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통제영 복원 제안' 공모
통영, '통제영 복원 제안' 공모
  • 홍경찬 기자
  • 승인 2011.04.0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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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30일까지 누구나 참여 가능

[서울문화투데이 경남본부=홍경찬 기자]통영시는 오는 4월 1일부터 30일까지 시민과 소속 공무원을 대상으로 '통제영 복원에 따른 효율적인 관리방안 제안 공모전'을 개최한다.

 통제영 역사의 재조명과 함께 세계적인 역사ㆍ관광도시로 도약하고자 추진한 통제영 복원사업이 2012년 완공을 목표로 가시화되어 감에 따라 그 효율적인 관리방안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 통제영 복원이 2012년 완료를 앞두고 있어 복원 제안에 대한 시민 공모가 진행된다. 사진은 통제영이 복원되고 있는 세병관 인근.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국민신문고,통영시 홈페이지에 제안서를 등록 신청하면 된다.

 공모분야는 통제영 복원에 따른 효율적인 관리방안으로 ①관광콘텐츠 개발방안, ②문화예술행사 및 지역축제 접목방안, ③주변 관광지와 연계한 관광인프라 구축방안, ④지역상권 등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 ⑤역사교육, 체험프로그램 개발방안, ⑥12공방의 활용방안 등이다.

 최우수 50만 원 등 총190만원의 시상금을 지급하며 결과 발표는 5월 30일(월) 통영시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수상자의 경우 개별 통지한다.

 시 관계자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제안될 수 있도록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공모전과 관련한 기타 자세한 내용은 통영시청 홈페이지를 참고하거나 통영시 기획예산담당관실(055-650-3110)로 문의하면 알 수 있다.

▲통제영이란 충청ㆍ전라ㆍ경상도의 삼도수군을 통할하는 통제사가 있는 본진을 말하는 것으로, 삼도수군통제영을 줄여서 표현한 것이다. 선조 26년(1593)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한산진영(현 한산도)이 최초의 통제영이다.

 통제영은 선조26년(1593) 이순신이 초대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어 한산도에 처음으로 설치된 후 거제현으로 옮겨졌다가 선조37년(1604)에 지금의 통영시로 옮겨졌다. 이후 통제영은 고종32년(1895)에 폐지될 때까지 조선 수군의 최고 통치 관청으로서 기능했다.

 통영시 관내에 통제영을 짓기 시작한 것은 선조 36년(1603) 때의 일이다. 제6대 이경준 통제사가 이곳에 터를 닦고 2년 뒤인 선조 38년(1605)에 세병관(보물 제293호), 백화당, 정해정 등을 세웠다.

 이곳은 고종 32년(1895) 각 도의 병영과 수영이 없어질 때까지 300여년간 그대로 유지됐다. 이렇게 통영에 설치된 통제영은 조선 수군의 군사적 요충지로서 번성하면서 역사에 부각됐다.

 ▲통제영의 십이공방

  통제영에는 제반 군기와 진상품을 생산했던 12공방이 있었다(12공방이 아니라 공방이 많다. 일명 13공방이라고도 한다).

 이곳은 백화당 영역 서쪽에 자리하며, 군수품 생산과 민생에 필요한 물품은 물론 조정에의 진공품과 때로는 중국 가는 사신의 헌상품까지도 조달하는 조직적인 분업의 군영 공방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통제영 공방은 임진난 초기 변방에서 각종 군수품을 자체 조달목적으로 이순신 장군이 한산진에서 시작하였으나(1593년 8월) 임진난 이후 통제영이 창성하자 제반 군기물과 진공품을 조성하는 통제영 공방도 크게 번창하여 관급장인을 늘려 다양한 생활용품가지 생산했다.

 공방운영이 가장 활발했던 18세기 후기부터는 각 제품의 주요 생산공방이 대규모로 밀집, 상호분업 및 협업체계를 이루는 십이공방체제를 갖추게 됐다. 이렇게 되자 한양을 제외한 지방의 장인 가운데 통제영의 장인수가 가장 많았고, 품질 또한 최상급이 통영의 공예품을 단연 으뜸으로 쳤다. 

 12공방은 고종 32년(1895) 통제영이 폐영될 때까지 지속됐으며, 그 맥은 민속공예의 표본적 존재로 오늘에 이어져 통영의 전통공예로 계승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