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궁중 우물’ 햇빛 볼 수 있을까...
잊혀진 ‘궁중 우물’ 햇빛 볼 수 있을까...
  • 권대섭 기자
  • 승인 2011.04.21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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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 속 감춰진 또 하나의‘궁중 문화’...가치 재해석 움직임

지난 달 27일 오전, 서울 경복궁 강녕전 옆 어정(御井)에서 눈길을 끈 행사가 있었다. 문화재청과 문화유산국민신탁, 웅진코웨이가 함께 모여‘궁궐 우물 살리기 사업’을 진행키로 한 것이었다.

▲경복궁 우물

이날 문화재청과 문화유산국민신탁, 웅진코웨이는 옛 궁궐 우물이 궁중 생활문화를 엿볼 수 있는‘살아있는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그동안 무관심 속에 방치됐던 우물을 새롭게 발견, 체계적으로 가꿔 보전해 나가자는 데 합의했다.

이날 합의는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지난해 2월 웅진코웨이에‘궁궐 내 우물 복원 및 관리’를 제안하고, 한 달 뒤인 3월‘문화재청-문화유산국민신탁-웅진코웨이’3자간‘문화재 지킴이 협약’을 체결한 데서 비롯됐다.
이후 우물 및 연못 현황 조사와 정밀 수질 분석이 이뤄졌고 수원(水原)의 과학적 특성에 관한 연구가 5월부터 8월까지 4개월간 조사됐다.

묻혀진 궁중 우물에 눈 돌리다
서울 도심에는 현재 경복궁 7개소, 창덕궁 10개소, 창경궁 10개소, 덕수궁 3개소, 종묘2개소, 총 32개의 우물이 현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웅진코웨이 환경기술연구소는 지난 해 1월부터 9월까지 궁궐우물의 현황과 수질을 조사한 바 있다.

웅진코웨이는 특히 갈수기(3월30일~4월7일)에 24개의 시료를 채취하고, 풍수기(8월30일~31일)에 27개의 시료를 채취해 53개 수질 항목을 분석했다.연세대학교 우남칠 교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궁묘 수원(水原)의 특성으로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의 수원은 북한산과 인왕산 등에서 발현해 수리경사가 낮은 남쪽 방향으로 유동하는 양상을 보이며, 덕수궁에서는 동쪽 방향의 흐름을 보인다.

또 종묘의 어정과 제정은 서울의 도시화와 지하철 건설 등의 영향으로 말라버린 것으로 판단됐다.
조사된 궁궐 내 수원들의 전반적인 수질 특성은 총 용존 이온의 함량이 덕수궁>경복궁>창경궁>창덕궁의 순으로 나타났다. 총 4회의 분석에서 수질분포가 동일하게 유지되는 것으로 보아 지하수의 이동경로에서 발생한 지구화학적 물-암석 반응의 결과로 판단된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현재 경복궁, 창경궁, 창덕궁, 덕수궁, 종묘에는 총 32개의 우물이 존재하며 계절에 따라 심한 수위변동을 나타내므로 수위 유지를 위해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하수면이 지면에서 가까워 여름철 강우에 오염물질이 쉽게 유입되는 특성 등으로 복원을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됐다.

조선왕조실록 속 궁궐 우물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주방의 수부가 어수를 드릴 때는 반드시 어정의 물을 길어야 하는데, 다른 우물물을 길어 드린 수부를 묵과한 관리를 의금부에 가두다 (태종 15년. 1414.1.25) 성균관의 문묘제례에 사용되는 우물을 따로 성정이라 불렀는데, 성정을 옮겨 파는 일에 왕과 유생이 논쟁을 하다 (연산 9년. 1503.11.9~11 / 1504.1.24) 병란이 일어나자 종묘의 수복들이 제기를 우물 속에 숨겨두다(인조 15년. 1637.3.7) 정조의 비인 수빈 박씨가 왕자를 낳자 종묘의 우물 속에서 오색 무지개가 일어나다 (정조 14년 1790.6.18/6.24) 등의 우물 관련 에피소드 들이 있다.

