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전쟁을 로비하다
[데스크칼럼]전쟁을 로비하다
  • 권대섭 기자
  • 승인 2011.05.06 10: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북전단살포는 '올가미 퍼포먼스'

권대섭 본지 대기자
가상의 의뢰인이 등장해 가상의 로비스트에게 해괴망측한 로비를 한다. 정권연장의 비책을 알려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로비스트 일당은 의뢰인을 깊은 산 속 무덤가로 데려간다. 그리고 굿판을 벌이는데, 무덤 속에서 ‘한로비’라는 로비스트가 등장한다. 그는 입으로 긴 밧줄을 물어 끌어내는 ‘올가미 퍼포먼스’를 통해 탱크를 모는 괴 인사를 무대에 불러들인다.

이 장면에서 관객들이 웃음을 터트린다. 그런데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인즉 자못 심각하다. 남북한에 공포분위기를 조성해 남측은 정권재창출을, 북측은 대를 이은 정권연장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이달 15일까지 이어질 <2011 대학로 연극제> 개막을 알린 첫 연극 ‘전쟁을 로비하라’(극단 :필통, 4. 20일~21일 공연)의 내용이다. 연극은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로 심화된 남북간 대결구도에서 혹시 그런 대결구도를 통해 이익을 취하려는 집단은 없는가라는 문제제기를 한다. 남한과 북한에게 과연 작금의 대결과 응징구도만이 해답인가? 다른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여기에 불법 브로커 ‘한로비’라는 주인공을 등장시켜 해괴망측한 로비사건을 보여준다.

연극에서 ‘한로비’는 우리나라에 만연한 불법브로커들의 상징 인물이다. 극 중에선 ‘한로비’가 함바집 로비도 관여한 걸로 설정, 그런 인물이 이제 남북간 대결구도까지 이용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불법 로비의 달인인 그는 시베리아에서 북측 관계자를 만나 내년(2012) 대선을 겨냥한 해괴한 로비를 또 시도하려 한다.

 연극 ‘전쟁을 로비하라’는 이러한 내용을 통해, 되살아나면 안 될 망령과도 같은 ‘조작과 음모’를 우려하며 비판의식을 드러냈다. 세계는 이미 냉전의 시대를 지나 인류애에 입각한 보편적 평화와 공존을 지향해야 할 시대가 되었다.

우리나라 또한 종교 사상 이념을 넘어선 남북 평화공존과 공영, 화해 협력을 통한 통일대국을 이뤄야 할 역사적 사명을 띠고 있다. 남북은 공히 이런 분위기 조성을 위해 노력해야 할 당위성을 지녔다. 연극 ‘전쟁을 로비하라’는 이런 당위성과 반대되는 길을 치달려 온 최근 한반도 정세에 던지는 화두다.

 작금 벌어지고 있는 남한 보수단체의 대북한 전단 날리기는 연극 ‘전쟁을 로비하라’에서 올가미 퍼포먼스로 탱크 모는 괴 인사를 무대에 불러들인 로비스트 같다.

 뉴욕타임스(NYT)가 지난 4월 29일 오전 파주 임진각에서 주민들의 불안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북한 전단 날리기를 주도한 한국인 2명을 집중 조명한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대부분 정치성향이 강하거나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이라 한다. 편협한 시각을 가진 기독교 광신도라는 말도 들린다.

이명박 정부 들어 보수우파의 입김이 세지면서 활동을 강화해 온 이들은 지금까지 총 2억 5천만 장 가량의 전단지를 날린 것으로 전한다. 이들의 활동에 대해 북한은 전단지 살포지역을 조준 사격하겠다며 위협하는 상황이다. 만약 북측이 진짜 조준사격을 감행한다면...?

