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틀리, 한국 개신교에 말을 걸다
비스틀리, 한국 개신교에 말을 걸다
  • 권대섭 대기자
  • 승인 2011.03.24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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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 지상주의와 오만에 빠진 왕자 카일은 안하무인이 되었다.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잘 난 줄 알고 뻐긴다.
마녀 켄드라가 이를 매우 못  마땅히 여겨 그에게 마법을 걸어 버린다. 켄드라는 허영심에 가득찬 카일의 버르장머리가 꼴보기 싫었다.
자신의 몸에 있던 문신들을 그에게 이식하듯 흉측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는 힌트를 준다. 바로 사랑고백이다. 흉측한 모습으로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진실한 사랑을 획득해 내면 원래 상태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켄드라가 영 나쁜 마녀는 아닌 모양이다. 저주를 풀 수 있는 답을 알려줬으니 말이다.
 괴물로 변한 카일은 괴로운 나날을 보낸다. 흉측한 괴물이 된 자기를 진실로 사랑해 줄 상대를 찾을 수 있을까. 카일은 자기에게 걸린 마법을 풀어 줄 상대로 린다를 떠올린다.

가난한 약쟁이 딸로 불우하게 살아가는 린다라면 마법을 풀어 줄 것 같았다. 카일은 정성을 다해 린다에게 마음을 전한다. 정해진 시간 내에 그녀의 프로포즈를 받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건 명품가방이 아닌 평범한 커피, 젤리 같은 사소한 것들임을 알아낸다. 린다를 향한 마음이 커지면서 내면의 성숙함과  진정한 아름다움이 뭔지 깨달을 즈음, 카일의 온 몸에 혈관처럼 퍼져있는 문신에 따뜻한 피가 흐르기 시작한다. 린다도 사랑을 고백하고, 카일은 원래 모습을 되찾는다.
허영과 오만, 외모를 쫓던 카일은 이렇게 해서 호된 자기 수양과 겸손의 미덕, 작은 것의 소중함을 깨달은 끝에 진정한 사랑을 얻어 해피앤딩을 맞는다. 거듭남의 결과인 것이다. 영화 '비스틀리'는 10여 년 전 에니메이션 영화 '미녀와 야수'의 내용과 흡사하다. 어릴 적 읽은 동화 '개구리와 공주'를 스크린으로 옮긴 판타지다.

재밌는 건 이 영화를 보면서 요즘 우리 사회 주요현상이자 문제로 떠오른‘개신교 근본주의 교회’(이하 교회)가 자꾸 연상됐다.
“너희들 정말 못났어. 하지만 어쩔 수 없으니 받아들여. 나는 너희랑 달리 잘났으니 나를 뽑도록 해...돈 많고, 인기 많고, 유명 앵커를 아버지로 둔 훈남을 뽑는 게 정답이다.”
 자기 기준에서 아름답지 못하고 추한 모든 것들을 무시하며 혐오하는 카일의 태도에서 한국역사 반만년을 우상숭배‘죄의 역사’로 해석하거나, 일본 대지진이 하나님 안 믿은 벌이라며 떠벌이는 목사들. 개신교 이외의 다른 종교·문화·다른 역사·전통을 사탄세계로 규정하는 목소리들이 떠오른다.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한 법. 오만한 카일 앞엔 켄드라가 있었다. 켄드라는 물론 마녀다. 온 몸이 문신투성이인 그는 카일의 초청을 받았지만 대놓고 무시하는 카일에 분노하고 만다. 자신의 몸에 있는 흉측한 문신을 카일에게로 옮기고 마는 것. 그리고 그 상태로 진실한 사랑을 얻을 때에 문신이 사라지고, 본 모습을 찾을 것임을 일러준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는 어쩌면 이 문신을 뒤집어 쓴 카일일지도 모른다. 수 천 년 전 유대 땅의 역사와 전통에서 발원한 교리를 역시 수 천 년 역사와 문화를 지닌 다른 지역에 일방적으로 적용하려는 태도는 자기만 최고라며 남을 하대시하는 카일의 오만함과 닮았다.‘삐까번쩍’대형교회를 짓고, 수많은 신도들을 업은 채 민족화해와 공존, 사회통합에 기여하기보다 갈등과 위화감, 정서적 거부감을 주는 일부 교회들은 외모지상주의에 빠진 카일과 오버랩 된다.
최근 이슬람채권법(수쿠크 법) 반대나 순복음 목사의 발언, 남북관계 등등에서 보듯 권력을 잡은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의 독선과 오만, 배타성과 공격성은 정점에 달했다.
마치‘비스틀리’의 카일이 인기정점 학생회장 자리에서 누리며 보여주는 언행과 같다고 할까. 하지만 카일이 벌을 받 듯 한국 개신교도 벌 받고 있다.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고, 세상이 교회를 왕따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성경구절을 인용하며 '거룩한 왕따'라고 하겠지만 그건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자기합리화일 뿐이다. 지난 10년간 개신교 인구는 점점 감소하고 있다. 천주교 인구가 74.4% 급증하고, 불교 인구도 늘어가는 것과 반대현상이다. 통계청의 최근 자료다.
 반성할 일이다. 일부라지만 개신교인들이 한국의 가정에서 사회에서 심심찮은 갈등과 분란을 일으키는 사고구조가 어디서 비롯되는지, 목회방식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오죽했으면 특정 종교권력이 다른 종교를 비방하는 것을 법으로 막자는 논의까지 나올까? 거듭난 카일이 린다의 사랑을 얻고 본래 모습을 찾듯, 한국 개신교도 세상 앞에 겸손하며, 세상으로부터 진정한 사랑고백을 받아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길 바란다. 세상의 다른 것들과 따뜻한 피를 서로 교통할 수 있는 교회와 교인들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