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 중 · 일 ‘동양 3국 가족 이야기’
한 · 중 · 일 ‘동양 3국 가족 이야기’
  • 이은영 기자
  • 승인 2011.05.16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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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서 ‘가족 심포지엄’...각국 전문가 발표회

자유주의적 가족주의는 경제적 약자를 무자비하게 배제
역동적 정책변화 없인 동아시아의 사회적 재생산 난망

한국 · 중국 ·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3국 가족의 현재와 미래를 보는 ‘가족 심포지엄’이 13일 오후 2시부터 이화여대 삼성교육문화관 1층 메인홀에서 열렸다. 가족의 가치와 관련한 한국, 중국, 일본의 제도, 법, 문화 등을 비교분석해 본 이날 심포지엄에선 일본 교토대 오치아이 교수가 ‘가족주의의 역설: 동아시아는 왜 지속불가능 한가?’라는 제목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한국에서 옥선화 서울대교수가 ‘한국가족제도와 가족생활 문화의 변화’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또 중국에선 남경사범대학 금릉부녀발전센터 진이홍 교수가 ‘유랑하는 부권-이주농민가정의 변천’이란 제목의 논문을 통해 최근 급속한 경제성장 이면에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한 중국 가정의 변화 양상을 짚었다.

 심포지엄을 주관한 (재)한중일 비교문화연구소 이어령 이사장(前 문화부 장관)은  이와 관련 “원래 동양 3국의 여성문화가 유럽이나 미국, 이슬람 문화권보다 훨씬 앞서 있었으나, 근대에 이르러 서구문명의 뒷통수를 따라가다 오히려 고령화, 저출산, 가족해체라는 심각한 문제에 부딪힌 면이 있다”면서 “삼국의 전문학자들이 펼치는 놀랍고 슬기로운 담론에 귀를 기울이자”고 말했다. 백희영 여성가족부 장관도 심포지엄에 앞선 인사말을 통해 “한 · 중 · 일 삼국의 전문가들이 모여 가족적 가치에 대한 각국 전통과 현대적 시각을 교류하고, 가족가치의 국제적 확산을 모색하는 의미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기쁘다”면서 행사를 축하했다.오치아이 교수, 옥선화 교수, 진이홍 교수의 논문 핵심을 요약하며, 오늘날 동양 삼국이 겪는 가족 문제, 여성 문제, 사회 문제 등을 반추해 보는 기회로 삼았다.

 

동양3국(한국, 중국, 일본)이 겪는 현대 가족문제와 사회변화를 살펴보는 심포지엄이 지난 13일 이화여대에서 열렸다. 
 ◆오치아이 교수(일본)-80년대 이래 가족정책 ‘잃어버린 20년’ 낳아
동아시아가 제2의 인구변천(대다수 유럽사회에서 187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겪었던 출산력 저하와 비슷한 현상)을 겪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은 긍정적인 동시에 부정적이다. 언뜻 살펴보면 동아시아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구학적 변화는 유럽, 북미와 유사한 듯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한국, 대만, 홍콩의 출산력은 ‘초저출산력’이라고 하는 세계적으로도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혼율, 초혼 연령, 미혼비율은 상승하고 있지만 동거 비율의 증가는 더디고 혼외 출산은 기피되고 있다. 국제 결혼과 높은 출생시 성비는 동아시아형 제2차 인구변천의 특징적 요인이다. 친밀성보다 의무와 책임의 가족관계가 사회적 자원에서 오히려 위험요소로 변했고, 가족의 부담을 피하기 위해 위험 회피적 개인주의화가 일어났다.

따라서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동아시아 사회에서 현재 경험하고 있는 인구학적 가족의 변화를 낳고 있는 것은 개인주의가 아니라 가족주의라는 것이다.

