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콘이 남산 정상에 사쿠라(벚꽃) 심은 저의는?
니콘이 남산 정상에 사쿠라(벚꽃) 심은 저의는?
  • 이은영 기자
  • 승인 2011.01.2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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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기억 부활시키는 도발적 행위' 시민들 반발

 니콘이미징 코리아(대표 우메바야시 후지오 니콘이메징코리아/이하 니콘)가 서울의 중심 산인 남산 정상에 일본의 국화로 상징되는 '벚나무'를 심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니콘은 지난 1월 11일 창립5주년 기념 상징으로 남산 팔각정 바로 앞 청와대가 건너다 보이는 곳에 벚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 지난 1월 11일 팔각정 앞에서 진행된 니콘이미징코리아 창립 5주년 기념식수식 후 기념촬영. 왼쪽에서 세번째가 우메바야시 후지오 대표. 후지오 대표 머리 바로 오른쪽에 기둥이 보이는 나무가 이번에 식재한 벚나무다.

남산은 서울의 대표적인 명산이며 벚나무가 많기로도 유명하다. 특히 4월 벚꽃 시즌이 되면 무수하게 피어나는 꽃들이 산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봄철에 연인들의 대표 행선지가 남산인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11일에 심은 벚나무는 몇 년 뒤 봄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 송이를 꺼내 놓을 것이다.

팔각정 주변에 있는 나무가 대부분이 소나무인 점을 생각하면 화려한 벚나무는 단번에 상춘객들의 눈을 사로잡을 게 분명하다. 당연히 식수의 주인공인 니콘은 인지도 확장 및 제품 마케팅에 큰 효과를 보게 된다. 지금 당장은 창립 5주년 기념행사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엄격하게 따져보면 한국 시장의 저변 확대를 노린 장기적인 플랜이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니콘의 벚나무 식수는 훌륭한 마케팅 전략이다.

단순히 나무와 산이라면 니콘의 식수는 오히려 칭찬할만하다. 그러나 그것이 비록 제주산 왕벚나무라고 하지만 '벚나무와 남산'이 되었을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역사적 숙제와 마주칠 수밖에 없다.

   
▲ 사진 가운데 지지대를 받쳐놓은 나무가 니콘이 심은 일본의 대표적 상징 벚나무.(길이 2m, 지름 10cm)

니콘은 현재 전 세계 DSLR 시장에서 37%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 내에서도 34%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지난해 상반기 1위를 달성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캐논에 밀려 지난해 2위로 떨어졌다. 창립일이 4월임에도 불구하고 '2011년 1월 11일'을 택한 건 결국 한국시장에서 1위를 탈환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보인다.

일본의 대표적 상징, 남산 위에서 식민지 기억 부활시켜

벚나무는 일본이 고래로 이어온 사무라이 정신을 상징하는 나무다. 벚꽃은 4월에 흐드러지게 피고 채 2주가 되지 않아 떨어진다. 짧은 생 속에서 처연하고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삶은 일본 무사도의 오랜 상징으로 전해져 왔다. 일본의 수많은 축제 중에서도 봄철에는 단연 벚꽃 축제가 전 열도를 뒤덮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벚나무는 단순히 아름다운 나무가 아니라 일본의 역사적 상징성을 강하게 지닌 나무다.

지금 남산에 벚나무가 많은 것도 일제식민지 시기 본토에서 공수해 온 벚나무를 곳곳에 심었기 때문이다. 남산은 정면에서 궁궐이 있는 북악산을 쳐다본다. 북악산이 궁궐의 신장(神將)이라면 남산은 궁궐의 거울이다. 즉, 얼굴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본은 식민지 통치기에 한국의 얼굴에 일본의 상징을 분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지금 충무로와 명동을 포함한 남산 일대는 모두 주요 일본인이 거주하던 일본인 집단촌이었다. 인근에 조선 평민이나 부유층이 사는 경우는 드물었고, 오히려 집창촌 같은 하층민이 기생해 삶을 이어갔다. 현재 남산공원 자리에는 조선신궁(일본인의 참배를 위한 신사)이 있었다. 태조와 무학대사의 위폐를 모신 국사당이 바로 위에 있었지만 총독부가 인왕산으로 위패를 이전해 버린 뒤에는 빈껍데기만 남게 되었다. 일본은 신궁을 위해 남산에 계단을 만들고 입구에는 도리이(일본 신사의 상징이자 출입문)를 세웠다.

