갔고, 그 사회성이라고 하는 게 어떻게 나아가면 좀 더 낫겠다는 부분들 말이죠. 이번 책 출간자체가 굉장히 제 작업을 개인적으로 확실히 정리할 수 있는 기점이 된 것 같아 좋아요”

◈제도에 얽메이지 않는 힘, 담백함

“좋은 그림이란 어떤 것입니까?”

주위 사람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면 십중팔구 ‘고흐나 피카소 등 유명한 작가의 그림’ 혹은 ‘고가(高價)의 그림’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런 점에 있어 작가는 남다르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작품은 작업실에 걸려있는 ‘모내기’라는 서예작품으로,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의 낙선작품이라는 점이 놀랍다.

▲화가 권기철의 보물 1호인 초등학교 3학년생이 쓴 낙선된 서예작품

“저랑 어릴 때부터 같이 그림을 그리던, 서예과를 간 동기가 있어요. 그 친구가 하루는 서예 실기대회 심사위원으로 갔다가 낙선작품들을 보게 됐는데, 보고선 너무 좋아서 집에 가져왔다고 하더군요. 제가 그 작품을 보고는 ‘이거는 내가 꼭 소장하고 보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네다섯 번 간청한 끝에 내 작품하고 맞바꿨어요”

화단의 중진급에 속하는 작가가 자신의 작품과 초등학생이 어설프게 쓴 서예작품, 그것도 낙선된 작품과 맞바꿨다는 사실은 상당히 믿기 힘든 사실이다. “제 작품하고도 견줄 수 없을 만큼 훌륭하다”는 그. 도대체 그 작품에 어떠한 매력이 숨어있는 것일까.

“그 학생은 제가 볼 때 서예를 따로 배운 적이 없는 학생이에요. 실기대회라는 건 기능적 측면만 보거든요. 그러다보니까 세로로 쓴 ‘모내기’ 글자의 줄도 틀리고, 글씨 크기도 다르고, 옆에 먹물도 튀겼고, 낙관도 줄이 삐뚤삐뚤하니 안 맞은 작품을 누가 뽑아주겠어요.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훨씬 더 낫다는 거죠”

권 작가는 제도권 교육의 한계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자신의 철학을 이야기했다.

“‘모내기’작품이 훌륭하다는 것은 한 작가의 사이클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어떤 계기로 인해 화가가 되기 위해 출발하죠. 그리곤 제도권으로 들어와서 그 기능을 배우게 되죠. 문제는  기능을 배우다가 어느 정도 자신의 철학이 서면 그 기능을 빨리 버려야 되는데 쉽지 않거든요. 버리지 못하면 자기 세계에 갇히게 되죠. 그래서 제도권에서 배운 사람은 아무리 기를 써도 무구한 맛, 천진한 맛을 만들어 낼 수 없어요. 그런 면에서 ‘모내기’ 작품을 들여다보면 세심(洗心)이라고 하나 마음이 싹 정화되고 저절로 기분이 좋아져요. 정말 아주 담백하게 자기 마음의 온 심혈을 기울여서 담아놨기 때문이라고 할까요?”

◈마지막에 남는 건 자기 자신의 행복

권기철 작가는 경북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해왔다. 그러다 돌연 “작품활동만 하겠다”고 선언하고 모든 강의를 접었다.

▲어이쿠봄간다 love/162X112cm/한지위 혼합재료/2010

“강의는 일종의 ‘밥 먹고 살기위한’ 하나의 도구였을 뿐이지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어요. 학교에 뜻이 있어본 적이 없었기에 강의는 굉장히 재미있게 했었죠”

전업화가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하자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며 웃음 짓는 권기철 작가는 창작의 고통을 이겨내라고 강조한다.

“소위 ‘밥벌이가 안된다’고 화가를 주저하는 것이 큰 부분을 차지할 수도 있겠지만 실은 창작에 대한 고통이 일상에서 밥벌이하는 거 보다 더 어려운 부분이죠. 사실 자기 좋으면 배고파도 상관없잖아요?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게다가 20세기 이후에 굶어죽은 화가 없어요. 괜찮아요(웃음)”

권 작가는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그다운 ‘즉흥적인’ 계획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가장 가까운 (즉흥적인)계획은 개인전을 좀 안해야겠다는 거예요. 말하자면 그림 속에 너무 오래 빠져있어서 오히려 그림을 잘 모르는 게 됐다고나 할까요? 거기에 그동안 여기저기 여행하면서 썼던 글들이 분량으로 따지면 책 7~8권정도 되는데 시간이 없어서 정리를 못했었는데, 그 정리도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