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베니스), 그리고 밀라노 (1)
베네치아(베니스), 그리고 밀라노 (1)
  • 이수경 / 도쿄가쿠게이대학교수
  • 승인 2011.03.31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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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에서 토스카나 지방 특유의 멋이 담겨 있는 수 많은 문화 유적과 작품들,우리 입에 맞는 음식들과 세기의 러브 스토리가 흐르는 피렌체, 그렇지만 현대 경제 사회에서 파생된 사회 문제도 이탈리아의 당면 과제임을 확인하며 필자는 해상 무역의 도시라 불리는 베네치아(영어명 Venice)의 산타루치아행 유로스타를 탔다.

▲교회 종탑서 보는 베네치아 전경

피렌체에서 볼로냐와 파도바에 들러서 약2시간 반 만에 베네치아의 산타루치아 역에 도착할 즈음, 사방이 온통 에메랄드 빛 바다 위를 열차가 달리는 듯 했다.
기차 역에 내리자 마자 환전 코너가 있고, 역에서 나오자 앞에 수상 버스(바토레토,배) 정거장이 있었다. 파도와 수 많은 관광객들이 교차하는 정거장을 보노라니 [~내 배는 살 같이 바다를 지난다~ 산~타~루~치아~]라는 노래가 뇌리를 스치는 듯 하였다. 출렁거리는 파도 속에 각양각색의 수상 버스가 다니고, 바닷물로 젖은 거리에서 장화를 신고 어린애 처럼 밝게 웃는 사람들의 표정이 싱그러운 오후였다. 역에는 베네치아 유리 공예품들이 아기자기하고 이쁘게 장식되어 있었고, 각 점포에는 다채롭게 뽐내는 베네치아 가면들이 쇼윈도를 장식하고 있었다.

[아--- 이게 베네치아의 분위기구나]라는 느낌과 더불어 그야말로 별세계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날 피렌체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났던 런던의 커플이 베네치아를 극찬했던 이유도 알 것 같았다. 그런 필자의 머리 속에는 온통 [베니스의 상인][마르코 폴로의 동방 견문록The Travels of Marco Polo]으로 가득 찼다. 그렇다. 저렇게 넘실대는 파도를 타고 이 베네치아의 상인들은 세계 각국에 무역 항로를 뚫은 것이고, 쿠빌라이 칸의 문화와 중국 등 동아시아 세계를 유럽에 소개한 마르코 폴로도 여기 출신이었다. 어디선가 베네치아 상인들이 힘있게 외쳐대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 착각을 하면서 필자는 미로처럼 좁디 좁은 골목길과 육지를 잇는 자그마한 다리와 몇 개의 광장을 건너서 상 마르코 광장 주변의 예약한 호텔로 향했다.

▲마르코 폴로가 살았다는 곳

배 멀미에 약한 사람은 처음부터 수상 버스를 타는 것보다 이렇게 걸어서 시내를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 걷는게 좀 힘들어도 베네치아 시내의 오밀조밀한 좁은 골목에 들어선 각양 각색의 기념품 가게를 보면서 베네치아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다. 원색의 다양한 베네치아 가면과 유리 공예품 등을 보다가 지치면 현지 사람에게 가볍게 길을 묻고, 그러면 웃음으로 친절히 안내해 주는 그들을 느끼며 망중한의 여유가 즐겁기조차 하였다. 때로는 몇 몇 사람이 모여서 길을 가르쳐 주느라 떠들썩하였고, 그런 사람들의 친절한 정이 싫지 않은 베네치아였다.

약 400개의 다리가 118개의 섬을 잇고 있는 곳이기에 짐을 끌고 오르락 내리락 하는 좁은 수로 위의 계단을 걸으며 고생은 좀 했지만 수상 버스를 탔으면 못 봤을 베네치아 거리의 특징을 몸으로 느끼며 과거 이탈리아 최강의 해상국, 운하 도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기에 보람은 있었다.
눈에 띄는 가죽 제품 전문점의 직원들이 대부분이 동아시아계 직원들이었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중국인일까? 이탈리아로 이민 온 아시아계 사람들이 베네치아에 거주하는 것 같기도 했고, 최근의 중국 대만 한국 등의 아시아 손님들이 많아서 일부러 아시아계 직원을 둔 것 같기도 했다. 필자가 본 베네치아에는 어쨌든 중국인 한국인들 단체 손님들이 많았다.

