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궁' 경희궁 궁역길, 길 이름 공모전
'잃어버린 궁' 경희궁 궁역길, 길 이름 공모전
  • 권대섭 대기자
  • 승인 2010.09.08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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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산책 사람들...작지만 큰 감동 '문화사랑 길' 열어

조선 중기 이후  영조를 비롯한 아홉 명의 임금이 거쳐했다. 이곳에서 숙종이 태어났고, 경종 정조 헌종이 즉위했으며, 숙종과 영조와 순조가 승하했다.

경복궁 서쪽에 세워진 까닭에 서궐(西闕)이라 불렸다. 새문안 대궐, 야주개 대궐, 새문동 대궐이라고도 불렸다. 순조 29년(1829) 10월 화재로 전각 대부분이 소실된 것을 1831년에 중건하였다.

일제가 일본인 학교인 경성중학교를 궁궐의 서쪽에 세우면서 많은 전각들이 다시 헐리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광복 후엔 서울중·고등학교로 쓰이다가 1980년 6월 서울고등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하면서 현대건설에 매각되었다. 그 뒤 서울특별시에서 이 터를 매입하여 사적 제271호로 지정했으나, 시에서 서울역사박물관을 세우면서 다시 훼손되었다.

이 쯤 되면 어느 곳을 이야기하는 지 다 알 것이다. 비운의 궁, 경희궁 이야기다. 조선왕조 궁궐치고 불운을 겪지 않은 궁은 없다. 정궁인 경복궁은 전란에 불타 아예 폐허가 되어 왕조가 망할 때까지 사실상 제구실을 못했다.

동궐인 창덕궁도 몇 차례 화재를 견디며 살아남았다. 창경궁은 한 때 식물원(창경원)으로 전락했다. 사정이 이렇다 하더라도 경희궁만큼 훼손되고 헐려나간 궁은 없다. 흔적조차 찾기 어려울 정도로 사라져 간 주변엔 서울 역사박물관, 시립미술관, 성곡 미술관, 기상청, 대사관, 대한축구협회, 서민들의 판자촌까지 들어섰다.

그래도 명색이 궁궐 터. 이 궁역 길을 걷다 보면 숨바꼭질 하듯 옛 모습이 한 조각 한 조각 나타난다. 출판사 1층에 숨겨져 있는 유구, 미술관에서 커피 값을 지불하고 나서야 볼 수 있는 담장,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흥화문...등.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경희궁은 볼 것이 없다.

 정말 그럴까? 경희궁은 진짜 볼 것이 없을까. 아니다. 그런 말들을  단호히 거부하며 경희궁 궁역을 살리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매월 정기적으로 궁궐을 산책하며 지키며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사람들...자발적 시민들의 모임.

스스로의 모임을 '궁궐산책'이라 이름붙인 그들, 참으로 갸륵한 사람들이 그들이다. 한 번도 참석하지 못한 기자에게 매월 소식을 전해주며, 궁궐산책 일정을 메일로 보내주는 그들.   보내주는 일정과 사진만 보면서도 고마워하던 차에 이번엔 정말 깜짝 놀랄 소식을 또 접했다. 

 온 국민을 상대로 '경희궁 궁역길, 길이름 공모전'을 펼쳐 인터넷 게시판을 달구고 있는 것이다. 공모기간 8월 22일~9월 30일까지, 수상작 발표 10월 10일, 최우수상 1명에 현금 10만원과 기념품, 우수상 2명에 현금 5만원, 댓글 상에 궁궐 및 종묘관람권 각 2매...

 너무나 값진 공모 아닌가! 상금은 적지만 그 이상의 큰 의미가 엿보이는 공모전. 경희궁을 중심으로 동북, 서북 방향 일대 약 4킬로미터, 6만 5천평, 전체 관람시 약 3시간이 소요되는 권역을 '경희궁 궁역'으로 설정하고, 그에 걸맞는 아름다운 이름을 공모하겠다는 것이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구세군 회관, 체코 대사관, 뿌리깊은 나무집, 나눔문화, 일조각 출판사, 성곡미술관, 대한축구협회, 판자촌, 빌라촌, 서울복지재단, 기상청, 흥화문까지 이르는 길이다. 그래서 이 길의 품격과 역사성과 운치에 어울리는 이름을 찾자는 것이다.

그 이름은 그 운명을 결정한다. 요즘 전국 지자체에서 아름다운 길을 찾아 '둘레길'이다, '올레길'이다 하며 새로운 문화열풍이 일어나고 있다. 혹 그 열풍이 서울 복판 경희궁 궁역에서도 일어나려는 것일까. '비운의 궁' 경희궁을 우리가 잊고 있는 사이 '궁궐산책' 사람들은 이렇게 조용하게 문화사랑을 실천하며, 열풍을 선도하고 있었다.

서울 도심 한복판, 옛 궁역 따라 걷는 길에, 아름다운 길이름 하나, 요란하지 않으며도 지켜내는 우리역사, 소리 없이 진행되는 문화운동에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문의 crazy002@hanmail.net/016-574-85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