우물은 이렇듯 임금을 섬기는 일에나 국가변란, 경사로운 일 등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주요 동정을 이루는 매개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은 물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조선왕조 실록의 기록은 임금이나 대신이나 백성이나 궁궐이나 민가를 막론하고 우물이 생활의 중심에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기도 하다. 

궁궐 우물을 사용한 사람들
우물에서 물을 긷는 역할을 담당한 사람들은 노비 신분의 하급 인력들이었다. 남성은 수공, 여성은 수모라고 불렀다. 이들은 궁궐 내 대전과 내전 편전과 관청, 기거공간 등 곳곳에 배치되어 물을 길어 바치는 역할을 했다. 수라간과 주방, 다방 등에서는 이들이 길어온 물을 사용해 음식을 조리하거나 차와, 술을 담았고, 세답방에서는 빨래, 무수리가 일하는 수사간에서는 물과 관련된 각종 업무와 허드렛일을 담당했다.

이처럼 궁궐의 우물은 궁중생활문화를 잘 드러낼 수 있는 요소였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와 근대 도시화 과정을 거치며 궁궐의 많은 우물이 매몰됐다. 그나마 지금까지 남아있는 우물도 대다수 본래 모습과 기능을 상실했다. 또한 궁궐 우물과 관련된 역사적 기록이나 사료가 부족해 향후 역사 연구와 기능 복원 등에 많은 관심과 노력이 요구되고 있기도 하다.

▲종묘 제정 우물

따라서 문화재청과 문화유산국민신탁, 웅진코웨이 측이 기획중인‘5대 궁묘 우물 복원 사업’은 늦었지만 우리 문화유산의 중요한 부분에 대한 재인식과 재발견의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궁중 생활사를 파악하는 대표 유적인 궁궐 우물의 복원을 통해, 전통 우물의 가치와 의미를 공유하고, 내 외국인을 대상으로‘고품격 궁중문화’체험 기회를 제공,‘국가 브랜드’를 제고하는 사업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역사 가치 충분한 <민간우물>도 복원 시급
다만 우리 전통 생활에서도 밀접한 관계에 있던 민간우물에 대한 조사와 복원, 연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은 아쉬움을 주고 있다. 현재 실행중인 5대 궁묘에 대한 복원이 이뤄지고 뒤이어 민간우물에 대한 복원과 재조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예컨대, (사)종로북촌가꾸기회 이형술 회장은 우리나라 천주교 초기 역사와 관련된 서울 종로구 북촌의 석정골 보름우물을 복원해 천주교 성지순례지로 삼을 것을 제의한다. 이 우물은 15일 동안은 맑고, 15일 동안은 흐려지곤 했기 때문에 보름우물이라 불렸는데, 물 맛이 좋기로 유명했다.

▲북촘 보름 우물

또 이 물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전해져 왕자생산을 기원한 궁녀들이 몰래 이 물을 떠다 마시기도 했다. 1794년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인 신부였던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선교를 위해 들어 왔을 때는 이 우물 부근의 신도 집에 숨어 지냈다. 따라서 영세성수가 필요할 땐 자연히 이 우물물을 사용했다. 1845년 한국인 최초의 신부가 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도 신부수업 8개월간 이 물을 성수로 사용했다고 한다. 천주교 역사적 성지임에 틀림없는 우물이다. 

이형술 회장은 이에“유네스코에서 대상을 받은 서울 북촌의 보름우물이 천주교 성지로 복원되면, 역사성을 지닌 관광인프라가 북촌에 더 늘어나는 것”이라며 석정골 보름우물 복원을 촉구했다. 이같이 궁중 우물이든 민간 우물이든 우물에 깃든 이야기는 찾아보면 무궁무진하다. 더군다나 일제강점기 궁궐 훼철과 함께 기능을 상실한 궁궐 우물의‘역사적 복원’과 점검 관리, 수질 개선을 통한‘실용적 복원’에 문화재청과 문화유산국민신탁, 웅진코웨이가 함께 나선 것은 대단히 뜻 깊어 보인다. 문화유산 관리체계 구축에 민관이 함께 협력해 전통문화를 지키며, 사회에도 공헌하는 모델을 정립할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