가족주의가 동아시아에서 번성한 원인은 문화적인 요소가 아닌 ‘압축적 근대성’(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라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변화가 시간적, 공간적으로 매우 응축된 상태로 일어나는 사회상황)이다. 일본의 ‘반압축적 근대성’속에서 1980년대의 시대착오적 가족주의적 개혁(유럽과 미국에서 시작된, 저출산에 기인한 제2차 인구변천에 대응키 위해 전업주부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법률을 차례차례 제정함)은 1960년대의 가족과 젠더구조를 강화했고, 이는 1990년대의 경제적, 인구학적 변화에도 저항했으며 결국 잃어버린 20년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훨씬 더 강한 ‘압축적 근대성’을 경험한 다른 동아시아 사회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글로벌 시장을 이용하는 자유주의적 가족주의 노선을 선택했다. 그결과, 근대성 압축 정도의 차이가 현재 동아시아의 다양한 가족주의를 낳았다.

그러나 두 유형의 가족주의 모두 지속 가능한 사회시스템을 건설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말 할 수 있다. 일본의 순수 가족주의는 변모하는 세계에 대한 유연성과 적응력을 억눌렀다. 반면에 다른 동아시아 사회의 자유주의적 가족주의는 경제적으로 불리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사회적으로 배제하는 결과를 낳았다. 가까운 미래에 다른 동아시아 사회가 오늘의 일본처럼 고령화될 때 근본적이고 역동적인 정책의 변화가 없는 한 동아시아의 사회적 재생산은 한층 더 어려운 도전이 될 것이다.

옥선화 교수(한국)-개별가족 중심성 강화추세...자녀 사교육에 목매
전통적 미풍양속이라고 인식되었던 한국의 부계가족 중심의 가족문화는 우리사회가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 호주제 폐지로 민법이 개정되었고, 이어 호적법 폐지와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 시행되어 제도적으로 부계가족 중심 가족제도는 크게 변화했다. 물론 법의 개정으로 일상생할에서 부계가족문화가 즉각적으로 본질적 변화를 보일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수백년 지속된 부성주의 원칙이 수정되고 성(姓)을 변경할 수 있게 된 것은 실제 일반인들이 그런 선택을 얼마나 하는지 여부와는 별도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는 남성으로 이어지는 출계율만으로 가문의 연속성을 가늠하던 가족의 의미가 변화될 수 있는 단초인 것이다.
 
최근 자녀관련 가치관 조사에선 남아선호 경향이 거의 드러나진 않지만 실제로 사회문화적 제도와 환경이 남아춠한을 기대하게 하는 측면이 아직도 잔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7년의 출산성비는 정상수준을 되찾았으며, 가족제도의 변화와 더불어 더 이상 비윤리적 출산성(性)의 인위적 조절현상은 현저히 감소되리라 보아진다.

결혼의 목적이 자녀 특히 아들의 출산에 있었던 과거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산아제한이 국가시책 즉 가족계획사업으로 시행되면서 1970년대 이후 성공적으로 낮아진 출산율은 기혼여성의 취업증가와 양육 및 교육비 부담의 증가 등으로 2000년대에 들어서 심각한 저출산 현상을 초래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결혼, 가족의 소중함에 대한 가치교육을 강화하고, 자녀가치를 도구적 가치로 귀속하지 않고, 정서적 가치를 강조하되, 자녀출산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이삼식, 2006)하는 것이 저출산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제언되기도 한다.

경미하기는 하나 2010년 출산율의 향상 등에 고무되어 사회 여러분야에서 인식개선 노력으로 출산과 양육에 대한 긍정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공감코리아, 2011)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혼여성의 취업증가와 저출산문제를 연결시키면서 다양한 정책이 제시되고 있으나, 아직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기혼 취업여성의 역할과중 현상은 우리 가족과 사회의 미래에 심각한 음영을 드리울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최근 한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대로 ‘아내가 경제력이 있다면 남편이 전업주부를 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한 남성이 69%에 달했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가부장제 문화에 대한 남성과 여성의 인식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출산아의 수가 급격히 줄긴 했지만 그것이 자녀가치의 하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소수의 자녀에 대한 기대는 점점 높아져서 자녀가치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한편 우리가족에서 보여주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사교육 열풍과 자녀에 대한 무한의 보호와 관여현상은 또 하나의 응집성 높은 가족문화의 발현으로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 가족은 부계가문중심의 가족문화가 핵가족 중심의 가족문화로 변용되어 개별가족중심성이 강화되는 가족생활이 지속되리라고 본다. 그리고 점차 확대되어 가는 가족관계의 양계화 현상은 현재는 과도기적 상황으로 선택적 양계화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자녀 중심의 가족생활문화는 세대를 초월하여 한국의 가정생활문화로 정착할 것이다.