   
▲ 일제식민지 시기 조선 신궁 전경(좌)과 입구에 선 도리이(우)

결국 남산은 일제 식민지 시기 신사를 중앙에 모시고 주위를 벚꽃으로 감싼 신지(神地)나 다름없었던 셈이다. 게다가 주변에는 총독부 관련 인물을 포함해 일본의 중요 인사가 거주했던 만큼 당시 조선이 지닌 상징성은 모두 매몰된 소(小) 일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2차 세계대전 종결 뒤 남산은 한국의 상징으로 변화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백범 김구 동상을 세웠고, 퇴계 이황과 다산 정약용 동상이 들어섰다. 신궁이 소각된 자리에는 남산 공원을 세우고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건립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남산벚꽃축제라는 이름으로 식민지시기에 심은 벚꽃은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물론 해방 후 60년이 지난 지금 벚꽃에 대한 무조건적인 증오는 옳지 않다. 그러나 남산 일대에 있는 벚꽃은 치욕스런 역사의 증거라는 점에서 남산과 벚나무의 조합은 위험하다. 특히 이번 식수식이 니콘 창립 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라는 점에서 굳이 벚꽃을 그 상징물로 택한 것은 그 ‘기념’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의심스럽게 만든다.

니콘 측에서는 남산 일대에 벚나무가 많고, 스스로가 일본 기업이라는 점에 자긍심을 가지기 때문에 벚꽃을 택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선 신궁이 조선인이 아닌 일제 스스로에 의해 불태워졌다는 점, 그리고 신을 잠시 하늘로 보내는 신승식을 지냈다는 점에서 옛 조선 신궁과 가까운 자리에 벚나무를 심는 행위를 일부러 아픈 자리를 건드리는 도발이나 다름없다.

남산르네상스 프로젝트 무엇을 위한 계획이었나

이번 식수식은 물론 니콘 측에서 마음대로 심은 건 아니다. 서울시와 한 달간 협의를 거쳤고 원래 여러 그루를 심으려고 했던 것이 남산의 소나무 식재 정책에 따라  한 그루로 제한됐다.

이 문제로 시와 니콘 측은 한달 여의 시간을 가지고 서로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달의 기간동안 다각적인 검토를 했을 것이 분명한데 이러한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을 무시했다는 점이 의아하다.

더구나 현재 서울시가 진행 중인 남산 르네상스를 떠올리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남산 르네상스는 서울의 중요 관광지이자 역사적 상징성을 지닌 남산을 생태적ㆍ역사적 복원을 통해 시민과 소통하는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프로젝트다.

   
▲ 복원된 남산 봉수대. 저 멀리 북악산이 보인다.

남산 르네상스의 배경 및 목적을 보면 ‘일제 식민지 시기 왜곡된 역사를 수정하고, 한국의 고도 성장기에 훼손된 생태 환경을 복원한다.’고 되어 있다.

내사산 중 하나로 도성방어를 맡았던 남산은 성곽과 봉수대, 장충단비, 국사당터 등 서울의 600년 시간이 서려 있는 역사적 장소다. 그러나 식민지 시기 일제는 민족혼 말살을 위해 국사당 및 봉수대를 철거하고 신사와 관사를 조성했다. 해방 후 고도 성장기에는 무분별한 개발로 자연환경과 경관이 파손됐다. 이에 지속적인 복원을 통해 남산의 본래 모습을 회복하겠다는 것이 서울시의 취지다.