초행길에 현지인 몇 사람에게 물어서 산 마르코 광장Piazza San Marco에 도착하니 지금까지 봐 왔던 이탈리아의 건축 양식과는 다른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장식한 거대한 산 마르코 성당의 수 많은 건축물과 장식물들, 다국적 관광객으로 메워진 넓은 광장과 높은 종탑, 그 앞으로 펼쳐진 넘실대는 파도와 춤추는 수많은 곤돌라, 바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성당들의 풍경이 바다 향기 만큼이나 싱그럽게 눈에 들어 온다. 필자는 순간 [우와----!!]하는 감탄사와 더불어 그 인파 속의 북적거리는 분위기와 그림같이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버렸다. 베네치아…일찍이 동양 세계와 독점 무역을 하며 부와 권력을 누려왔던 이 역사적인 해상도시에서 지긋이 눈을 감자니 당시의 시끌벅적한 무역 상인들과 사공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아드리아해의 조수를 막기 위해 만든 낮은 제방 위에 세워져서 자연 피해도 적지 않았다는 베네치아는 중세의 권력과 예술 문화를 꽃 피우며 부를 누리다가 한 때는 나폴레옹에게 지배를 받기도 하지만, 1866년에 이탈리아 제국과 연합을 하여 사상 최초의 통일 이탈리아를 탄생시켰다. 그렇게 이탈리아의 타 지역과 위상을 달리 해 온 베네치아는 과거와 변함 없이 수 많은 세계 각지의 관광객을 매료시키며 독자적인 분위기의 관광 자원으로 연간 1200만 명의 발걸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곳이다. 베네치아 전체의 수도원, 박물관, 궁전 등을 세세히 돌아보려면 보름 이상은 필요할 듯 하기에 필자의 체제기간인 4일간을 통하여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돌아보기로 마음 먹었다.

우선 호텔 체크인을 하였는데, 일반 호텔이 아니라 가정 집 같은 두꺼운 문을 열고 들어가면 깔끔한 로비와 근사한 분위기의 호텔 입구가 나온다. 방은 성당 뒷 뜰이 보이는 3층이었고, 실내는 깨끗하게 배려한 넓은 공간이었다. 호텔 직원들 대부분이 젊은 여성들이었고, 방의 장식이나 입욕제 등이 여성 고객들을 배려한 것이었다. 약간 추웠던 날씨에 24시간 래디에이터를 틀어줘서, 그 날의 세탁물을 간단히 말릴 수 있었기에 여행자에겐 쾌적한 환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베네치아 전경

체크 인 후, 아름다운 바다 경치를 보면서 식사를 하기 위해 주변의 레스토랑에 갔더니 노래를 흥얼거리며 주문을 받으러 온 주인이 뭔가를 추천한다. 그래서 그것과 더불어 티라미수와 샐러드를 시켰더니, 홍합이 곁들여진 오징어 먹물 스파게티가 나온다. 이 먹물 스파게티나 티라미수는 한 때 일본에서 대단한 인기를 얻었던 것이었으나 필자는 이탈리아에서 처음 맛을 보았다. 시험 삼아 먹었더니 예상 밖으로 상당히 맛있었고, 필자가 가졌던 편견은 완전히 사라졌다.

피로를 이기려고 케임브리지에서 배워 온 화이트 와인을 한 잔 시켜서 곁들여 먹으니 정말 그동안 버겁게 살아 왔던 지난 날의 피로가 다 풀리는 듯 하였다. 유럽으로 오기 직전까지 한 학기 수업을 한꺼번에 하고 오는 바람에 1주일에 90분짜리 수업 17개와 회의 등을 소화시켜야 했고, 밥 먹을 시간 잠 잘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힘든 시간들이었다. 그런 기억들을 되뇌이며 눈을 들어보니 출렁이는 파도 위에는 곤돌라에 탄 기타를 치는 아저씨의 노래를 즐기는 한 쌍의 남녀가 사랑스럽게 보인다.

평소에는 관심조차 가질 수 없었던 바쁜 생활이었지만, 베네치아 특유의 이국적 풍경을 즐기다 보니 베네치아 지형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근처의 관광 안내소에 가서 운하와 베네치아 전체를 구경할 수 있는 모터 보트가 있기에 신청했다. 다음 날 오전 출발을 예약하고선 그 근처를 걸으며 베네치아의 자수로 된 장식물이나 스카프 등을 구경하였다. 베네치아의 특산이라는 무라노 유리병과 장식품, 너무나 매혹적인 가면 등을 보다 보니 시간이 쉽게도 흐르고, 따분할 틈이 없었다. 경치도 환경도 좋다 보니 발 걸음 조차 가벼워진다.