심포지엄 발표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일본 교토대 오치아이 교수와 한국 서울대 옥선화 교수 및 토론자(문옥표, 장혜경 교수)들의 모습이다.

 ◆진이홍 교수(중국)-도시이주 농촌가정, 아직껏 부권중심전통 유지
도시로 진입한 농민가정이 도시의 현대화된 범주하에서 여전히 전통적 문화풍습을 보전하고 있다는 걸 확인한 결과는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예를 들면 폭력은 여전히 남성이 여성에 대해 권위와 통제를 유지해 가는 수단이 되고 있고, 일부 여성들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 다시 일을 하지 않으려는 현상이 보여졌다.

도시에서 생활하는 이주 농민은 대체적으로 지역성이 높은 아시아 문화를 지니며 생활하고 있다. 여기서의 지역성은 지리적 공간의 의미뿐만이 아니라 ‘관계적 성격을 띤 지역’을 뜻하기도 한다. 도시와 농촌이 이원화 체제로 분할되며 중국은 농민과 도시인들간의 신분이 나뉘어지고 사회적 생활공간에도 격차가 형성되었다.

즉 동일한 공간에서 거주하고 있어도 아마 완전히 다른 의미의 ‘관계적 지역’에 있게 한다. 한편으로는 사회관계의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 이주자들은 탈경계 이후에도 여러번 특정한 ‘지역’에 진입하여 자신들의 사회적 관계를 새롭게 구성하려 한다.

유동이 가져오는 지역화는 상대적인 의미로 유동하는 개체가 본래 지역에서의 귀속성을 상실하는 동시에 지역감정은 오히려 더욱 강화되었으며, 지역감정에는 방언 및 지방풍습의 부흥 등을 포함한다. 이런 관계의 ‘재지역화’는 도시에 진입하는 농민들에게 중요한 사회적 관계를 제공하는 것만이 아닌, 동시에 자신들에게 적합한 생존방식을 구축해 자신들의 문화규범으로써 도시문화의 배척에 저항한다.

이런 아시아문화의 특징은 지역성과 비교적 전통에 편중된 경향을 갖추고 있고, 비록 다른 아시아 문화권간에 어떤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그 성별에 대한 규범은 근본적으로 부권제 의식행태에 기반을 두고 있다.

예컨대, 모처에서 온 Z부인은 가사도우미를 하고 있다. 돈을 버는 것은 공안일을 하고 있는 남편에 비해 배를 넘는다. 그러나 도박을 좋아하는 남편은 늘 그녀를 구타한다. Z부인이 학력이 높은 고용주들에게 울면서 하소연을 하자 한 부부는 그녀에게 부부관련 법률의 지원을 받아보고 그래도 안되겠으면 이혼을 하라 권했다. 그러나 Z부인의 입장에선 그런 의견들이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며, 특히 이혼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나는 이혼할 수가 없어요. 우리 고향 사람들은 이혼은 절대로 안될 일이라 생각하고, 특히 여자는 먼저 헤어지자는 말을 꺼낼 수가 없어요. 만약 이혼을 하게 되면 고향사람들 사이로 돌아가 함께 지낼 수가 없어요.”라고 말하였다.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적 능력을 갖춘 여성들이 대체 무엇 때문에 고향의 울타리에서 벗어나면 살아가기 힘들다고 생각할까? 비록 이런 범위안의 전통풍습과 문화규범이 압박을 가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면으로는 그녀들에게 소속감과 안정감 있는 정신적 공동체를 안겨준다.

부권적 가정이 지니고 있는 남아 계승사상, 강한 남아선호사상, 여성들의 종속의식 등의 규범과 의식은 모두 이런 지역적 문화권에서 시작되어 지금의 거주지로 흘러 들어온다. 따라서 지역을 기초로 한 아시아문화권은 어떠한 모종의 의식상에서 유동하는 개체에 대하여 한편으론 속박이 되고, 한편으론 안전망이 되며 전통문화풍습을 보전하는 지역으로 이해가 된다. 

심포지엄에 참여한 학계 관계자들과 일반인들이 진지하게 청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