천안함 ? 연평도 사건이후 이명박 대통령은 북이 도발하면 ‘백배로 막대한 응징’을 해야 한다고 수차례 말한 바 있다. 전단지를 살포하고, 약 오른 북이 도발하고, 남측의 백배 응징이 뒤따르고, 다시 북이 대응하고...그러면 그것은 무엇인가? 전쟁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화해협력 평화공존 통일대국 향한 ‘평화선언’ 나와야...
 이명박 대통령이 5월 10일쯤 독일 베를린을 방문할 때,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평화선언’을 발표할 것을 검토 중이라 한다. 이 대통령은 그간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고, 대화를 모색하는 방안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혹 이 대통령도 그간 ‘전쟁을 로비하는’ 듯한 한반도 정세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한 것일까? 따지고 보면 이 대통령 이후 한반도의 연극무대에선 탱크 모는 괴 인사를 무대로 끌어내는 듯한 ‘올가미 퍼포먼스’가 강화돼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대통령 정부의 대북강경 압박 정책은 남북관계를 극도로 긴장시켰다. 급기야 천안함 ? 연평도 사건이 유발됐고, 전쟁직전까지 갔다. 이같은 상황은 이 대통령이 공언한 ‘중도실용 경제대통령’의 기치도 헛되게 했다.

중도실용은 말뿐이었다. 오히려 강화된 우파 정책이 좌파 척결과 흡수통일이라도 할 듯 북한을 압박하다 경제여건만 악화시켰다. 개성공단 투자업체들의 손실, 금강산 관광 폐쇄로 인한 강원도 동해권 지역경제악화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어떤 기업인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기업활동을 오히려 제한하고 있다고 고백하기도 한다.어느모로 보나 남쪽 정부의 대북강경책은 득보다 실이 크다. 그것은 국민의 삶에 미친 영향에서 뿐만 아니라, 정권을 담당한 정당이나 대통령 자신을 위해서도 손해가 컸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치러진 선거가 그것을 분명히 말해준다. 지난 해 치른 6. 2 지방선거는 천안함 직후였지만 유권자들은 예전과 달리 야당에 몰표를 주는 투표경향을 보였다. 불과 며칠 전 치른 4. 27 재보궐선거도 마찬가지다. 그새 연평도 사건이 또 터졌고, 천안함 사태 1주기를 막 지났지만 유권자들은 여당보다 야당을 택했다.

유권자들은 연극 ‘전쟁을 로비하라’가 설정한 공포에 휩쓸리기보다, 오히려 공포로 인해 득을 보려는 세력에 철퇴를 내리기 시작했다. 즉 ‘전쟁로비’로 인한 긴장조성이나 사회불안 보다 평화와 안정을 찾아 투표했다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동안 그만큼 ‘전쟁을 로비하라’에서의 올가미 퍼포먼스 같은 정세에 신물이 났다는 것이다.

이는 임기를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이 대통령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또 정권재창출을 꿈꿀 집권 여당에게도 깨달음을 촉구하는 경고 메시지이다. 미래의 한반도에선 남북관계가 불안하면 그 어떤 대통령도, 그 어떤 집권 여당도 실패할 수 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독일 방문에서 있을 이 대통령의 평화선언이 그런 깨달음에 기초한 것이기를 기대한다. 말로만이 아닌, 한반도의 남과 북 양측 국민의 실질적 화해와 협력, 실익을 이끌 선언이기를 기대한다. 평화공존을 통한 미래 통일대국에의 꿈과 역사의식을 담길 기대한다. 더불어 휴전선 근방 이곳저곳을 옮겨가며 북한을 자극하는 전단지 살포 행위도 그만두길 바란다.

북한 주민의 인권이나 김정일 정권의 문제점이야 지적됨이 마땅하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아니다. 그것은 불필요한 짓이며, 과도한 짓이다. 효과도 없는 짓이다. 무엇보다 그것은 나라와 민족, 우리 국민의 삶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짓이 아니다. 그저 전쟁을 로비하는 ‘올가미 퍼포먼스’, 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