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극에서 정직을 배웠다 - 백 성 희 (2)
나는 연극에서 정직을 배웠다 - 백 성 희 (2)
  • 김은균 공연 전문기자
  • 승인 2011.05.2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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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이 빅타 가극단에 들어가면서부터 처음에는 집안 몰래 연극을 하였다.
“그동안 들락날락 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밤중에 심청전 공연을 할 때는 어떻게 할 거예요? 그래서 터놓고 말씀을 드렸죠. 집에서 난리가 난 건 따로 이야기를 해야 할 정도에요. 멀쩡한 집안에 웬 딴따라냐고.


그래서 얼마나 혼이 났으면 내가 연극을 하는 것은 우리 집안뿐만 아니라 사회에 아주 나쁜 짓을 하는 거라는 죄책감 때문에 죄인처럼 살았어요. 나는 수십 년 동안 연극하면서 누가 물어도 학교가 어딘지, 집안 식구가 누구인지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못했어요. 성까지, 이름까지 다 바꿔버리고, 나는 아주 몹쓸 짓을 하고 있는 타락한 어느 집 딸이라고 스스로 자책을 하면서 살아왔어요.”이후 이어순이라는 이름에서 서항석 선생께서 지어주신 백성희라는 이름으로 바꾸게 된다.


“내가 멋모르고 빅타 가극단에 들어가서 연극배우한테 필요한 거 배웠잖아요. 몸 유연하게 하는 율동 배웠지, 성악 배웠지. 그리고 서항석 선생님과 함세덕 선생님의 권유로 연극을 정식으로 하게 된 거죠. 현대극단에 가서 곧잘 했어요. 그런데 기회도 좋았던 게 극단의 현대극장이 유치진 선생님이 대표로 계셨고 일본에서 돌아온 신극파들이 손잡고 그 단체를 조직해서 공연을 계속했는데, 거기서 김선영 선생님과 젊은 배우가 주인공이었는데 젊은 분이 결혼을 하게 되었어요.


나는 현대극단에 가자마자 대역을 하게 되었으니까 주인공으로 데뷔를 한 거죠.
지금 생각해 보면 처음 연극 쪽에 발을 들일 때 그 당시에는 아주 복잡하고 죽을 결심을 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겪었는데, 내가 죽어도 그것만 하겠다고 하고 어머니는 옆에서 밥도 안 먹고 있으니까 죽는 것 보다는 연극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하시고 할머니는‘그거 나쁜 거 아니란다, 아범아~. 심청이도 하고 그러는 거란다.’ 조언도 하신 덕분에 그 덕을 보고,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아버지가 그거 할 거면 나가서 하라고, 내 딸 아니라고 하시고 그래서 할 수 있었어요.


내가 그렇게 연극 오래했는데 한 번도 와서 보신 일이 없었어요. 그런데 연극은 용서를 안 하셨는데 시집가서 아들도 낳고 제 가정을 이루고 사니까 내 자식 아니야 라는 말씀은 스스로 취소를 하신 거죠. 아무튼 그 난리를 겪고 그렇게 힘들었는데 막상 연극 입문하고 아버님도 해결이 되고 결혼해서 아이도 하나 낳고, 지금까지 죽 해보니까 연극이라는 것 자체가 그렇죠.
자기가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배역에서부터 주어져야 하는 게 연극인데, 그렇게 따지고 보면 연극으로 가게 된 것도 권유나 발탁으로 인해서 오늘날까지 죽 해왔지, 연극도 내가 이 배역이 하고 싶다거나 누가 훌륭한 상을 탔는데 나도 그 상 한 번 타보고 싶다거나 그런 쪽을 모르고 살았던 거잖아요. 바보스럽도록 모르고 살았어요.”


이후로 TV가 생겨나고 영화 쪽으로도 많은 연극인력들이 빠져나갔지만 그녀는 오로지 무대를 지켜왔다. "나도 사람인데 때때로 후회도 했고 좌절도 했고 유혹도 많았어요. 같이 나하고 연극하다가 돌아서서 다른 곳에 가서 편하게 있는 걸 보면 흔들리죠. 우리나라 연극계가 여건이 좀 나빠요?
예를 들어 피난을 나갔는데 피난지에 일본방송국에서 한국 여배우인 나를 찾아왔어요.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일본말도 할 줄 알고 대사도 정확히 할 줄 아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나 봐요. 당시에 일본에서 하는 대 한국방송이 있었거든요. 나는 안 간다고 그랬어요. 이곳에 남편이 있고 아이가 있고 부모형제가 다 있는데 내가 거길 왜 가요?


그래서 김복자씨가 대신 갔는데 얼마나 잘 사는지 몰라요.
정말 여왕대접 받아가면서요. 그럴 때의 서글픈 기분, 이게 뭔데 그런 걸 다 버리고 이걸 하고 있지? 후회라면 그런 정도의 후회를 한 적은 있어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