실제로 남산 복원은 오래 전부터 서울시가 맡은 숙제였다. 1991년에는 남산외인아파트가 철거됐고, 2010년 현재 봉수대 2개소가 복원됐다. 장충단 공원 리모델링 사업과 함께 장충단비도 제자리를 찾았다.

   
▲ 조선 신궁 도오리가 서 있던 계단의 현재 모습(2011)

특히 한국의 상징적인 나무라고 할 수 있는 소나무림 확대에도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다. 아카시나무 및 외래종을 제거하고 남산 고유수종을 식재했다. 남산벚꽃축제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벚꽃을 없애야 한다는 일부 지적에 추가 식수가 이뤄지고 있지는 않다. 이는 소나무 보존 및 확대와 함께 ‘역사 복원’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비록 한 그루라고는 하지만 팔각정 벚꽃 식수는 그 동안 서울시가 추진해온 남산르네상스에 반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니콘이 지닌 시장장악력을 고려했다 하더라도 오히려 경제적 관계 때문에 무려 12년에 달하는 프로젝트를 훼손한 거나 진배없기 때문이다.

서울시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 그러나 시민들 반응 냉담

서울시 중부 푸른도시사업소 관계자는 본지 서울문화투데이와의 통화에서 “팔각정 주변에 소나무는 없고 대다수가 잡목들이다.남산벚꽃축제도 지역 중요 축제로 자리를 잡고 있는 이상 팔각정 주위에 벚나무가 한 그루쯤 있는 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며 “벚나무가 조금 눈에 띌 수는 있겠지만 남산의 역사적 의미를 전락시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안이한 답변을 했다.

그러나 지난 25일 직접 현장을 취재한 결과 팔각정 주변에는 다수의 소나무가 산재해 있었다.

   
▲ 팔각정 주위에 서 있는 소나무들. 뒤편에 북악산이 서 있다.

시 관계자는 또 일본의 이번 벚나무 식재가 우리의 역사성을  또 다시 훼손하는 행위가 아니냐는 질문에 “니콘은 이미 단순한 일본기업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다”라며 “굳이 일본 기업이라는 점을 부각시켜 남산의 역사적 상징을 훼손했다는 것은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이라고 오히려 반박했다.

니콘 측에서도 “단지 5주년을 기념하는 식수였을 뿐 별다른 의도는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남사모(남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한 회원은 “남산은 일제치하 치욕스런 역사를 견뎌낸 중요한 역사적 상징이다”며 “이번 니콘의 식수식은 글로벌 기업이라는 허울 좋은 명패를 붙여놓았을 뿐, 사실상 일제식민지 시기의 기억을 부활시키는 도발적 행위”라고 반발했다. 심지어 이 회원은 “비록 나무를 심었다고는 하나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조선의 정기를 끊기 위해 산에 쇠못을 박은 행위를 연상시키는 일”이라고까지 말했다.

서울시와 니콘 측에서 비록 의도하지 않은 일이라고 해도 시민이 그렇게 받아들인다면 이는 간과할 문제가 아니다.시와 니콘의 일방적인 결정은 결국 남산르네상스의 중요 목적을 망각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나무 한 그루지만 내재된 위험성 높아… 남산 이미지 훼손 염려

