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엄마만 믿어?
[에세이] 엄마만 믿어?
  • 김은희 / 수필가
  • 승인 2011.04.2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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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애와 애니메이션 <<라푼젤>>을 봤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온 꼬마아이들 속에서 중학생인 딸과 <<라푼젤>을 보는 맛이 어쩐지 '잃어버린 동심의 세계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 같아 색달랐다.

우리 모녀의 애니메이션 사랑은 러시아에 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너덧 살이 된 딸을 데리고 애니메이션이 개봉되는 영화관을 찾아 무릎에 앉히고 러시아어로 더빙된 영화를 한국말로 속삭여주며 같이 웃고 울었다.
시간대가 안 맞아 한국어로 더빙된 <<라푼젤>>을 봐서 영어 노래를 감상할 수는 없었고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했지만, 물이 튀고 오색의 꽃들이 나풀거리고 등불이 내게로 날아드는 3D 영화가 주는 환상적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 보았던 시간이었다.

<<라푼젤>>은 그림 형제의 <<동화집>>에 수록된 작품들 중 하나다. 영화는 원작 동화를 '디즈니'식으로 각색했다. 상처를 치유하고 젊음을 유지해주는 마법의 금발을 가진 라푼젤 공주를 유괴한 마녀가 자신을 엄마라고 속이며 라푼젤을 자신의 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첨탑방에 가두어놓고 세상과 격리시켜 키우는 내용이다.

18살이 된 라푼젤 공주는 왕궁의 보물을 훔쳐 달아나다 우연히 첨탑방을 발견한 도둑과 첨탑방을 탈출하여 사랑도 이루고 원래의 신분과 가족도 찾게 된다. 엄마가 된 내가 딸애와 함께 <<라푼젤>>을 보니 그 속의‘엄마(계모)와 딸’의 관계가 내게 쑥 다가온다. 마녀 계모는‘엄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라푼젤에게 계속“엄마만 믿어. 아무도 믿으면 안 돼. 너는 너무 약해, 세상은 너무 무섭고 너는 너무 순진해. 엄마가 하란대로만 해야 해. 네가 세상에 나가면 너무 위험해. 모두가 다 너를 해치려고 할거야. 세상 모두가 너를 이용하려고만 해”라고 라푼젤을 세뇌 시키며 첨탑방에 가두어 놓고 세상과 단절시키려 한다.

하지만 그 말들은 엄마인 내가 세상 앞에 놓인 딸에게 느끼는 불안감을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었다. 엄청난 세상 앞에 내 딸은 항상 너무 약한 것 같고 너무 순진한 것 같고 모두가 딸애를 이용할 것 같고 나약한 딸이 넘어질 것 같아 그래도 세상을 더 안다(?)고 더 살아봤다고‘엄마를 믿으라’고,‘엄마가 옳고 세상이 그르다’고 딸애에게 은연중에 심어주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반문하게 되며 씁쓸해지기까지 했다. 엄마보다는 세상을 믿게 해주어야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인데, 세상에 대한 불신을 딸애의 마음속에 심어주며 나만 믿으라고 가르쳤던 것은 아닌지.

꿈처럼 둥둥 등불들이 나한테로 온다. 난 그 등불이 3D의 효과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 우리 앞에 앉았던 아이들은 그 등불들을 잡으려고 손을 뻗쳐 휘젓는다. 그 모습에서 아직은 꿈을 찾아 손을 내밀고 있는 아이들의 동심이 읽혀졌다. 그 꿈을 펼칠 곳도 결국은 영화 속 계모가 그렇게 믿지 못할 곳이라고 강조하던 이 세상인 것을.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그런 믿지 못할 세상 속에서 내 딸도, 아이들도 꿈을 잡으려고 뻗었던 그 손들을 어쭙잖게 거두어들이지 않길, 세상을 믿어보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