어느 카페 앞에 이르니 피아노 음악이 흐르고, 그 옆에는 아름다운 광장 주변 광경의 그림을 누군가가 그리고 있다. 필자가 선호하는 담색 파스텔 수채화 같은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 그 화가에게 색상을 조금 더 연하게 넣으면 괜찮겠다고 하니 좋은 어드바이스를 고맙다고 한다. 필자도 학생 때 몇 번 미술상을 받기도 했고, 제법 긴 시간 유화나 일본화(천연 바위를 부셔서 만든 물감으로 그리는 기법)에 빠져서 그림 전시회도 가졌던 적이 있지만, 결국 대학원 때 공부가 바빠져서 그림을 접었다. 그렇지만 미술관을 다니며 그림을 즐기는 취미는 아직도 남아 있기에 이번 유럽행을 통해 정말 많은 미술관, 박물관, 전시회를 다녔다. 못 다한 미련 탓인지 그림을 보다 보면 그들이 그림을 그리는 환경, 상황, 분위기까지 상상하기도 하며, 조금은 여유가 생기면 그림을 다시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맘이 회동하여 그 화가에게 몇 마디 묻자 자신은 영국의 중부 지방에 살면서 베네치아 등을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려서 팔아 생활한다고 한다. 원색의 조화가 바다색과 어우러지는 베네치아를 잔잔하고 편하게 그린 그 그림의 완성품이라면 참 보기 좋을거란 생각을 했다. 물론 유럽인의 눈에는 명확한 색상을 선호하는 문화다 보니 잔잔한 담색 파스텔 수채화의 분위기가 어떻게 보일지는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필자가 지난 번 헤이그에서 봤던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그림이 겨우 1달러에 판매되었다고 했나? 그림은 보는 자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진다. 필자의 눈에는 세기의 미녀라 불리는 [모나리자]도, 혹은 우피치에서 본 [비너스의 탄생]의 여인들도 정말 감동스런 美라는 생각까지 들지는 않는다. 지금껏 수 많은 작품을 봐 왔어도 필자가 가슴 가득히, 소름이 돋도록 아름답다고 감탄과 감흥을 받은 명화가 별로 없는걸 보면 의외로 미술 작품에 대해서는 둔한 감각이거나 리얼리티에 아주 민감한 성격인지 모르겠다.

▲베네치아 역 앞 수상버스 정거장

최근에 가슴에 남아 있는 작품이라면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서 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암굴 속의 성모Virgin of the rocks]화의 왼쪽에 그려진 천사의 얼굴이야 말로 참 정교히 그려진 이지적인 美를 갖춘 아름다운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림도 음악도 모든 보는 것이 그 사람의 취향에 따라서 가치도 달라진다고 생각이 들고, 그렇게 생각하니 천차만별의 다양한 인간들이 모여 사는 지구촌 사회의 66억이라는, 모두가 다른 DNA를 가진 사람들이 보편적 가치관과 사회적 제도 하에서 나름대로 공공성을 가진 법에 따르며 살아가는 개성적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나와 같지 않지만 삶을 영위하기 위해 뜻을 맞추고 상호 이해를 하며 살아가도록 시험을 당하는 운명적인 무대를 하루 하루 엮어 가는 우리들의 인생을 어떻게 하면 모두 아파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약간은 교과서적이면서도 추상적인 생각을 하며 베네치아의 밤바다를 거닐다 산 마르코 광장 옆의 두칼레 궁전과 감옥을 연결하는 탄식의 다리를 몇 번이나 쳐다 봤다. 이 아름다운 정경을 수인들은 저 좁은 다리 구멍 속으로 밖을 바라보는 심경은 어땠을까? 당시의 가치관으로 단죄되어 억울히(frame up) 처벌 받았던 사람은 얼마나 있었을까? 단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은 삶을 그렇게 천국과 지옥 같은 화려한 두칼레 궁전과 열악한 감옥을 잇는 조그마한 벽돌 다리를 건너 다니며 얼마나 한탄스러워 했을까?


이미 지나버린 과거지만 그 과거 속에 힘들게 삶을 살다 간 많은 사람들을 떠올리며 좁은 운하 위의 탄식의 다리를 보고 있자니 중국인 관광객 단체들이 몰려 와서는 사진을 찍느라고 웅성거린다. 로마에서도 중국인 관광객을 보기는 했지만 이 베네치아에는 중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다. 간혹 한국어나 일본어로 대화하는 사람들도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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