 또한 생태적인 입장과 경관을 고려할 때도 벚나무 식수는 소나무림 확장과 어울리지 않는다. 특히 팔각정 주변은 대다수가 소나무이기 때문에 미적인 조화가 어렵다. 벚나무가 돋보일 수는 있겠지만 주변의 소나무는 말 그대로 배경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역사적인 면에서는 더욱 위험하다. 비록 제주 자생 왕벚나무라 하더라도 벚나무가 지닌 일제 식민지의 기억과 역사적 상징성이 남산 꼭대기에 올라선 셈이다. 특히 남산 일대에 벚나무는 단순한 미관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온통 소나무인 남산 정상에 핀 벚꽃은 관광객들에게 특별한 인상을 줄 게 뻔하다. 봉수대를 복원하고 장충단비를 세운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이번 식수는 서울시와 니콘의 협의 하에서 이루어졌다. 즉, 벚나무의 보호책임이 절반은 한국에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벚나무가 지닌 어떤 상징적 영향력에 대해서도 보호는 물론 승인한다는 의무를 지니게 된다. 평범한 일본 시민이 몰래 심어놓은 것이면 모를까 세계적인 대기업이 서울 시청이라는 공적 기관을 통과한 만큼 벚나무는 이미 니콘 측 의도와 무관하게 한국과 일본 기업의 친목 교류를 상징하는 표상으로 기능한다.

 이 표상이 의미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벚나무로 인해 파생되는 영향이 어떤 성질의 것이든 간데 한국은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국민적 반발로 인해 벚나무는 조기 철거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비난은 니콘이 아닌 한국을 향하게 된다. 니콘은 아무 의도가 없었다고 부인해버리면 그만이지만 한국은 검토 과정에서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국민적 반발이 일어난다고 했을 때 한국이 단지 나무 한 그루일 뿐이라는 이유로 철거를 막는다면 이는 정부에 대한 불신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한국으로서는 어느 쪽이든 위험부담이 크다.


 둘째는 일본 기업의 친화적 성격으로 인한 국내 DSRL의 시장의 축소다. 이번 벚나무 식수가 한국에 니콘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부추길 경우, 당연히 소비자는 니콘으로 몰리게 된다. 가뜩이나 해외 기업에 비해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국내 DSRL 시장이 더욱 외면당하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니콘은 이미 한국 DSRL 시장에 막대한 파급력을 미치고 있다. 캐논과 니콘이 서로 1, 2위를 다투는 데 모든 신경이 집중되어 있을 뿐 국내 기업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니콘이 이번 식수식으로 마케팅적 성공을 노렸다고 해도 그것은 캐논을 의식한 행위이지 결코 국내 기업을 의식한 일은 아니다.

 따라서 점점 과열화될 것이 분명한 캐논과 니콘의 시장장악 대결은 결국에는 국내 DSRL 기업이 성장하는 발판을 상실하게 하는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또한 니콘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가 굳어지면 국내 기업에 대한 비논리적 불신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우려의 목소리 나와… 큰 사건 갑작스럽게 일어난 적 없어

 이런 우려에 대해 일부에서는 남산에 심은 벚나무를 이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아직 본격적인 검토가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식수식이 치러진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런 목소리가 나온다는 것은 설령 가능성뿐인 우려라 해도 그 위험부담이 크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기껏해야 나무 한 그루일 뿐이다. 단순히 한 기업의 기념행사이고 친선 목적을 위한 좋은 의도로 끝날 수도 있다. 앞에서 열거한 다양한 우려에 대해서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이가 대다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거를 돌이켜 보면 언제나 큰 사건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적이 없다. 사소한 위험부담이 쌓여 연결고리를 형성해나가고 마침내 도화선이 될 사건을 만나 폭발한다. 쌓인 것이 적을수록 폭발의 위험이 덜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위험은 미리 차단하는 것만은 좋은 대책이 없다. 특히나 그것이 다양한 방면에 걸쳐 이어져 있다면 사소한 것이라고 해도 불안을 잉태하기 마련이다.

 잘 입지 않는 점퍼에서 문득 돈이 나오면 사람들은 대부분 기뻐한다. 그러나 전혀 반갑지 않은 물건이 나오면 그 물건은 물론 점퍼 자체까지 혐오감을 줄 수 있다. 니콘과 한국 경제 시장의 우호 관계 유지를 위한 행사일 수 있지만 자칫 예측하지 못한 오해로 인해 남산의 이미지와 나아가 국민적 자존심이 훼손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