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코리안 드림 티켓
[에세이]코리안 드림 티켓
  • 정민디 / 수필가
  • 승인 2011.05.25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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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청년 푸르바와 가끔 이메일을 주고받는다. 푸르바는 연전 안나푸르나트레킹 할 때 인연을 맺은 세르파족 가이드다.

짐꾼이었던 딜쿠마르는 영어도 못하고 한국말은 더더욱 모르니 그의 소식은 푸르바가 전해준다. 딜쿠마르는 요새 한국말을 열심히 배운다고 한다. 네팔을 떠나며 그와 헤어질 때 “ 당신의 임금보다 두세 배 더 받을 수 있고 무거운 짐을 지지 않는 가이드를 하려면 외국어를 익혀야 되지 않겠어요?”하고 얘기를 나눴었다.
푸르바의 이메일을 보는 순간 갑자기 열망세포에 환한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그래, 네팔로 가서 딜쿠마르와 같은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자.

내 몸이 달구어지는 보람이 없어 심히 무료하던 차였다. 안락의 옷을 입고 있는 나는 영 불편하다.‘삶의 위험한 조건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은 물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진정한 우의를 확인 시켜줄 뿐 아니라, 일상의 권태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준다’는 생떽쥐페리의  <<인간의 대지>>의 세계관이 언제나 나를 흥분시킨다. 때맞추어 이런 신문기사를 보게 됐다.

‘한국어 시험 보는 날엔 온 나라 들썩’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네팔 경찰은 새벽부터 수도 카트만두의 교통을 통제했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한국어능력시험(TOPIK) 문제지를 후송하는 차량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시험에 응시한 사람은 3만6203명에 달했다. 이들은 미화 17달러(약 1만9700원)의 응시료를 냈다. 네팔 근로자 월평균 소득은 60달러(6만9000원)다.

이 시험을 치르기 위해 10시간 이상을 기다려 접수했다. 이들이 한국어에 열광하는 이유는 한국에서 일하기 위해서다.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한국에서 외국인 근로자로 일할 자격을 얻지 못한다.
 1991년부터 99년까지 한국에서 일한 네팔의 감비르 구룽은 미화 5만 달러를 저축해 금의환향했다. 그는“사우디아라비아에 가도 월 150달러밖에 못 받는데 한국은 1000~1900달러를 주고 기술도 가르쳐 준다”며“돌아와서 집도 사고 사업도 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비단 네팔뿐이 아니고 아시아 전역에서 똑같은 현상의 한국어 열풍이 일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에게 한국은 최저임금이 보장되고 보험제도가 철저하여 모두가 선호하는 국가다. 보다 나은 생활을 하기위하여 한국에 온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사람들로 내국인이 기피하는 3D 업종의 노동력을 그들이 충당하고 있다. 일하려는 사람이 없는 화약약품, 염색공장등과 농축산, 수산업이 모두 외국인근로자의 몫이다.

과거 우리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에 이주했으나 언어등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사회의 밑바닥 일부터 시작하여 기반을 마련하지 않았던가. 벼룩시장에서 물건을 팔고, 빌딩에 밤 청소를 했으며, 세탁소, 페인트 칠, 배관공, 식당일 등이 우리가 할 일이었다. 30여년 가까이 미국에서 노동자로 살았던 나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깊은 연민으로 바라보게 된다. 제2의 제3의 딜쿠마르를 돕고 싶다.
그들과 함께 한국어 트래킹을 떠날 날을 고대한다.